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랑을 많이 주셔. 우릴 꼭 아기처럼 대하신다니까. 항상 ‘사랑합니다’ 말씀해주시고 안아주시고 등 두드려주시고. 우리 선생님하고 국학기공 1시간 신나게 하고 나면 세상 만사 다 밝고 예뻐 보여.”

 ‘국학기공 선생님 어떠시냐’고 여쭈어보니 ‘멋진 총각 선생님 어떠냐’는 질문을 받은 10대 소녀마냥 답하는 오화자 어르신(71). 아니나 다를까 어르신 자리는 맨 앞줄 로얄석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 11시 인천 남동구 노인복지회관 4층에는 신발 둘 자리가 모자라 어르신들은 검은 비닐봉지에 신발을 싸 들고 수련장으로 들어가신다. 오늘도 만원이다. 수련장 뒤까지 빽빽한 사람들을 보고 “내가 그러게 일찍 나오자고 말했잖아”라며 할머니 두 분이 볼멘소리를 주고 받으신다.

▲ 인천 남동구 은성혁 공원장

 “다들 오셨어요? 수련 시작하겠습니다!”

 이곳에서만 올해로 12년째, 국학기공으로 어르신들에게 건강과 웃음, 평화를 전하고 있는 은성혁 공원장(64)이 수련 시작을 알린다.

 

▶ 은성혁 공원장님께서는 이 곳, 인천 남동구 노인복지회관에서만 해도 벌써 12년째 국학기공을 알리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공원장으로 국학기공을 전하게 되셨나요. 

 네. 여기서는 99년부터 했으니 햇수로 12년째네요. 우와~ 오래됐네. (웃음) 공원장이 된 것은 96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가요. 그 때 전국 공원장들의 ‘스승’이신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 총장님이 반포에서 강연회를 하셨는데, 그 때 말씀이 “내가 공원에서 시작했듯이 여러분도 전국 공원에서 우리 건강법과 우리 정신, 홍익을 알리세요”라고 하신 말씀을 하셨지. 왠지 모르게 당장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 해 설 연휴 때부터 집 근처에 있는 거머리산에 올라서 국학기공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눈이 무척이나 많이 와서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날이었는데… 그게 벌써 16년 전이네 (웃음)

▶ 당시에는 대부분 공원이 무료였는데,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16년 간 꾸준히 해 오신 힘이 있다면 뭘까요. 

 뭘 하든 끝까지 해요. 하나를 하더라도 끝까지 하지 중간에 포기를 안 하지. 제가 9살 되던 해에 가출을 했었어요. 3, 4년 간 객지 생활 하면서 웬만큼 힘든 건 그 때 다 해봐서… 열세 살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부터는 근기가 생겼지. 한 번 하면 끝까지 해내는 힘.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듯 새벽에 일어나 수련을 해요. 절 수련, 뇌파진동, 정충호흡 등등. 210일간 1천 배 절 수련을 하기도 했고, 7년 동안 500배를 하기도 했죠. 제 수련도 꾸준히, 홍익을 전하는 공원장 활동도 꾸준히. 그냥 하루 하루 해내면서 즐거움을 찾는 것 같아요.

▶ 오랜 시간 동안 공원장 활동을 하시려면 가족의 지원 없이는 힘드셨을 것 같은데, 가족 분들은 어떠신가요.

 집사람은 최고의 파트너예요. 저보다 먼저 국학기공을 시작해서 저한테도 함께 하자고 권했죠. 집사람도 공원장으로 굉장히 바빠요. 그래서 제가 기운이 다운되면 집사람이 기운을 보충해주고, 반대로 집사람이 힘이 없으면 제가 기운을 넣어주고. (웃음) 홍익가정이 되야 더 힘내서 잘 하게 되죠. 매일 얼굴 보는 사람이 인생도 파트너, 비전도 파트너. 얼마나 좋아요.

▶ 공원장으로도 유명하시지만, 인터넷에서는 『뇌파진동』 책으로 더 유명하더군요.  800명에게 이 책을 판매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뇌파진동』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책에 나오는 수련법으로 내 인생의 참 맛을 알았기 때문에 뇌파진동이 희망이라고 봐요. 그래서 언제 어디를 가든 항상 책을 잔뜩 들고 다녔어요. 항상 전할 수 있게. 지금도 가방에 있어요. (웃음) 그리고 그냥 나눠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제 돈을 주고 사야지 책을 읽고 또 그 가치를 알게 된다고 봐요.

 

▲ 『뇌파진동』책 보급 당시의 은성혁 공원장

 

 ▶ 800권이나 판매하시려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책을 권해야 하고 또 마음을 움직여야 팔 수 있을 텐데 다양한 일들이 많으셨겠어요.

