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부터 수 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에서 주민들이 모여 쉬고 논의하는 정자인 시정과 뙤약볕 아래 넓게 품어주는 당산나무는 매우 특별한 기억이자 남다른 의미이다.
지난 17일 토요일 전남 담양에는 우레와 같은 천둥과 함께 큰 번개가 쳐서 곳곳에 상흔을 남겼다.

“어이, 마을시정(연화정)이 벼락 맞아 부렀네.” 채동기(79) 씨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소주 두 병을 챙겨 담고 차 시동을 걸었다. 이른 아침 서둘러 담양군 창평면 연화마을 연화정 앞에 섰다.
연화마을 태생인 채동기 씨는 제일 먼저 애정하는 당산나무가 어제 오후 4시경 천둥번개를 맞았다는 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고 한다. 어릴 적 나뭇잎을 쓸어 모아 아궁이에 넣고 불을 피운 일을 잊을 수 없다고 속울음을 토했다.

연화정 앞 마을 보호수 느티목과 왕버들 두 그루의 기상은 감히 어떤 말로도 언급할 수 없다. 잘 생기고 기품있고, 또 그늘은 얼마나 많은 마을 사람에게 넉넉한 쉼터였을까?
이장직을 십수 년 맡으며 연화정을 정성껏 돌봤던 송태영(80) 씨는 “어제 이야기가 5분만 길어졌어도 친구들 6명을 잃을 뻔했다고 천행”이라고 애써 미소지었다. 폭염 27일째 밤잠도 설친 날들을 용케 이겨내고 마을 친구들이 연화정에 모였더란다. 요즘 정국 이야기, 자식들 걱정과 자랑 앞세우다가 옛 조상 추념을 했다고 한다.
조선조 숙종 때 지었다는 연화정이 쇠잔해져서 송태영 씨가 이장으로 있을 당시 후원금과 지원금을 모아 연화정을 재건했다. 그 연화정 천장이 어제 벼락에 꺼멓게 그을린 것이다.
둥근 기둥은 하반부가 총 맞은 듯 부서지고 짜개지고 정자에 있던 선풍기 뚜껑이 마룻바닥에 나뒹굴었다. 기와 파편이 널브러진 마루를 보면서 “인명피해가 없어 참말 다행이었다”라고 위안했다. 현재 송태영 씨는 마을 이장 직책 18년 마치고 향교 출입하는 유림이다.

어릴 적 마을 앞을 흐르는 광암천에서 버들치 잡던 친구 채동기 씨와 송태영 씨는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고 눈빛을 나누었다.
번개의 실체는 나무의 상처를 보고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느티나무의 높은 가지를 무사의 칼로 내려 쪼갠 듯 치고 지나 날쌘 뱀처럼 번개는 몸을 숨겼을까?

이날 정자 앞 마을 비석의 내력을 자세히 읽어보니 희사금 명단에 새겨진 두 친구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2022년 2월 25일 마을비를 세웠다고 하니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 직전 일이다.
천재지변이 지나간 다음 날은 허탈하다. 마치 아이 낳은 자궁처럼 허허롭다고 해야 할까? 118년 만에 맞닥뜨린 기후생태 변화가 일상 정서를 흔드는데 천둥, 번개는 어쩌다 이 마을을 찾아 왔는지 말문이 막힌다고.
고요하고 향기로운 연화마을은 도승이 명지(明地)로 콕 집어 준 연화부수(蓮花浮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생김새)의 터라고 한다. 천마산 가을 기운이 오늘도 더위에 지친 마을 사람을 잘 치유할 것이다. 천둥, 번개 때문에 찾은 연화마을 내력을 들으며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