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원 스 님
3조 승찬 선사가 출가하기 전에는 한센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가 혜가 선사를 찾아와서 애원했습니다.
“저의 육신은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스님! 제발 저를 위해서 참회의 기도를 해주십시오.”
혜가 선사가 말했습니다.
“너의 죄를 이리 가지고 오면 그때 너를 위해서 참회의 기도를 해 주마.”
거사가 말했습니다.
“죄를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사가 말했습니다.
“이미 참회의 기도를 다 마치었다!
승찬 스님이 병에 걸린 것은 자신이 지은 죄악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혜가 선사에게 스님 제발 저를 위해서 참회의 기도를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혜가 선사는 너의 죄를 이리 가지고 오면 그때 너를 위해서 참회의 기도를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자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다고 했습니다. 선사가 말했습니다. “이미 참회의 기도를 다 마치었다!”
승찬 스님의 죄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떤 일이 잘못되면 죄를 지어서 그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승찬 스님의 죄는 어디에 있습니까? 한센병에 걸려서 생긴 흉측한 얼굴과 몸뚱이가 죄이고 벌인가요?
내가 가령 어떤 사람이 밉고 싫어서 주먹으로 상대의 얼굴을 한 대 때렸을 때, 상대의 얼굴이 붉게 부어올랐다면 나의 죄는 붉게 부어오른 상대의 얼굴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상대의 붉게 부어오른 얼굴은 부어오른 모양일 뿐입니다. 주먹에 맞기 전에 깨끗한 얼굴도 모양이고 작용이며, 붉게 부어오른 얼굴도 모양이고 작용일 뿐입니다.
그러면 죄는 어디에 있는가? 죄는 지금 나는 똑똑하고 잘난 체하며 뽐내는 마음에 부합하지 않아서 미워하고 화내며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싫어하는 상대를 때리는 행위 즉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즉 업(業)이 죄입니다. 우리는 남이 밉거나 싫어지면 때리고, 남이 예쁘거나 좋아지면 쓰다듬어 줍니다. 그러나 싫어서 때리고, 좋아서 쓰다듬는 것은 결국 잘난 체하고 뽐내는 나의 번뇌에 부합하고, 부합하지 않다는 망상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번뇌 망상이 업이고 죄일 뿐입니다. 따라서 승찬 스님의 죄는 병에 걸린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고 잘난 체하고 뽐내는 좋아하는 마음에 부합하지 않아서 싫어하고 있는 어리석은 번뇌가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잘난 체하고 뽐내는 번뇌의 마음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참회의 기도를 모두 마친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병에 걸린 스님의 얼굴을 들어보아도 괜찮고, 우리의 몸뚱이와 산과 강, 건물, 컴퓨터, 지구와 달을 그 무엇을 예로 든다 해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보기 흉한 병에 걸린 얼굴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흉한 얼굴이 어디 있습니까? 얼굴이 어디에 있나 하고 찾아보니 얼굴은 없고 눈과 귀와 코와 입 그리고 흐르는 고름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눈과 귀와 고름이 어디에 있나 하고 보니 눈과 귀와 고름은 없고 홍채, 각막, 수정체 등과 귀의 조직과 피부, 근육, 혈관 등과 고름이라는 액체 등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홍채 각막 수정체 액체가 어디 있나 하고 보니 홍채 각막 액체 등은 없고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세포 등이 있고, 세포 등도 없고 산소 수소 탄소 등 원소가 있으며, 원소가 없고 원자가 있으며, 원자가 없고 쿼크가 있으며, 쿼크가 없고 힉스가 있으며, 힉스가 없고 허공이 있을 뿐입니다.
우주세계와 그 모든 존재는 이와 같은 구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찾을 수도 없고, 찾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현대과학이 지금까지도 물질의 기초가 되는 최소입자 힉스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는 것은 이 같은 구조와 구성의 진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허공은 어디에 있는가? 허공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허공은 자신이 스스로 있지 못하고 힉스와 쿼크, 원자, 원소, 세포, 미세먼지, 홍채와 각막, 눈과 귀와 고름, 흉한 한센병 얼굴 그리고 우리의 몸뚱이, 산과 강, 건물, 컴퓨터, 달과 지구 등으로 인해서 있습니다. 또한 힉스와 몸뚱이와 지구 등 모든 것은 자신이 스스로 있지 못하고 허공으로 인하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허공이 없으면 힉스와 지구 등이 있을 수 없고, 힉스와 지구 등이 없다면 허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허공의 작용이 곧 힉스와 지구이고, 힉스와 지구 등의 작용이 곧 허공입니다. 그러므로 허공과 힉스와 지구는 같은 작용이고, 같은 마음 부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허공과 힉스와 지구와 몸뚱이 등이 제각각 따로 나뉘어 있고, 서로 다르다는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는 분별 망상을 일으키고, 일으킨 그 망상에 눈이 막혀서 허공과 힉스와 지구와 우리들의 몸뚱이가 바로 마음과 부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모든 힉스, 쿼크, 원자, 원소, 세포, 미세먼지, 홍채와 각막, 눈과 귀와 고름, 한센병 얼굴 그리고 우리의 몸뚱이, 산과 강, 건물, 컴퓨터, 달과 지구 등은 모두 이름일 뿐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구성하는 의미와 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뜻과 이들이 갖는 느낌과 모든 이들이 그 나름대로 왕성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용이 곧 생명이고 생각이며 마음이라고 깨달으면 그것이 바로 부처입니다.
