전국 16개 도시, 5300여 개 외부 수련장에서 국학기공을 전하는 강사 중에서도 국민건강지킴이 9번째 인물은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에서 나왔다.

 지난 24일, 한여름처럼 뙤약볕이 강한 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막상 제주도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다.  다음날 25일 오후 2시, 제주국학원에서 만난 이승훈 씨(39, 제주시 외도동).  이씨는 국학강사로 데뷔한 지 1년이 채 안 된 새내기 강사였다.

현재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차를 타고 2시간을 왕복해야 되는 거리에 있는 노인정 2곳(월성 노인정, 고산 노인정)에서 국학기공을 지도한다.  그는 국학을 만난 후 집과 직장에서도 변화를 느낄 만큼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시크릿 책을 통해 만난 '국학'

▲ 이승훈 국학강사(제주국학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승훈 씨는 대학교 갈 돈으로 장사하겠다며 인터넷 포토샵 일을 했다. 처음에는 포토샵이 잘되어 '장사가 어렵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부인과 함께 일하면서 결혼도 하고 지금의 제주시 외도에 자리를 잡았다.

 20대 중반 무렵 외도에서 '치킨집'을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도전한 창업은 포토샵과 달리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다시 직장에 다녔지만, 월급으로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가 힘들어 자동차 영업도 해보고 네트워크 영업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입이 안 떨어지니깐 수입도 없었다.

 그는 "그동안 쌀 배달, 교차로 배달도 하고 부두니 택배니 돈을 쫓아가며 계속 그렇게 살았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다가 부인이 보험일을 하고 있었기에 다시 영업을 도전하게 되었다. 초기 투자비용은 들지 않지만, 자기가 한 만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을 하다 보니깐, 자꾸 보험에 '보'자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아는 사람에게 말 못했어요. 모르는 사람에게 명함을 들고 찾아갔지만 그것도 어려웠고 어쩌다 계약해도 기쁘지 않았죠. 당장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뭔가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만난 책이 바로 '시크릿'. 입이 잘 안 떨어지던 이승훈 씨는 내 생각으로 무엇이든 끌어당길 수 있다는 내용이 와 닿았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어디 습관이 바뀌겠는가. 생각처럼 잘 안 되어 영업사원으로서 실의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책에서 '명상'이라는 말이 확 들어왔고 수련기관을 찾게 되었다.

 때마침 사무실 건너편에 보이는 단학수련에 입문하면서  그는 비로소 '국학'을 알게 되었다.

새내기 강사, 수련지도 잘한다고 소문나

▲ 경로당에서 수련지도를 마치고 단체로 촬영

 “보험은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뭔가 부탁하는 것 같으니깐 말이 안 떨어졌어요. 그런데 국학기공은 이 좋은 것을 내가 알린다니깐, 마음 자세부터가 달라져요. 나도 모르게 술술 절로 되더라구요.”

 제주도에는 국학기공 강사 활동만 10년이 넘은 까마득한 선배 강사들도 많지만, 1년이 채 안 된 새내기 강사 이승훈 씨는 어떻게 수련지도의 감을 잡았을까?

 “처음 선배 강사를 따라가면서 할 때는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떨까? 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그걸 내려놓으니 훨씬 편안하고 잘 되더라구요.”

 그는 국학기공 지도를 하러 갈 때만 해도 약간 걱정했지만, 무대에 오르면 ‘어차피 올라선 거’ 라는 마음으로 했다. 수련지도를 끝내면 ‘내가 어떻게 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들 앞에 서서 건강법을 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젊은 강사가 오니 어르신들이 좋아하겠어요?” 

 “신난다고 그러십니다. 제가 가면 박수치면서 반겨주시니 기분이 좋습니다. 고산 노인정의 할머니들이 박수치며 환호해준다면, 월성노인정은 수련이 끝나면 분위기가 고조돼서 그런지 한바탕 웃고 박수치며 보내주시죠.” 

