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갤러리(서울 인사아트센터 2층)에서 5월 21일 개막한 류민정 개인전《책에 바침(The Book: An Homage)》은 사라져가는 가는 책에 대한 애정과 회고를 바탕으로 한다.
“더 이상 나는 종이 위에 새겨진 글자들이 세상을 가르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속절없이 내 안의 한 시절이 흘러갔다. 많은 건축가들이 손에서 로트링펜을 놓게 되었듯.
그러나 영원의 흐름 속에서도 잊힘을 거부하는 이 사물, 책에게 내 마음의 무한한 연서를 보낸다.”(류민정)

작가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시간, 상상력의 본질을 되묻는다. 류민정 작가는 정보의 저장소를 넘어 감성, 기억, 삶의 여정을 담아낸 책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열망과 지적 상상력을 시각화한다. 책이 지녔던 촉감과 향기, 넘김의 감각 등에서 오는 정서적 경험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결핍이자 회복되어야 할 가치로 작가의 예술 안에 재구성된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책’, ‘책의 길을 따라’, ‘Beyond’ 세 가지 흐름으로 전시를 선보였다. 이는 어린 시절 상상의 문을 열어준 책에서 시작해, 삶의 궤적과 함께한 지혜의 기록을 거쳐, 디지털 환경 속에서 휘발되는 지식과 지속 가능한 사유의 경계를 탐색하는 여정이다. 작가는 책가도와 매화 등 전통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동양 안료와 채색 기법을 새롭게 변용하며 경계를 뛰어넘는 시각 언어를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복합적인 문화 지형 속에서 한국적 미학을 재발견하고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나는 책이 애닳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생성형 AI 그 속엔 페이지를 넘기던 촉감도 책장을 덮을 때 나는 미세한 바람 소리도 없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인간적 감수성과 물질적 기억이 결여된 시대에 보내는 예술적 헌사다. 작가는 존재의 리듬을 회복하고,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쓸모없음의 존엄성과 느림의 미학을 다시 이야기한다.

류민정 작가는 세명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건축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전통 회화기법을 활용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 2024년 제천문화재단 ‘올해의 작가전’, 곽재선문화재단 미르아트공모전 할리스특별상 수상 및 2018년 제6회 대갈문화축제 현대민화공모전 대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과 2020년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레지던시 활동 등 왕성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충청북도와 충북문화재단의 상반기 작가지원 전시인 류민정 개인전《책에 바침(The Book: An Homage)》은 6월 2일(월)까지 충북갤러리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