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마지막 사진이 죄수복을 입은 수형자로 남은 특별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고 구국운동에 온 삶을 바친 것이 형벌을 받은 이유였다.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들이 마침내 빛바랜 죄수복을 벗고 영웅에게 걸맞은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대한민국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담은 캠페인 영상이 지난달 TV와 옥외광고, 유튜브 등에 퍼져 큰 감동을 안겼다.
사진으로만 남은 87명의 독립운동가를 AI 기술로 복원해 광복 79년 만에 위풍당당하게 선 모습을 재현해 존경과 예우를 담은 이 영상은 우리나라 중견 제과업체 ㈜빙그레가 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공중파 3사 TV로 76회 송출했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합쳐 조회수 682만 회를 기록했다.
빙그레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영웅을 기리는 영상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함, 그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 등을 담은 댓글만 5,100개가 넘는다.
독립운동가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있고, 누리꾼 중에는 "그렇지, AI는 이렇게 써야 기술이지", "투게더 먹을 때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겠습니다"라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광고는 물론 온라인 사진전 등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을 기획 진행한 빙그레 측에 제작과정, 방송과 송출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취재했다.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준비기간만 10개월
빙그레 측은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최대한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싶었다. 공훈록에조차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죄수복 차림으로, 슬픔과 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남아 있는 옥중 순국 독립운동가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광복 바로 전날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라며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영웅들께 직접 전할 순 없지만 걸맞은 옷을 선물하고 많은 이의 기억에 멋진 영웅의 모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실제 캠페인 준비과정은 작년 말부터 약 10개월이 걸렸다. 아이디어 기획부터 실제 자료조사와 대상자 선정, 후손들과의 연락, 사진 촬영에 대한 동의 구하기, 역사 고증 확인과 한복 디자이너 선정, 디자인 기획, 한복 복원용 사진 촬영, 증정용 한복제작, 온라인 사진전 기획, 영상제작 등 수많은 과정을 거쳤다.
담당자는 “아무래도 후손들의 기억 속에 있는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혹여나 실수나 잘못이 없는지 검토를 여러 번 거쳐 오래 걸렸다”고 했다.
“대한사람으로 왜인 판사 앞에 선 것이 하늘에 부끄럽다”고 먹물 뒤집어쓴 조용하 지사 얼굴모습 온전히 복원
사진 복원작업도 남달랐다. 단순히 과거 사진을 그대로 복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고려해 독립운동가의 ‘온전한’ 얼굴을 되살리고자 애썼다. 조용하(1882~1937) 지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조용하 지사는 대한제국 주독, 주불 공사관 참사관, 이천군수를 지냈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북경으로 망명해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32년 일경에 체포되어 1933년 징역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일제의 감시대상 인물 카드 속 조용하 지사의 얼굴에 검은 얼룩이 가득하다. 지사가 일제 법정에 서게 되자 “대한사람으로 왜인 판사 앞에 서는 것이 하늘에 부끄럽다”며 스스로 먹물을 얼굴에 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캠페인 사진 복원작업에서는 지사의 얼굴을 뒤덮은 먹물을 지워내고 깨끗한 얼굴로 복원해내어 기개 넘치는 모습이 잘 드러났다. 담당자는 “조사과정에서 옥중에 순국하셨지만 수형사진조차 없는 분들이 있었다. 남은 기록이 없다 보니 실제 얼굴을 알 수 없어 이번에 복원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중에라도 이분들의 사진을 찾게 된다면 꼭 ‘광복’을 입혀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에게 입혀드릴 한복 복원에는 김혜순 한복 명장과 김혜순 한복팀이 참여했다. 영상에서도 밝혔듯 김 명장은 “그분들의 마음을 담아 아주 귀한 옷감, 최고의 옷으로 지어드리고 싶었다”라며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담은 특별한 색과 그들이 입어 마땅했을 귀한 옷감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의복을 만들었다.
의열단원이자 민족시인 이육사(이원록),
시 ‘청포도’와 속 내용대로 푸른 청포 입은 청년으로 복원
한복 옷감에 사용된 소목빛은 ‘나라를 위한 희생정신’을, 쪽빛은 ‘어려운 환경 속 피어났던 절개’를, 치자빛은 ‘독립을 위한 간절한 희망’을 상징하며 그들의 기개를 표현했다.

의열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수형번호 264를 자신의 필명으로 삼아 ‘청포도’ 등 민족의식을 일깨운 시를 썼던 독립운동가 이원록(1904~1944) 지사는 영상에서 짙은 푸른빛 청포를 입었다. 광복 1년을 앞두고 숨진 이육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겪은 고초로 초췌한 모습이 아니라 깊고 사려깊은 눈빛을 지닌 빛나는 청춘의 모습이다.

이원록(이육사) 지사의 딸 이옥비 씨는 아버지가 포승줄에 묶이고 발에 쇠고랑을 차고서 놀란 순간 아버지가 다가와 “아버지 다녀오마”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영상에서 “아버지의 시 ‘청포도’에 ‘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라고 했는데 이제야 청포를 입고 나를 찾아 오셨네”라고 감회를 밝힌 바 있다. (2편 계속)
2편 단재 신채호 선생 후손 “할아버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