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우리 삶에서 필수요소인 의식주 중 동물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바로 복식 문화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과 동경, 그리고 사회 집단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종합문화이자 정체성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우리 옷 한복을 둘러싼 한중 문화충돌을 이야기한다.
(1편에 이어)
한국 연예인의 한복 차림, 갓‧봉잠 등 장신구 착용에 댓글 테러를 일삼는 중국 누리꾼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들은 한복이 명나라 ‘한푸’에서 기원이라며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는데 정작 명나라에서는 조선의 드레스 패션 〈마미군〉이 유행했다.

마미군이 한복의 고유한 특징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전통 복식양식과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고대 한나라부터 당, 송, 명, 청을 거쳐오면서 여성 의복의 선은 대부분 에이치(H)라인이었다. 하늘하늘하게 몸을 감싸거나 몽골 의복처럼 어깨에서 아래로 무겁게 떨어지는 에이치 라인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일본의 여성 의복 또한 하의를 풍성하게 부풀리는 패션은 유행하지 않았고 비슷한 시기 베트남 등 동남아의 여성 패션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한복은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상의는 작고 가벼우면서 꽉 조이도록 입고, 하의는 풍성하게 부풀려 달항아리와 같은 볼륨감과 곡선미를 최대한 살린 상박하후(上薄下厚) 패션이 거듭 도래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지난해 음식문화에 이어 올해 한복과 관련한 한중 문화충돌을 주제로 7월 22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공동으로 ‘한국의 옷과 멋’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명나라의 조선 드레스 열풍과 조선 전기 여성 한복’을 주제로 마미군 연구를 발표한 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발표 중 “서구에서는 르네상스를 지나 15세기 이후 치마폭이 넓은 드레스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19세기 유럽에서는 한껏 부풀린 드레스를 입기 위해 말총으로 만든 페티코트인 ‘크리놀린(Crinoline)이 등장했다”며 “동아시아의 말총 페티코트는 조선에서 탄생했다. 아시아에서 유행한 패션이 400년 후인 19세기 서양에서 대유행을 한 셈”이라고 했다.
만약, 중국 누리꾼이 주장하는 기원론 내지 원조론을 적용하면, 조선의 마미군이 서양의 말총 페티코드, 크리놀린의 기원인가?

구도영 연구위원은 강력하게 “이는 동서양과 시대를 관통한 동서양 복식의 문화사적 보편성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즉, 문화가 한 지역에서 발생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간다는 전제하에서 제시한 ‘문화전파론’ 이론의 커다란 구멍을 지적한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 기획자인 구도영 연구위원은 문화전파론을 기반으로 중국 누리꾼이 주장하는 ‘중국 기원론’ 내지 ‘중국 원조론’의 모순과 맹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중국은 한국에 대해 문화원조를 자처하지만, 중국이야말로 사실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문화수용자였다. 미국을 상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라며 “중국은 주변국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문화를 성장시킨 아시아의 제국이었기 때문에 문화원조를 강조하게 되면 사실 중국 문화라는 것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고 역설했다.
구 연구위원은 “예컨대 《시경》에서 ‘저’에 대한 기록이 등장했으니 한국 김치는 중국이 기원이라 주장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한국 김치의 원류는 기록이 더 이른 시기에 확인되는 메소포타미아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이 문화주권을 주장하는 성리학조차 중국 고유의 학문이 아니라 인도의 불교 문화 유입 때 만들어진 ‘하이브리드 유학’이라고 볼 수가 있겠다”라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도왔다.
설명을 덧붙이면 성리학의 발생은 다음과 같다. 진시황제에 의해 유학 서적들이 모두 불태워진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 이후 유학은 옛 유학 경전의 문장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훈고학이 주류를 차지했다.
성리학은 획일적인 훈고학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당나라 말기 불교를 비롯한 도교 등에서 여러 형이상학적 요소를 차용해 발생한 신유학 성리학은 송나라 이후 주류를 이루었다.

현재 중국 사회에 널리 확산한 문화 인식은 중화 문명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문화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일방향으로 흘렀다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인식은 서구 제국주의와 사회진화론이 풍미했던 19세기 말 통용되던 문화이론 ‘문화전파론’을 근저에 두고 있다.
주류학계는 문화를 우열로 구분할 수 없다는 문화상대주의가 100년 가까이 논의되며 모든 문화는 섞이고 융합되었다는 연구가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물론 아시아 학계에서는 여전히 ‘문화전파론’에 기반한 시각이 적지 않다.
문화를 포함한 전파이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인간사회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된다며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진화이론과 더불어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된 이론이다.
중국은 아시아의 제국을 자처했지만 전파이론이 풍미하던 시기 서구 제국주의 동진東進에 따라 충돌한 아편전쟁으로 영국, 프랑스 등 서구열강에 수도를 빼앗기고 홍콩 할양을 포함한 불평등조약, 난징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