그래서 우주세계의 일체 존재는 각자가 그다운 역할과 작용을 합니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역할하고 작용하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대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대로 그 나름의 역할과 작용을 합니다. 더러운 고름과 흉악한 것은 더러운 고름과 흉악한 대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대로 그다운 역할과 작용을 합니다. 죽음은 죽음대로 태어남은 태어남대로, 있음은 있음대로 없음은 없음대로, 괴로움의 불행은 괴로움의 불행대로 즐거움의 행복은 즐거움의 행복대로 그 나름의 역할과 작용을 합니다. 이와 같이 티끌 수와 같은 일체존재는 각자 그다운 역할과 왕성하고 활발한 작용을 합니다. 이 같은 작용을 곧 생명 생각 마음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병에 걸린 승찬 스님의 흉물스러운 얼굴과 죄악은 있는 것인가. 지금 저 병의 얼굴이 죄악이다, 하는 것은 바로 생각이고 마음입니다. 그래서 스님의 흉물스런 얼굴과 죄악이 있으므로 생각과 마음과 부처가 있습니다. 만약 흉한 얼굴과 죄악이 없다면 생각과 마음과 부처 또한 없는 것입니다. 흉한 얼굴과 죄악 자체가 생각 마음 부처이기 때문에 죄를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고, 죄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승찬 스님은 죄를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고, 혜가 선사는 “이미 참회의 기도를 다 마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혜가 선사가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너는 지금 불 법 승에 귀의하는 것이 어떠냐?” 스님이 물었습니다.
“선사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승이 무엇인지는 곧 알겠습니다마는, 무엇을 불이라 하고 무엇을 법이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혜가 선사가 말했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불이고 이 마음이 바로 법이니, 불과 법은 본래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는 알아야 한다.”
이 마음을 바르게 깨우쳐 주는 혜가 스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승이 무엇인지 알겠으나 아직은 무엇이 부처이고, 무엇이 법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혜가 선사는 작용하는 생각과 마음이 법이고 부처이므로 부처와 법이 본래 한마음이니 부처와 법이 둘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승찬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제야 죄의 성품은 안과 밖 그리고 중간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마음이 늘 하나이듯 부처와 법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죄가 바로 작용이고, 생각과 마음이며, 부처이므로 죄는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따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안과 밖과 중간 그리고 법 모두가 그대로 작용과 생각과 마음과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와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승찬 스님은 비로소 깨쳤습니다. 혜가 선사는 그가 깨달음의 능력을 갖춘 법의 그릇임을 알아차리고 머리를 깎아주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이제 승가의 보물이 되었으니 승찬(僧璨)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겠구나.”
우리는 병든 몸은 싫어해서 버리려 하고, 선행을 쌓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은 좋아해서 취하려 합니다. 그러나 싫어해서 버리려는 몸도 작용과 마음과 부처이고, 좋아해서 취하려는 몸도 작용과 마음과 부처로서 같은 몸입니다. 그래서 싫어하는 번뇌가 없으면 몸을 따로 버릴 필요가 없고, 좋아하는 번뇌가 없으면 따로 얻을 몸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병든 몸도 건강한 몸도 작용하는 생각과 마음과 부처라는 진실을 잊고 있는 미혹한 어리석음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버릴 수 없는 병든 몸을 버리려 하고, 얻을 수 없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은 얻으려는 어리석음의 고통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실로 단순 명약합니다.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오직 마음이고 부처라고 굳게 마음먹는 순간 힘들고 괴로운 고통은 영원히 없어지고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생각이고 마음인가? 지금 그와 같이 묻고 있는 그대가 바로 생각과 마음입니다. 무엇이 부처인가? 지금 묻고 있는 그대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진원 스님 <안동 보현사 스님>
1949년생으로 덕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으며 정각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그간 제방에서 참선수행하였으며 지금은 안동의 암자에서 정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