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고 든 생각, ‘뭐가 위대하다는 거지’ ‘데이지를 비롯한 여성들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명작의 하나라는 세간의 평가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기억이 남아 있는 소설이 또 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다.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로 예술혼에 불타는 화가의 삶을 그린 걸작으로 추천도서 목록에 거의 항상 들어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감동보다는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무책임, 오만, 여성 비하 등이 주는 불편함과 불쾌함이 더 컸다. 그래서 이 소설을 걸작, 명작, 필독서로 정하는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기준이었다.

한승혜 외 지음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사진 정유철 기자
한승혜 외 지음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사진 정유철 기자

 

이번이 한승혜 외 지음《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문예출판사, 2023)은 《위대한 개츠비》, 《달과 6펜스》 등이 남긴 불편함과 불쾌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고전의 반열에 올라 현재까지 꾸준히 읽히고 언급되는 작품을 여덟 명의 저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읽고 분석한 글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여성 모욕’이라는 주제로 소위 ‘걸작들’을 여러 사람의 시각으로 새롭게 읽는 방식을 제시하였다.

이 책에서 다룬 작품은 <말광량이 길들이기>, 《달과 6펜스》,《안녕 내 사랑 》, 《위대한 개츠비》, 《나자》《그리스인 조르바》<날개> <메데이아> 여덟 편이다. 한승혜, 박정훈, 김용언, 심진경, 이라영, 조이한, 정희진, 장은수 저자가 자율적으로 작품을 하나씩 선정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에서 저자들의 글을 한 편 한 편 읽어가면서 원작을 다시 생각하며 저자들이 지적하는 내용과 내가 느꼈던 점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문제가 나 또한 느꼈던 것이면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싶어 기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직 읽지 못한 고전, 걸작을 언젠가는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줄어들어 가슴이 한결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이른바 걸작이라는 소설이 지닌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비판하는 책을 드문데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그러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솔직히 드러낸다. 이 점 상찬할 만하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다시 읽기를 제안한다. 나아가 다시 쓰기를 권한다. 그래서 ‘걸작’ ‘명작’이라는 평가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소수자들의 다시 읽기와 다시 쓰기는 해석하는 위치를 점령한 주류 서사에 균열을 내는 저항 행위다.”

이렇게 하여 ‘고전’, ‘걸작’을 다시 정해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비판적 읽기가 작품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 중에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계속 읽어볼 만한 흥미와 매력을 지닌 작품도 있지만, 냉정한 재평가를 통해 ‘고전’, ‘걸작’의 자리에서 빼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작품도 있다.”

이 대목, 누군가 정해준 ‘고전’, ‘걸작’라는 책들을 다시 읽고 나만의 ‘고전’, ‘걸작’을 선정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나만의 고전’을 선정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걸작’라는 평가를 버리고 그 ‘걸작’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 또한 소중하다. 왜?

"다양한 시선이 경합하지 않고 하나의 시선이 지배할 때 우리의 인식은 축소되어 편협함을 벗어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