 한 번은 전철에 앉아 『뇌파진동』을 읽고 있는데 뜬금 없이 한 사람이 와서는 “무슨 책이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은 서점에서도 팔지만, 아무에게나 전할 책이 아니라서 내가 직접 갖고 다니면서 판매한다”고 했죠. 그래서 한 권 팔았어요. (웃음) 그리고 일년에 한두 번 한국에 들어오는 재미동포들이 항상 한국에 오면 제가 하는 공원수련장에 와서 수련을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곤 해요. 그런데 그 분들이 미국에 돌아간 뒤 혹시 책을 보내줄 수 있냐고 물어와서 보내드리기도 했고요. 800권을 한 권 한 권 소중하게 전하다 보니 많은 에피소드도 생기고 사람들도 만나게 됐어요. 어느 분에게 어떻게 전했는지도 다 적어뒀어요.

  나도 사람들에게 건강과 희망을 전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뇌파진동』 보급 비전을 세우고 움직였는데 처음엔 힘들었어요. 비전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내가 선택한 것이다’라고 생각을 고쳐먹으니 절로 절로 되더라고요. 자꾸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 정말 내 안에서 즐거움이 생겨나요. 

 참, 그저께도 책 팔았어요. 이번에 방송통신대 중어중문과에 입학했는데 지난 주말에 MT를 갔어요. 가서 제가 하는 우리 국학기공 소개도 하면서 건강법을 전해주니까 사람들이 책이 없냐고 묻길래 『뇌파진동』을 소개하고 또 판매했죠. (웃음)

▶ 이번에 대학에 입학했다고 하셨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면 바쁜 것보다는 여유를 찾기 마련인데 점점 더 바빠지시는 것 같아요.

 인천 남동구만 해도 인구가 약 50만 명인데 경로당이 145군데나 있어요. 복지회관이나 건강보험공단 같은 곳에서 지원해서 국학기공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는 곳은 그 중에 20곳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어떠냐. 앉아서 텔레비전 보고 화투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하루 하루를 그냥 보내세요. 인생을 의미 없이 그냥 보내는 거죠.  그런데 저는 국학기공 통해 감사하게도 인생의 스승님을 잘 만나서 삶의 목적을 찾고 매일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만남 속에서 살아가죠. 항상 감사합니다.

 무의미하게 인생의 마지막을 그저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이 안타까워 관공서를 찾아가서 국학기공을 권해도 관계자들이 ‘필요 없다’고 해버리면 외부 공원이야 그냥 하면 되지만,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는 경로당에서는 하고 싶어도 못하지. 국학기공을 통해 정말 몸도 정신도 건강하게 잘 늙을 수 있는데, 그런 기회조차 못 갖는 분들이 많으니 내가 바쁠 수밖에 없어요.

 이번에 학교 입학해서 과 대표를 맡은 것도 같은 마음이예요.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책임을 만들고. 그러니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생기고. 동기가 250명인데 우리 건강법, 우리 홍익정신을 알릴 새로운 사람 250명을 또 만난 거죠.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도 다양해요. 신납니다. (웃음)

▲ "수련지도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은성혁 공원장의 밝은 에너지로 인천 남동구 노인복지회관에서 국학기공 수련을 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

▶ 정말 밝으시네요. 에너지가 마구 느껴집니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 얼굴보다 컴퓨터를 마주볼 때가 더 편하다고도 하는데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서 더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나라고 뭐 처음부터 이랬겠어요? 아니예요. 처음 국학기공을 만난 게 94년 1월인데, 당시만 해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죠. 그런데 국학기공을 만나 수련을 하면서 밝아졌지.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알게 되니까 인상이 펴지고 어깨가 펴지더라고. 다 국학기공 덕분이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능했어요.

 그래서 과 대표도 자진해서 맡았어요. 나는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라는 꿈이 있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목표도 세우고 책임도 스스로 만들고 그러니까 재미도 나고 보람도 생기지. 그냥 공부만 하겠다 생각했으면 이렇게 재미있진 않았을 거예요. (웃음)

▶ 이제 4월 1일이면 전국 방방곡곡 공원에서 공원장들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16년 베테랑 공원장으로 새롭게 공원에서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서게 될 새내기 공원장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요.

 공원장에게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학기공의 전체 비전에 중심을 맞추는 거라고 봅니다. 모두가 널리 이롭게 함께 살아가는 ‘홍익’ 대한민국이라는 이 전체 비전에 집중하면서 하면 정말 보람찬 일들이 많아 질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한 사람 붙잡고 하는 거예요. 대신 꾸준히 하세요. 결국은 나 스스로를 위한 거예요. 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나 건강법을 전하고 홍익 정신을 전하면서 용기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기고 밝아지죠. 열심히 하면 누구나 다 되요.

 인터뷰가 마치기가 무섭게 지하 식당에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정말 빨랐다) 식사를 마친 은성혁 공원장은 바로 오후 1시부터 있을 다음 수업을 위해 돌말경로당으로 움직였다. 노인복지회관을 나와 신호등을 건널 때까지도 그는 내내 사람들과 인사한다. 버스에서 방금 내린 어르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아주머니. 인천이 좁은 건지, 은성혁 공원장 발이 넓은 건지…. 기자와 인사를 나누고 바뀐 신호에 맞춰 재빠르게 뛰어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홍익 대한민국'의 내일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