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준홍 작가는 런던과 서울에서 활동하며 건축 자재, 공사 현장 등을 소재로 한 설치, 평면, 영상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를 비판적으로 탐구해왔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그의 작업은 회화, 설치, 영상, 조각을 넘나들며, 현대인의 삶이 기술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3월 22일 개막하는 민준홍 개인전 《그럼에도, 풍차는 돌아간다》는 현대 도시의 불안과 미디어 소비의 역학을 탐구하는 자리로, 설치 작품, 평면 작업,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세계가 충돌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2014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이후 민준홍 작가는 건축 자재, 공사 현장, 도시 풍경에서 영감받아, 도시에서의 불안감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점차 그의 관심은 가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 그리고 이를 통해 생성되는 왜곡된 시각적 경험으로 확장되었다.
이번 전시 제목 ‘그럼에도, 풍차는 돌아간다’는 끊임없이 작동하는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을 은유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된 소셜 미디어, 광고, 알고리즘 기반 콘텐츠의 무한한 흐름은 민 작가의 작품 세계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 과부하 속에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을 포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건축 이미지를 파편화하고 왜곡하는 방식으로 사실주의에 도전하며, 다중 소실점과 과장된 변형을 활용해 익명의 인간과 물질적 요소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풍경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기술과 미디어가 우리의 현실 인식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묻는다. 전시에 등장하는 산발적인 배경과 무작위 형상들은 현대 사회의 과잉생산과 소비 구조를 반영하며, 전통적 재료와 디지털 이미지가 충돌하는 작품들은 소비주의 문화의 모순을 드러낸다.

민준홍 작가는 독일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 속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경증적 요소, 정보 과잉 속에서 마비된 비판적 사고와 피상성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디지털 왜곡과 물리적 텍스처를 결합한 조각, 설치, 영상 작업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트렌드와 지속적인 환경 문제 간의 긴장을 반영한다. 작품 속에는 일회용 소비재, 보정된 셀카 이미지, 전쟁 보도 영상 등 현대적 시각 경험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하며, 가상과 현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예술 감상을 넘어, 현대 사회가 기술과 결합하며 만들어낸 시각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은 이 전시를 통해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가 중첩되는 현대적 환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경험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시각적 정보와 현실의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럼에도, 풍차는 돌아간다》는 현대 사회의 혼돈과 역설적 조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시각적 기록으로서, 동시대 문화와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기회를 제공한다.
민준홍 작가의 작업을 우진영 미술 칼럼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격리와 형상’ 들뢰즈의 개념이 떠올랐다. 민준홍의 캔버스 속 익숙하고도 낯선 도상들에 대해 고민한 끝에. 민준홍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났다. 모티프는 점차 왜곡되고 분리되었다. 테이크 아웃 커피 케이스의 가운데가 갈라졌다. 난데없이 다면체들이 끼어있다. 당혹스럽다. 들뢰즈가 정의한 ‘자율성’과 맞닿아 있다면 과한 해석일까. 민준홍의 작품 세계는 이토록 입체적이다.
"‘도시에 대한 모든 것’이라 말하겠다. 민준홍의 최근 10여 년의 작업을 아우르는 키워드에 대해. 서울에서 자라났다.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학·석사를 졸업했고 영국 University College London Fine Art 에서 석사를 마쳤다. 우등 졸업이었다. 나고 자란 서울을 지나 베를린, 런던까지 작업의 거점을 옮겼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알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이 도시에 대해 양면적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각자의 삶의 파편들이 모여 한데 얽히고설켜 돌아가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는 회화를 넘어 설치, 영상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스스로를 ‘미술가’라 명명하며.
그의 세계 속에서 도시인이 걷고 있다. 터덜터덜. 뉴욕의 빌딩 숲이 솟아있다. 위용을 자랑하듯이. 런던의 안개가 보인다. 뿌옇다. 선연하기도 처연하기도 하다. 도시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모퉁이 어딘가에 우리가 서 있다. 어떤 날은 손을 뻗는다. 기운차게 도시인임을 뽐내면서. 다른 날은 눈물짓는다. 도시의 냉혹함에 져버렸기에. 뒤로 돌아 얼굴을 숨겨본다. 민준홍의 회화 속 익명의 도시인처럼.
바람이 불어야 한다. 풍차가 돌기 위해서는. 상상해본다. 맑고 청신한 바람결을. 민준홍의 그림 속 도시에 자리한 단정하고 위압적인 건물들 사이로 불어오는. 캔버스 속 인물들이 무거운 정육면체를 벗는다. 숨통이 트인다. <그럼에도, 풍차는 돌아간다> 속 민준홍이 구축한 공간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겠다. 우리는 도시에 산다. 달콤하고 살벌한.”

서울에서 태어난 민준홍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런던의 UCL 슬레이드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국제적인 예술적 기반을 확립했다.
유럽 기반의 예술문화 전문 출판사 SNAP Collective가 올해 한국 작가 민준홍의 화집 《Liquid Purgatory》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번 화집은 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조명하며,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혁신적인 출판 개념으로 주목받는 SNAP Collective 의 국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집 시리즈에 포함된다.
민준홍 개인전 《그럼에도, 풍차는 돌아간다》는 4월 19일까지 이길이구갤러리(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158길 35(신사동) 이길이구 빌딩)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