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리아갤러리는 9월 3일부터 10월 2일까지 구자현 개인전 《無題(Untitled)》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40여 년간 평면성과 물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온 작가의 오랜 궤적과 치열한 공정 끝에 도달한 미감의 완성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자리다. 대표적인 평면 회화 작품과 더불어, 스크린 프린트, 목판화 등 다양한 프린트 메이킹 작업을 통해 바탕과 행위, 물성과 시간의 접점에서 태어난 화면들을 소개한다.
구자현의 작업은 철저히 과정을 기반으로 한다. 오랜 시간 수없이 겹쳐 바른 바탕은 그 자체로 응축된 시간의 밀도이며, 작가가 신중히 선택한 재료와 고집스럽게 지켜온 전통적 공정 방식은 화면 위에 보이지 않는 구조와 힘을 부여한다. 그는 화면의 9할 이상이 바탕에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캔버스를 만드는 일부터 먹을 고르고 내광성 실험을 거치는 과정까지, 그의 작업은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정제 과정처럼 정직하고 집요하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 전시를 넘어, 프랑스 하이주얼리 브랜드 레포시(REPOSSI)와의 특별 협업을 통해 조형성과 장인정신이 교차하는 감각적인 공간을 제안한다. 레포시는 이탈리아 건축가 출신 아트디렉터 가이아 레포시(Gaia Repossi)가 이끄는 LVMH 산하 브랜드로, 조형적 실험과 구조미를 바탕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구축해 왔다.
김리아갤러리는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동시대 예술 주간을 맞아 9월 3일부터 6일까지 구자현의 회화 작품과 레포시 주얼리 컬렉션을 함께 선보인다. 구자현은 레포시의 컬렉션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신작 4점, ‘레포시 에디션’을 제작했으며, 이 중 한 점은 레포시가 소장해 향후 전 세계 주요 매장과 공간에서 소개한다. 특히 3일 청담나잇에는 전시 프리뷰와 칵테일 파티가 열릴 예정으로, 관람객은 작가의 깊이 있는 작업 세계를 가장 먼저 마주하고, 주얼리와 회화가 공명하는 이례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구자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의 회화 공정서 《회화술의 서》를 번역 출간할 만큼 전통적 제작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재료를 스스로 정제하고 실험하며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을 예술로 여긴다. 그는 작업에 불필요한 의미를 덧붙이지 않지만, 그렇게 쌓인 바탕은 어느 순간 응축된 에너지로 전환되어 화면 위에서 폭발처럼 피어난다. 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규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고정된 의미 대신 지속 중인 과정으로 남겨두겠다는 태도다. 감각과 감식, 공력과 시간의 결이 미세한 차이에서 갈리듯, 화면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 자체가 곧 결과가 될 수 있음을 그의 작업은 조용히 증명한다.

이번 전시는 구자현의 장인정신과 동시대적 미감이 어우러져, 재료의 아름다움과 작가 고유의 시선을 오롯이 체감할 수 있는 밀도 높은 시간이 될 것이다.
구자현 작가는 1955년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대구, 부산, 도쿄, 홍콩, 파리, 뉘른베르크 등의 도시에서 전시하였다. 작가는 40여년간 재료와 물성에 대한 일관적이고 철저한 태도로 평면 작품의 본질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 판화의 장인 중 한 명으로 섬세한 재료 연구와 독자적인 기법들을 통해 작가 자신만의 예술적 방법론을 발견해 나가고 있다.

구자현 작가는 매체의 순수성과 탈매체적 특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작가이며 이러한 회화적 실천은 예술의 형식과 삶의 태도 사이의 긴장을 유지한다.
구자현 작가 개인전은 김리아갤러리(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75길 5)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