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재 작가의 회화는 ‘이동’에서 출발한다. 그는 직접 걸으며, 머무르며, 채집하고, 체득한 장소의 기운을 화폭 위에 옮긴다. 7월 23일 갤러리그림손에서 개막하는 신정재 작가 개인전 《37˚N, 127˚E》에서는 이러한 작가의 작업을 볼 수 있다.
이번 개인전 작업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다. 서식지에서 수집한 기억과 감각, 심리와 정서를 작업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리는 행위는 곧 다시 그 장소로의 ‘이동’이 된다. 이러한 반복적 이동은 단지 물리적 이동이 아닌, 심리적・감각적 재탐색이자 자신만의 ‘서식지’를 새롭게 구축하는 여정이다. 작가는 서식지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경험’하고, 다시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필터를 통해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감각은 회화적 언어로 전환되고, 기억은 감정의 색과 형태로 번역된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시선처럼, 신정재의 회화는 단일한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으며, 매 순간 재해석되고 변형되는 유동적 조형 언어를 구축한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어떤 ‘동일한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둘러싼 정서적 풍경과 주체의 변화를 포착한다. 즉 《서식지 37N, 137E》는 작가의 신체와 감각, 그리고 회화라는 행위를 통해 구축된 ‘또 하나의 서식지’다. 전시 제목 “37˚N, 127˚E”는 동경 37도, 북위 127도, 즉 우리나라 경·위도 원점을 의미한다.
조명식 철학박사는 신정재 작가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정재의 회화는 다분히 이동욕망이 작동되는 행위 본위의 조형언어이다. 채집을 위한 이동과 시간과 과정, 서식지 공간 안에 몰입, 채집과정과 조형화의 과정은 자신의 신체, 심리와 상호작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식지의 위치를 찾고 그곳에서의 정취를 되새김하며 그리는 서식지 형상은 그릴 때마다 변화한다. 마치 가는 동안의 정서와 탐사하는 동안의 정감에 차이가 발생하고, 서식지에서 소격된 작업실에서 그려내게 되면서 경험을 반추하는 기제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Maurice Merleau-Ponty)는 시각적 경험은 단일한 실체로 고착되어 인식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테면 경험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의식은 반추기제로 재해석되고, 표현은 감각에 의해 유동적으로 재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회화에서 의식의 표현은 경험의 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전달을 초월하는 감각과 인식의 상호작용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서식지에서의 경험이 작업실에서 재현되는 과정은 정보의 모방이 아닌 그리움 같은 것이어서 획과 칠이 경험을 더듬어 또 하나의 이동된 서식지를 탄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경험 속 가시성은 표현의 비결정적 행위와 상호작용하면서 모종의 서식지 환경을 그려낸다. 마치 안개가 걷히고 서식지에서 고대하던 개체와 마주하는 순간의 두근거림과 쾌감이 샘 솟을 때까지 붓질은 계속된다. 작업의 결과물은 서식지와 ‘대상의 동일성’을 변주 또는 해석적으로 가지면서 ‘주체의 동일성’을 이룬다.

실제로 대상은 공간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동일성으로 고착되지 않고 다양한 상호성에 의해 차이의 변화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정재 작가의 회화에는 서식지의 지정학적 상황이 그려지는데 ‘주체의 동일성’을 기리면서도 심리적 동인이 반영되는 ‘차연의 회화’가 되는 것이다.”

갤러리 그림손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도 작가가 마주했던 감정의 진폭을 환기하며, 각자의 내면속 ‘서식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각적 여정이 될 것이다. 사라지는 안개 너머 나타나는 형상처럼, 잠재된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을 함께 경험해 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신정재 개인전 《37˚N, 127˚E》은 갤러리그림손에서 7월 2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