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표준 도량형 유물인 목제 되와 부산 범어사 괘불도 및 괘불함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 또 조선 후기 괘불도인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와 삼봉선생집 등이 국가등록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다. 이와 함께 통일신라의 탁월한 조형미 간직한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국보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은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목제 되)’과 ‘부산 범어사 괘불도 및 괘불함’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또 조선 후기 괘불도인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를 비롯해 ‘대방광불화엄경소 권118’, ‘삼봉선생집 권7’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국가유산청은 이와 함께 전남 곡성 태안사에 위치한 보물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했다. 

근대기 생활사 알 수 있는 나무 ‘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

국가유산청은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목제 되)’과 ‘부산 범어사 괘불도 및 괘불함’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되’. 이미지 국가유산청.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되’. 이미지 국가유산청.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7합5작 가로긴 목제 되)’은 지난 1905년 농상공부 평식과의 도량형법에 따른 칠합오작(七合五勺, 약 1천350㎤에 해당하는 부피) 부피를 기준으로 하는 되(升)로, 공인기관의 검정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평(平)’자 화인(火印, 쇠붙이로 만들어 불에 달구어 찍은 도장)이 확인됐다. 

해당 유물은 당시의 도량형 운영 체계와 근대기 도량형 및 생활사의 변천을 보여주는 것으로, 앞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국가기술표준원 계량박물관 소장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총 236건 549점)’과 동일한 명칭을 따르게 됐다.

부산 범어사 괘불도. 이미지 국가유산청.
부산 범어사 괘불도. 이미지 국가유산청.

같이 등록 예고된 ‘부산 범어사 괘불도 및 괘불함’은 지난 1905년 금호약효 등 근대기를 대표하는 수화승들에 의해 제작된 대형 불화와 이를 보관하는 함이다.

괘불도는 10미터가 넘는 대형 불화로 범어사의 큰 법회 시 야외에서 사용됐으며, 전통불화 도상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음영기법을 적극 활용한 20세기 초의 시대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 있어 근대기 불화 연구에 이정표가 될 만한 작품이다.

대웅전 후불벽 뒤 공간에 보관됐던 괘불함은 괘불도와 같은 금속 재질의 문양 장식이 있어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의 예고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근현대문화유산분과위원회 심의를 통해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도난 후 되찾은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 등 3건 보물 지정 예고

국가유산청은 조선 후기 괘불도인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를 비롯해 ‘대방광불화엄경소 권118’, ‘삼봉선생집 권7’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 이미지 국가유산청.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 이미지 국가유산청.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는 지난 1993년 도난됐다가 2020년 환수한 유물로, 화기(畫記)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84년이라는 제작 연대와 영산회라는 주제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이 괘불도는 석가여래를 압도적으로 크게 그리고,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화면 상단에 작게 배치한 삼신불 형식을 띠고 있다. 서산 개심사 영산회 괘불도(1772년)에서도 이와 같은 구도가 확인되지만 본존이 앉아 있는 형태인 좌상(坐像)으로 표현된 괘불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이 시기의 괘불이 10m를 넘거나 조금 못 미치는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이 괘불은 폭 약 4.5m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은 소형인데, 이는 사찰의 공간 배치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괘불도를 통해 당시 유가사의 공간 구성과 사찰의 규모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본존을 좌상 형식으로 그린 영산회 괘불이면서 삼신불로 구성한 점은 불교도상 연구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118’은 당의 승려 징관(澄觀, 738-839)이 지은 ‘화엄경수소연의초’에 대해 송의 승려 정원(淨源, 1011-1088)이 상세하게 해설을 단 ‘대방광불화엄경소’의 전체 120권 중 권118에 해당하는 불경이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고려로 귀국할 때 송의 정원이 한 질을 선물로 주었고, 이에 의천이 항주의 각수인 엄명 등에게 판각을 부탁해 1087년(고려 선종 4) 3월에 송의 상인 서전 등이 2천900여 경판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고려로 전해졌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이 경판을 가지고 책을 찍었으나 일본이 여러 차례 경판을 요청해옴에 따라 1424년(세종 6) 다른 경판들과 함께 일본에 하사한 이후로는 더 이상 인출본을 찾아볼 수 없어 가치가 크다.

대각국사 의천이 완성하고자 했던 대장경의 주석서 집성 과정과 경판의 후대 전래, 이와 연관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이 수입 경판을 일본에 하사한 사실을 통해 한·중·일 삼국의 불교교류 양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삼봉선생집 권7’은 여말선초의 학자이자 문신인 정도전(鄭道傳)의 문집이다. 정도전의 문집은 1397년(태조 6)에 처음으로 아들 정진(鄭津)이 ‘삼봉집’이라는 서명으로 간행했는데, 이는 정도전이 평소 정리해두었던 글을 정리해 엮은 것으로 권근(權近)의 서문이 실렸다. 그러나 이 책의 판본은 정도전이 왕자의 난에 연루돼 생을 마감하면서 흩어져 없어졌다.

이후 정도전의 증손인 정문형(鄭文炯)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하던 1465년(세조 11) 흩어진 초간본(初刊本)을 바탕으로 내용을 보태 ‘삼봉선생집’이라는 제목으로 안동에서 간행했는데, 이는 중간본(重刊本)으로 불리며 총 7권본의 구성이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삼봉선생집’은 중간본의 권7에 해당하는데, 「불씨잡변(佛氏雜辯)」, 「심기리편(心氣理篇)」 등의 내용과 함께 정진의 초간본 발문(跋文)과 정문형의 중간본 발문, 간행 관계자 기록이 수록돼 있다. 

지정 예고 대상본에만 수록돼 있는 이러한 기록은 ‘삼봉선생집’의 간행과 전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또한 희소한 조선 초기 문집 가운데 하나라는 점, 현재 전하는 다른 판본과의 비교 검토가 가능하다는 점,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라는 인물의 역사적 중요도 등으로 볼 때 학술적 가치가 높다. 

통일신라의 탁월한 조형미 간직한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국보 지정 예고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이미지  국가유산청.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이미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전남 곡성 태안사에 있는 보물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했다.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은 통일신라의 동리산문(桐裏山門)을 세운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 785-861)의 부도(浮圖)다.  부도는 고승(高僧)이 죽은 뒤에 유골을 안치해 세운 석조물이다.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은 여러 개의 석재를 짜 맞추어 조립한 가구식 기단을 별도로 조성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탑의 전형이다. 하나의 조형물에서 역동적인 조각기법과 절제된 조각기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또한 전체적인 비례감과 조형미가 뛰어나며, 특히 목조건축의 지붕 형상을 본떠 조각한 옥개석은 전통한옥의 처마곡선과 목부재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당대 최고의 석공이 시공했을 것으로 추정돼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크다.  

이외에도, 비문에 시호(적인)와 탑의 건립 시기(861년)가 명확히 기록돼 있어 팔각원당형 부도탑의 편년 기준작이 된다. 기단 주변에 남아 있는 4개의 주초석은 신라시대에 건립된 승탑 중 유일하게 예불행위를 위한 탑전(塔殿)시설을 갖추었던 흔적으로 추정돼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