 제주도민 국학기공대회에 이승훈 강사가 지도하는 월성 노인정 팀이 참가했다.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건강상'을 받았다. 

 “‘건강상이 대상보다도 최고란게’라며 서로 대화하시는 어르신들 모습을 보면서 저도 뿌듯했습니다. 이런 것이 보람이구나 알게 되었죠.”

 매주 국학기공을 전하면서 가끔 춤을 출 때는 팔 하나 들지 못하고 눈치 보는 할머니를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강사는 할머니들을 조금 더 깨워줘서 눈치 안보고, 춤이라도 마음껏 출 수 있게 해 드려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내 안의 리듬감이 회복되자 자신감은 높아져

 “꿈이 있었나요?”

 “제가 그것을 못 찾았던 것 같아요”

 어느새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고 먹고 사는 일에는 100% 집중하지 못했다. 꿈에 대한 답을 못 찾으니깐 방황했다.

 “홍익, 영혼의 완성 좋아요. 그것을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너무 크잖아요.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니깐.”

 이 씨의 가슴을 흔드는 것은 국학활동하면서 만난 ‘북’이었다.

 “제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일을 해도 저 자신을 칭찬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북을 치면서 내가 남보다 잘하는 것 같다는 것을 느껴요. 전생에 내가 이런 일을 해봤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다른 사람이 10번 하면 되는 것을 나는 5번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강사는 그 리듬을 만나게 되니깐, 자기 자신을 더 믿게 되고 이제는 수련 지도할 때도 장단에 맞춰서 지도한다고.

 “기운이 밝아지고 당당해지니깐 영업 쪽에도 그런 에너지가 도는 것 같아요. 노인정에서 하는 거나 영업 하는 거나 자신감이 올라가는 거죠.

 보험 영업일을 하는데도 예전에는 나한테 이득이 되는 상품을 손님에게 이득이 되는 상품보다 먼저 권했어요. 그러니깐 고객에게 다가갈 때부터 자신이 없는거죠. 말하기도 전에 고객은 알아봐요. 결국 거절당하고 돌아와서 후회하고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권하기 위해 다시 전화하면 전화 안 받고….“

 이씨는 지금은 상담이 들어와도 그 사람에게 맞는 것을 소개해서 그 사람이 사인을 하든 안 하든 내 얘기 하고 돌아오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객들이 사인을 하고, 지금 당장은 나에게 이득이 되는 보험료는 아니지만, 계약이 쌓이고 소개도 들어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 율려수련으로 본성을 깨우고 싶다는 이승훈 국학강사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아뇨. 전혀”

 국학교육을 받기 위해 육지에 다녀오는 일이 많아서 지출이 많을 텐데도 부인은 일절 돈 예기를 안 한다. 국학을 만나 술도 끊고 그동안 활동을 하면 가족에게 크게 잘해주는 것은 없었지만, 아주 작은 변화가 모여 가족간에 신뢰가 생겼다.

 “애기가 목욕하고 나오면 수건으로 닦아주라고 아내가 말해도 옛날 같으면 네가 해라고 했을텐데,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는 겁니다. 설거지를 도와주기도 하고, 아무튼 제가 교육을 다녀오면 뭔가 바뀌는 것을 아내가 인정하며 믿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는 도의원도 해보고 싶다는 꿈을 아내에게 말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북을 치는 도의원이 되시겠네요.”

 (웃음) “지금까지 직장도 많이 바뀌었지만 영업을 하며 사람도 만나고 대화했던 모든 것이 국학을 만나기 위한 훈련과정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해요.”

 20대부터 수많은 도전과 실패 속에서 ‘내 안의 시크릿’을 찾기 위해 살았던 이승훈 공원장.

 “북이라는 것을 만나면서 딱 만난 것 같아요. 이것을 쳐서 리듬으로 북으로 사람들의 혼을 깨워주고 본성을 밝히는데 기여하다가 떠나게 돼도 후회는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런 마음으로 전력투구하고 싶습니다.”라며 ‘율려적인 수련’을 더 많이 보급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