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부모님께 선물하는 꽃이 된 카네이션. 사진 Pixabay이미지.
어버이날 부모님께 선물하는 꽃이 된 카네이션. 사진 Pixabay이미지.

매년 어버이날을 앞두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가슴에 달아줄 붉은색 카네이션을 만들고,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들고 부모님을 찾는 발길이 분주해진다.

붉은색 카네이션의 꽃말은 “당신의 사랑을 믿습니다”, 분홍색 카네이션은 “당신을 열렬히 사랑합니다”, 그리고 흰색 카네이션은 “나의 애정은 살아있습니다”라고 한다. 통상 살아계신 부모에게는 붉은색 카네이션을, 돌아가신 부모에게는 흰색 카네이션을 선물한다. 분홍색도 적절하지만, 노란색의 경우 “당신을 경멸합니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이렇듯 꽃말로 마음을 전하는 전통은 17세기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에서 시작되었고, 18세기인 1717년 영국의 메리 워틀리 몬테규와 1727년 프랑스 출신 오브리 드 라 모레이레이가 자신의 책에 꽃말을 적어 세상에 보급했다. 이 풍습은 특히 빅토리아 시대에 대유행해 지금도 여전히 꽃을 선물해 마음을 전하고 받는 사람을 꽃을 통해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전달받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 1925년 들어온 카네이션은 매년 5월 8일 어버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상징이 되었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한국에 1925년 들어온 카네이션은 매년 5월 8일 어버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상징이 되었다. 사진 Pixabay 이미지.

카네이션은 언제부터 어버이에게 전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을까?

카네이션은 2천 년 전 그리스에서 재배한 기록이 있을 만큼 유서 깊은 꽃으로, 16세기 여러 품종이 개발되어 사랑받았는데 어버이의 사랑을 상징하게 된 것은 190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되었다.

필라델피아 웹스터 마을에 살던 앤 리바이스 자비스 부인이 남북전쟁을 비롯해 여러 사회 혼란 속에 늘어난 고아들을 20여 년간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일요학교에서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며 어버이를 존경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과로로 얻은 병으로 자비스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딸 안나 자비스는 어머니의 은혜를 기려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던 카네이션을 추모식에서 바쳤고, 늘 카네이션을 들고 어머니의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매년 추모 행사에서 사람들에게 흰 카네이션을 나눠주며 추모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퍼져 1908년 시애틀에서 자비스 부인의 사망일인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고, 미 의회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식 지정했다.

국내에 카네이션이 들어온 시기는 1925년 경이고, 1956년부터 매년 5월 8일을 어머니날, 이후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꿔 기념했다.

카네이션이 서양에서 어버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꽃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정조대왕의 복숭아꽃이 있다.

조선 후기 중흥군주 정조대왕의 효를 상징하는 복숭아꽃. 사진 Pixabay 이미지.
조선 후기 중흥군주 정조대왕의 효를 상징하는 복숭아꽃. 사진 Pixabay 이미지.

봉숭아꽃은 늙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무릉도원에 피는 꽃으로 예부터 무병장수의 상징이던 꽃이다. 또한, 조선 왕실 잔치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나쁜 기운을 예방하고 쫓는 벽사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중흥을 이끌던 정조는 어버이에 대한 효심이 매우 깊은 왕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이상을 담은 화성행궁을 건설한 후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하고 1789년부터 자신이 사망하는 1800년까지 매년 능행을 했다.

1735년생 동갑이던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는 정조 19년(1795) 왕은 윤2월 9일 어머니를 모시고 창덕궁을 출발해 12일 현륭원에 참배 후 윤2월 13일 수원 화성의 정당正堂인 봉수당에서 모친의 회갑연을 성대하게 열었다.

봉수당진찬도와 진찬도 속 한지로 고이 접은 복숭아꽃으로 장식한 준화. 사진 동국대학교박물관.
봉수당진찬도와 진찬도 속 한지로 고이 접은 복숭아꽃으로 장식한 준화. 사진 동국대학교박물관.
2021년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재현한 준화.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2021년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재현한 준화.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조선왕조실록에 정조는 이날 “아, 즐거운 이 잔칫날 만물이 모두 다 은혜를 입고, 화창한 봄날 맞이하여 하늘의 도우심에 보답합니다. 어머님은 더욱 오래 사시어 크나큰 복록을 받을 것이며 태평 시대는 끝없이 이어져 가리이다. 경하하는 마음 누를 길 없어 삼가 만세를 기원하는 술잔을 올립니다”라고 했다.

회갑연 한 달 전부터 일정과 참가자, 장식, 의장행렬, 음식과 행사 규모를 세심하게 준비한 이 잔치 마당에는 한지로 고이 접은 홍색 복숭아꽃, 홍도화紅桃花와 푸른색 복숭아꽃, 벽도화碧桃花 2,000송이를 2개의 화병에 각각 꽃은 준화樽花로 장식되었다.

그리고 신하와 백성에게 관모와 갓 등에 꽂고 장식할 1만 개의 홍도화가 사용되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여의고 28세에 홀로 된 혜경궁의 환갑을 맞이해 모친의 장수와 건강을 염원하는 의미로 백성에게 베푼 것으로 추정된다. 환갑연 다음 날에는 신풍루에서 사방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낙남헌에서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 두 자리 모두 정조가 참석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속 복숭아꽃으로 장식한 준화(한지로 접은 꽃을 담은 화병).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원행을묘정리의궤 속 복숭아꽃으로 장식한 준화(한지로 접은 꽃을 담은 화병).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잔치에는 복숭아꽃 외에도 연꽃과 장미 등이 사용되었으나, 그중 가장 으뜸이 바로 복숭아꽃이다. 홍도화, 벽도화로 아름답게 장식된 잔치 마당의 모습은 〈원행을묘정리의궤〉와 〈봉수당진찬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창경궁에서는 매년 4월 말경 정조의 효도화 복숭아꽃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가족체험 '정조의 꽃'을 진행한다. 사진 창경궁관리소.
창경궁에서는 매년 4월 말경 정조의 효도화 복숭아꽃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가족체험 '정조의 꽃'을 진행한다. 사진 창경궁관리소.

한편, 실제 윤2월 13일은 사도세자의 환갑일이었고, 어머니 혜경궁의 진짜 생신인 6월 18일에는 창경궁 연희당에서 다시 모친을 위한 회갑연을 열고,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에서 친히 참관해 가난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미곡을 나누어주었다. 정조의 어버이에 대한 깊은 사랑과 백성의 어버이인 국왕으로서 본분에 충실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