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부커상을 비롯해 셰익스피어상, 톨스토이 문학상 등 소설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들을 받은 77세의 노소설가 줄리언 반스. 그가 기억과 역사, 사랑, 진실을 주제로 소설가인 자신의 삶과 경험을 이야기했다.

77세의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지난 4월 22일부터 27일까지 EBS '위대한 수업-소설가의 글쓰기'에서 그의 책을 통해 기억과 역사, 사랑,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진=EBS 강연]
77세의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지난 4월 22일부터 27일까지 EBS '위대한 수업-소설가의 글쓰기'에서 그의 책을 통해 기억과 역사, 사랑,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진=EBS '위대한 수업' 강연 갈무리]

줄리언 반스는 한국교육방송(EBS)가 지난 4월 22일부터 27일까지 총 4강에 걸쳐 진행한 ‘위대한 수업(Great Minds)-소설가의 글쓰기’를 통해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1946년 영국에서 태어난 줄리언 반스는 소설과 비소설 등 장르의 경계,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고 관습을 거스르는 글을 써 ‘하이브리드 작가’로 불린다.

강연은 ▲1강 첫 소설 ‘메트로랜드’ ▲2강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3강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4강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진행되었다. 모두 그가 쓴 책의 제목이다. 짧게 소개되는 책 내용을 매개로 글쓰기를 택한 청년시절, 작가 줄리언 반스의 원동력인 독자와의 공감, 평생의 문학적 동지이자 아내인 팻 카바나를 잃은 경험과 죽음에 대한 태도, 코로나 팬데믹 경험 등을 전했다.

1강에서는 1960년대 영국의 호황기,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가 일자리를 만들어주던 때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형사법원에서 변호하기보다 100자짜리 소설 서평을 쓰는 것이 좋아 글쓰기를 택한 청년 반스의 이야기를 전했다. 수입이 너무나 적어서 세무조사를 받았던 일화에서 “차도 없고,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는다. 사치스럽게 누리는 건 상상력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부끄러웠던 기억을 말했다.

그는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에 대한 주위 친구의 반응도 냉담했고 사실 별로라고 생각해 출간하지 않을 생각이다가 어찌해서 출판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수천마일 밖 국적, 성별, 나이도 다른 독자와의 공감이 작가로서 가장 즐겁고 만족스러운 순간이 되었고, 그가 소설을 계속 쓰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반스는 출판사로부터 비웃음과 모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고집이 있었다. 그는 “작가나 예술가에게 ‘고집’은 중요하다. 자신이 하고, 계획하고 노력하는 게 가치 있다고 믿어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지금까지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는 ‘비앙 당 사포(Bien dans sa peau)’라는 프랑스어를 소개했다. ‘자기 껍질 속에 잘 들어가 있다’라는 뜻이다. 그에게 글을 쓰는 공간, 서재는 자신에게 잘 맞는 껍질이다. 그는 “30대부터 잘 맞는 껍질 속에서 행복을 누려왔다. (서재에 있을 때) 가장 나답다고 느낀다”라고 했다.

줄리언 반스는 소설가로서의 삶과 글 쓰는 공간인 서재가 자신에게 잘 맞는 껍질이라고 했다. [사진=EBS '위대한 수업' 강연 갈무리]
줄리언 반스는 소설가로서의 삶과 글 쓰는 공간인 서재가 자신에게 잘 맞는 껍질이라고 했다. [사진=EBS '위대한 수업' 강연 갈무리]

2강에서 반스는 “한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데 늘 관심이 있다”라며 기억과 망각, 시간과 시간이 흘러가는 방법, 시간과 기억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험을 전했다.

자신의 가족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각자 일기를 썼고, 때때로 저녁시간 몇 년 전 같은 주에 쓴 일기를 낭독하며 서로의 기억이 얼마나 달랐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철학자인 형 조나단 반스와 옛 기억을 더듬으며 “기억은 실제 사건을 복원하는 작업이지만 그만큼 상상력도 관여한다”라고 합의했다.

또한, 2강과 3강에서 최근 코로나 팬데믹 당시 경험을 전했다. 그는 “팬데믹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으로 친한 친구한테만 의지하고 다른 사람들은 만나지 않는 어느 정도의 비사회적 상태를 경험하고, 똑같은 일상 속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하기도 하고 아쭈 빠르게 흐르는 것과 같은 시간의 왜곡 현상도 경험했다”라며 “삶에서 오는 충만함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었다”라고 했다.

3강에서 그는 “사랑의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다. 각자 속한 사회의 눈으로 사랑을 본다”라며 스탈린 시절 러시아에서 공산당과 스탈린을 사랑하도록 강요받고 그 외의 관계는 하찮게 여기도록 하면서 사랑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빼앗겼던 사례를 들었다.

그리고 탈북인의 자서전을 인용했다. “서양인들은 로맨스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책이나 영화, 혹은 다른 사람을 관찰하며 사랑을 배운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엔 본보기가 없었다. 그땐 그런 감정을 표현할 언어조차 없었다. 그저 사랑받고 있다고 추측해야만 했다. 상대의 눈빛을 보고 목소리 톤을 들으며 말이다.”

줄리언 반스는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
줄리언 반스는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 "야외 카페 테이블에서 나란히 앉아 길 건너편 일을 구경할 뿐"이라고 표현했다. [사진=EBS '위대한 수업' 강연 갈무리]

4강에서 줄리언 반스는 작가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라며 작가와 독자의 관계,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자신의 방식에 대해 “함께 야외 카페 테이블에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말없이 나란히 앉아 그저 길 건너편 일들을 구경할 뿐”이라고 표현했다.

반스는 “‘이게 세상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결론을 던지는 작가가 아니다. ‘제가 보는 세상은 이렇지만 어떻게 살지는 당신이 결정하세요’라고 말하는 훨씬 협력적인 관계”라고 소신을 밝혔다.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강의는 EBS ‘위대한 수업’ 다시보기로 시청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