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2에서 10월 31일 개막한 개인전 《바탕에는 이름이 없다》에서 김태연 작가는 삼각대나 지지대같이 ʻ주(主)’를 받치거나 보조해주는 ʻ부(副’)의 존재에 주목한다.
김태연의 전시에는 조각의 삶과 일반의 삶을 포괄해 ʻ부’를 이루는 사물들이 놓여 있다. 예를 들면 조각을 받치는 좌대, 조소용 흙을 견디는 심봉대, 카메라를 지지하는 삼각 다리, 파티션을 세우는 스탠드 등이다. 김태연 작가는 이들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거나 이들이 ʻ주’로 격상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각각의 역할을 상기할 수 있도록 그것이 본래 놓였던 모습을 옮겨 온다. 달리 말해 이기적인 구별하기, 경계짓기가 아니라, 구별을 흐리고 경계를 무화하여 사물을 바라보는 중립적 태도를 끌어냄으로써 이름 없는 것이 호명될 방식을 찾는다.

전시에서 ʻ부’로 이해한 사물은 중심이 되는 물체, 즉 ʻ주’로 파악한 사물을 보조하는 것들이다. 특히 다리나 지지대처럼 전체 사물의 핵심적인 부분을 떠받치는 일종의 노동을 하기 위해, 마치 배경(background)처럼 마련된 주변 장치다. 보조는 그것의 쓰임에 중심의 쓰임을 전제할 수밖에 없고, 쓰임의 최종 국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부산물로 치부된다. 그러나 보조의 부재는 중심을 무너뜨려 전체의 불완전한 귀결을 견인해 버릴 수도 있다.
전시가 말하는 주목받지 못함이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 없음의 상황이 ʻ부’로서 자신들의 쓰임을 잘해 낸 유효한 결과로 작동함을 가시화하려 한다.

작가가 말하는 “무음에 가까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 “그것 자체가 두드러지는 특징을 갖지 않는 것”이 이 사물들의 성격이며, 또 그러한 모습을 인지하는 일이 우리가 이들의 가치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사물은 조각의 모양이 되어 공간을 점유한다.
한편, 실용적인 기능이 분명한 일상 사물에 기반해 이를 조각으로 변주하는 실험은 과거 조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져 왔다. 김태연 작가는 그러한 조각의 역사적 변천을 배경으로 인지하고 활용하면서, 지금 여기에 선 자신에게 닥친 현실의 문제를 조각에 끌어들인다. 그가 주목하는 ʻ부’ 역할의 사물들은 단지 건조한 덩어리로서 물체나 조각이 놓이는 환경 개념을 고찰하기 위해 소환되었다기보다는 그것들이 지닌 근원적인 정체성에 작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존재의 의의를 충분히 길어 올리고자 만든 장 위에 묵묵하게 놓였다.

이름 없는 것을 이름 없이 부를 방법, 바탕인 것을 바탕인 채로 바라볼 방법이 그가 궁리하는 호명의 방식이다. ʻ부’의 노동이 없는 곳에 ʻ주’의 있음도 없다. 그리고 여기서 ʻ부’를 주목하는 일은 주목받는 개체의 나열이 아닌 공평한 총체를 구성함으로써 ʻ부’가 지닌 깊숙한 본질을 솟아낸다.

김태연 작가 개인전 《바탕에는 이름이 없다》는 11월 30일까지 갤러리2(서울시 종로구 평창길 204)에서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