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섭 작가는 나무(고재) 위에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 그 고재 위의 과일들은 숨을 쉬며, 살아있는 생동감으로 빛나는 생명력을 지닌다. 오래된 나무 위에 하는 작업은 살아있는 무엇과의 재결합이다. 나무 결, 나이테, 숨쉬는 촉감…. 결국 김대섭의 그림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정형화된 캔버스와는 달리 고재나무 앞에서 심리적으로 무장해제하고 긴장감 없는 편안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작가가 느꼈던 나무를 대했던 마음과 손길, 그리고 살아있는 나무 결의 흐름을 함께 느끼게 된다. 소위 옛 맛을 느끼며 감성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부드러운 선과 선명한 색채로 기분 좋은 파동이 전해진다. 나무 판 위에 수많은 세계와 우주가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한 장의 정물이 탄생된다. 즉 오래된 세계(고재)와 또 한 세계(작가의 손길)가 만나는 긴 시간으로 완성체가 된다. 공간적인 깊이와 울림 즉 김대섭의 고재와 얼크러진 공간은 확장된 깊이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과일의 껍질에 배어 나와 하얗게 분처럼 굳은 당분을 보며 마치 우주의 행성을 떠올렸다는 ‘물아(物我)’ 시리즈로 대표되는 김대섭 작가의 작업을 한 자리에서 볼 전시 《물아(物我) – ‘경계 너머’ 展》이 6월 4일부터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이는 ‘물아’ 시리즈 신작 20여점과 더불어 지난 27년간의 화업의 긴 여정 살펴보는 전시이다. 정물화이지만 정물화의 그 전형성을 넘어서고, 2차원의 평면은 더 이상 평면이 아니며, 그동안의 다양한 시도와 그 경계들로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전시는 그의 회화 세계를 크게 네 개의 시리즈로 구성하였다.
첫 번째 연작 <터–삶>은 작가가 직접 밟아온 공간과 그 안에 깃든 일상의 흔적을 담아낸 작품들로,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서 삶의 빛을 포착한다. 인물이 부재한 장면 속에서도 자전거, 경운기, 농기계 등의 오브제가 삶의 결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두 번째 시리즈 <Memory>는 유년 시절의 감각과 기억을 환기하는 연작이다. 바람, 들꽃, 병아리 발자국 등 섬세한 기억의 단편들을 화폭 위에 불러내며, 관객의 감정과 교감한다.
세 번째 시리즈 <사의–사실>에서는 동양화의 여백과 서양화의 사실적인 정물을 병치하여, 회화 전통 간의 긴장과 조화를 탐구한다. 흐릿한 먹 선 같은 느낌과 또렷한 물성이 충돌하며, 감성과 인식,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펼쳐낸다.

마지막으로 <물아(物我)> 시리즈는 고재[木材]의 나이테와 옹이, 그리고 극사실적인 과일을 결합해 하나의 은하계처럼 구성한다. 흑백의 과일 표면은 마치 행성처럼 보이며, 이미지와 실재, 회화와 오브제, 2차원과 3차원이 서로 삼투하며 새로운 시각적 문법을 제시한다.
이렇게 이번 전시는 감동을 자아내는 <물아(物我)> 시리즈, 일상에서의 빛나는 순간들의 빛을 살피는 <터-삶>, 유년 시절의 감성적 기억들을 소환한 <Memory>, 동양화의 여백미에 서양화의 사실적 묘사를 녹여낸 <사의–사실>등 긴 시간의 다양한 시도로 그 경계 너머로의 김대섭의 긴 여정들을 살펴본다.

김대섭 작가는 이번 전시를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그림을 통해 삶과 기억, 시간과 사물에 대해 질문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 여정을 되짚는 자리이자, 내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물아(物我)> 시리즈를 중심으로 구성한 전시다.
전시장에는 나의 예전 대표작인 <터–삶>, <Memory>, <사의–사실> 시리즈의 일부 작품들이 함께 소개되며, 내가 꾸준히 탐구해 온 주제와 시선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터–삶> 시리즈에서는 풍경 속에 배어든 ‘삶의 자취’를, <Memory> 시리즈에서는 유년의 기억이 지닌 촉감과 정서를, <사의–사실> 시리즈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회화 언어가 만나는 긴장과 균형을 담아냈다면, 이번 전시의 중심이 되는 <물아(物我)> 시리즈는 사물과 자아의 경계를 탐색하는 회화적 사유의 지점이다.
고재[木材]의 나이테, 옹이, 질감과,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과일의 표면은 시간의 층위와 생명의 흔적을 고요하게 내비친다. 그 사물들을 흑백으로 응시하면, 색을 걷어낸 그 표면은 더 이상 ‘과일’이 아니며 마치 행성처럼 보이고, 때론 하나의 우주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과정에서 사물과 나, 이미지와 실재, 회화와 오브제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짐을 경험한다. 그림은 언제나 나에게 ‘보이는 것 너머’를 말하게 했다. <물아> 시리즈는 나의 내면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자, 회화가 가 닿을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의 층위에 대한 응시다.
이 전시를 통해 관람자 또한 자신만의 ‘터전’과 ‘기억’과 그리고 ‘물아’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작가노트’)

전시기획 김노암은 김대섭의 작업을 이렇게 말한다.
“포도를 그린 정물화에는 금속으로 만든 잎사귀가 결합되고 프레임 안의 구상에 프레임 밖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와 잎사귀가 그림과 사물, 이미지와 실재의 문제를 넌 지시 음미하게 한다. 2차원과 3차원의 이미지가 결합하고 충돌하고, 미술작품과 그 배경이 서로 삼투하며 기이한 환경을 만든다. 3차원이 되려는 2차원의 욕망이 한편으로는 좌절되고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선용된다. 작가는 점차 적극적으로 구상과 정물의 전형성의 그림자에 가려져있던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이번 전시에서 구체화하려 하고 있다. 이런 해석을 통해 김대섭 작가의 정물은 회화에서 오브제로 상호 유기적으로 삼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며 정물화가 더이상 정물화가 아닌 경계를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전통의 무의식적 반복이라는 부정적 키취 답습과 그러한 전통적 양식을 내부로부터 해체하며 긍정적 재현의 미학을 선취하고 그를 통한 전통의 새로운 해석과 전복이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갤러리 나우 이순심 대표는 “터전의 풍경에서 기억의 조각, 동양과 서양의 경계, 물아일체의 시선까지 4개의 시리즈로 되짚는 김대섭의 긴 여정의 회화 세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그의 20년 화업은 단순한 시간의 누적이 아닌, 감각과 철학이 응축된 서사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라고 말했다.
김대섭 작가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국내외에서 개인전 36회를 열면서 왕성하게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평론가상과 수채화 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미술은행, 서울지방법원, 대구법원 등 여러 기관이 소장한다.
김대섭 개인전 《물아(物我) – ‘경계 너머’ 展》는 갤러리 나우(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52길 16)에서 6월 28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