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조선을 흔히 남성 중심의 사회라 하고 문인으로는 송순, 정철, 이황, 조식 등 남성 문인들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천재적인 예술성과 문학성을 발휘한 여성들이 있다. 송덕봉, 신사임당, 허난설헌을 조선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이라 한다. 그들의 삶을 이 시대 새롭게 조명해본다.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미암박물관 뜰에 놓인 송덕봉시인과 남편 미암 유희춘이 주고받은 '지락음' 시비. 사진 오소후 시인 제공.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미암박물관 뜰에 놓인 송덕봉시인과 남편 미암 유희춘이 주고받은 '지락음' 시비. 사진 오소후 시인 제공.

‘조선 여성 선비’라 일컬어지는 덕봉 송성중(1521~1578)은 고전 여성문학사에서 가장 먼저 개인 문집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의 문학 주제는 사랑이다.

당시 유교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할 도리를 다하면서 동시에 예의를 지키며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도 낼 줄 아는 여성 문인이었다. 평생의 친구처럼 서로를 존중했던 남편과 주고받은 시들을 소개한다.

詠雪聯句 영설연구(눈을 주제로 싯구를 주고받다)

(덕봉) 청산에 눈 가득하니 솔이 분을 바르고 (靑山雪滿松途粉 청산설만송도분)
(미암) 푸른 물에 바람이니 부들이 수를 놓누나 (綠水風來蒲刺紋 녹수풍래포자문)

송덕봉은 남편 미암 유희춘에게 자주 편지를 쓴 것으로 보인다. 시댁은 해남이고 고향은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덕봉 아래서 살아서 자호가 ‘덕봉’이라고 여겨진다.

부친인 홍주 송씨 송준과 모친 함안 이씨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서사(書史)를 섭렵하고 경사(經史)에 통달한 여사(女士, 학덕 높고 어진 여자)가 되었다. 홍주 송문의 여자들은 한시‧문‧작법 등을 교육받았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권필 장군의 부인 송씨 역시 홍주 송씨로, 한시에 조예가 깊었다.

(미암) 지락음을 아내에게 (至樂吟示成仲 지락음시성중)

뜰의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園花爛熳不須觀 원화난만불수관)
음악소리 쟁쟁 울려도 관심 없다오 (絲竹鏗鏘也等閑 사죽갱장야등한)
좋은 술 어여쁜 자태엔 흥미 없으니 (好酒姸姿無興味 호주연자무흥미)
참 맛은 오로지 책 속에 있다네 (眞腴唯在簡編間 진유유재간편간)

16세 혼담 후 8살 연상인 미암 유희춘과 1536년(중종 31년) 12월 11일 혼인하였다. 덕봉의 아버지 송준은 사위 유희춘이 ‘금슬백년(琴瑟百年)’ 시를 짓자 기뻐했다. 유희춘은 처가인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에서 지내다 1538년 별시 병과에 급제했고 1539년 2월 6일 아들 경렴(景濂)을 낳았다.

미암은 1543년 홍문관 수찬으로 재직하다 한양 생활을 정리하고 무장현감을 지냈다. 그러나 1544년 중종이 승하하고 이듬해 인종이 승하한 후 명종이 즉위한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21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멀리 제주도로 절도안치되었다가 다시 함경도 종성으로 옮겨졌다.

(덕봉) 지락음에 차운하여 (차지락음 次至樂吟)

봄바람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보던 것이요 (春風街景固來觀 춘풍가경고래관)
달 아래 타는 거문고도 하나의 한가람이지요 (月下彈琴亦一閑 월하탄금역일한)
술 또한 근심 잊게 하여 마음 호탕해지는데 (酒又忘憂情浩浩 주우망우정호호)
당신은 어찌 책속에만 빠져있답니까 (君何偏癖簡編間 군하편벽간편간)

덕봉에게 현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관직에 나갔다가 멀리 제주도로 절도안치된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안고 어린 자식을 돌보며 시어머니 봉양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였다. 그러다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시묘살이가 끝난 후 남편을 찾아 귀양지인 종성으로 떠났다. 다음 시는 함경도 종성으로 향하던 덕봉이 읊은 시이다.

담양 10정자 중 하나인 연계정과 미암박물관 인근 망인당에서 지락음 시를 낭독하는 김경선 시인. 사진 오소후 시인 제공.
담양 10정자 중 하나인 연계정과 미암박물관 인근 망인당에서 지락음 시를 낭독하는 김경선 시인. 사진 오소후 시인 제공.

(덕봉) 마천령 위에서 (磨天嶺上吟 마천령상음)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 (行行遂至磨千嶺 행행수지마천령)
동해는 거울처럼 끝없이 펼쳐 있구나 (東海無哀鏡面平 동해무애경면평)
부인의 몸으로 만리 길 어이 왔는가 (萬里婦人何事到 만리부인하사도)
삼종지도는 중하니 이 한 몸 가벼운 것을 (三從義重一身輕 삼종의중일신경, 
시어머니상을 모두 치뤄낸 가벼운 마음을 표현)

조선 최초의 여성 문집인 《덕봉문집》은 시로 주고받은 부부의 사랑과 자식과 친척에 대한 사랑, 자연경물에 대한 관조, 술을 통한 심경표출, 세시풍속에 대한 관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덕봉은 여성으로 남편 유희춘과 서로 주고받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정감이 넘치는 애정의 세계를 진솔하게 그렸다. 시상 전개나 표현도 매우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라 남자 못지않은 기상과 호방함, 운치와 격조가 높고 맑은 품격의 시들이 많아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12년 『국역 덕봉집』이 조선대학교 고전연구원 국역총서 1권으로 출간되었다. 이를 교본으로 삼아 시인 신해자, 시인 김경선 (문학박사), 화백 시인 공난숙, 그리고 시인 오소후가 중심축이 되어 덕봉문집을 읽고 문자향을 즐겼다.

덕봉문집을 공부하는 시인들. (왼쪽부터) 신해자 시인, 공난숙 시인, 오소후 시인. 사진 오소후 시인 제공.
덕봉문집을 공부하는 시인들. (왼쪽부터) 신해자 시인, 공난숙 시인, 오소후 시인. 사진 오소후 시인 제공.

때로는 공난숙 화가의 코칭으로 삽화를 그리고, 화선지에 컬리그래피로 덕봉시를 옮겨보기도 했다. 덕봉과 미암이 살던 담양의 노루목 마을 연계정과 호수 안에 지은 모현관, 그리고 미암박물관을 한 달에 한 번씩 찾아 박물관장의 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억눌렸으나, 덕봉처럼 조선 전기 여성은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앞으로 덕봉문집을 널리 알려 서로 예술혼을 나누었던 소울메이트 덕봉과 미암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도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현실에서 양성 운동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한다.

오소후 시인. (한국예술문화명인진흥회 명인)
오소후 시인. (한국예술문화명인진흥회 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