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철도역 중 사람의 이름으로 된 첫 번째 역은 경춘선의 김유정역이다. 지하철 경의중앙선 상봉역에서 경춘선으로 갈아타고 1시간 15분쯤 달리면 나온다.

설날 긴 연휴, 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지하철을 타고 한국 문학의 대표주자 김유정의 소설 한 편을 읽고 토론해보고, 자연 속에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시간여행을 하면 어떨까?

경춘선 김유정역은 본래 신남역이었다가 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딴 철도역이 되었다. 2018년 기존 역이 폐쇄되고 300m 떨어진 거리에 새로 개설되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경춘선 김유정역의 본래 신남역이었다가 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딴 철도역이 되었다. 2018년 기존 역이 폐쇄되고 300m 떨어진 거리에 새로 개설되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김유정역에서 내려서 걸으면 5분 거리에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봄‧봄’, ‘동백꽃’ ‘소낙비’ 등 우직하고 순박한 주인공들의 생생한 삶이 묻어나는 언어와 엉뚱한 반전, 의외의 전개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김유정의 문학세계와 짧고도 쓸쓸했던 그의 인생을 마주할 수 있다.

굵직한 산들로 사방이 둘러싸여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고 하여 ‘실레’라 붙여진 이곳 마을이름처럼 문학촌은 산자락에 감싸여 아늑하다. 김유정이 태어나고 그의 소설 속 실제 배경이 되어준 현장이다.

김유정문학촌이 있는 춘천 실레마을은 산들로 둘러싸인 떡시루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름붙여졌다. [사진=강나리 기자]
김유정문학촌이 있는 춘천 실레마을은 산들로 둘러싸인 떡시루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름붙여졌다. [사진=강나리 기자]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태어났으니 곧 만 114년이 된다. 이곳에 그가 살다간 190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 우리 농촌의 모습을 재현해놓아 한 바퀴 둘러보면 묘한 향수가 피어난다.

김유정 생가. (시계방향으로) 생가 정면, 안채와 사랑채 등으로 둘러싸인 작은 뜰 중정, 중정에서 바라본 하늘, 생가 오른편 우물. [사진=강나리 기자]
김유정 생가. (시계방향으로) 생가 정면, 안채와 사랑채 등으로 둘러싸인 작은 뜰 중정, 중정에서 바라본 하늘, 생가 오른편 우물. [사진=강나리 기자]

초가 한옥 안에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작은 뜰 중정中庭, 생가 내 부엌과 창고, 디딜방앗간에 걸려있는 광주리와 키, 절구와 삼태기 등 생활소품들이 정겹다. 또한 문학촌 입구에서 생가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소설 속 당시 우리 옷을 입어보고 무늬를 찍어보는 옷 공방,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도예체험관, 민화 체험실 등이 있어 직접 만들어 보고 체험해 볼 수 있다.

생가 왼쪽에 자리잡은 디딜방앗간과 그 안에 전시된 생활소품들. [사진=강나리 기자]
생가 왼쪽에 자리잡은 디딜방앗간과 그 안에 전시된 생활소품들. [사진=강나리 기자]
문학촌 야외 뜰에 마련된 민속공예 체험장 중 도예체험방. 유료로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문학촌 야외 뜰에 마련된 민속공예 체험장 중 도예체험방. 유료로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또한, 곳곳에 그의 소설 ‘봄‧봄’ 속 주요장면이 펼쳐져 주인공들의 익살스러우면서도 애틋한 표정이 눈길을 끈다.

‘배참봉댁 마름 김봉필은 딸만 여럿 낳아 데릴사위로 들이겠다며 공짜로 부려먹고 내쳤다. 둘째 딸 점순이와 혼례를 올리겠다고 나선 주인공 ‘나’는 세 번째 도전자로, 잘 자라지 않는 점순이의 키가 원망스럽다. “밤낮 일만 하다 말텐가?” 톡 쏘아붙이는 점순이의 부추김과 술김에 장인 김봉필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잡고 드잡이 하는 주인공.’

문학촌 입구 야외에 전시된 소설 ‘봄‧봄’ 의 장면들. [사진=강나리 기자]
문학촌 입구 야외에 전시된 소설 ‘봄‧봄’ 의 장면들. 주인공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사진=강나리 기자]

이처럼 김유정은 주인공을 ‘나’라고 1인칭으로 표현했다. 당시 식민지 농촌이 처한 수탈과 그로 인한 취약함, 여전히 남은 전근대적 질서와 근대사회로의 변화에 처한 농민들과 도시 빈민의 삶 속에 스며들어 그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작품 속에 표현했다.

그의 언어는 감칠맛 나는 속어와 비어, 그리고 깊이 통찰하고 감싸 안는 어법을 통해 독자를 소설 속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김유정 생가 마당에 펼쳐진 소설 '동백꽃'의 한 장면. 여기서 동백꽃은 흔히 알고 있는 겨울철 붉은 꽃이 아니라 동백 기름을 짜는 알싸한 향이 나는 노란 꽃이다.[사진=강나리 기자]
김유정 생가 마당에 펼쳐진 소설 '동백꽃'의 한 장면과 이를 지켜보는 작가 김유정. 여기서 동백꽃은 흔히 알고 있는 겨울철 붉은 꽃이 아니라 동백 기름을 짜는 알싸한 향이 나는 노란 꽃이다.[사진=강나리 기자]

동시대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이무영의 ‘흙의 노예’ 등이 농촌을 소재로 했을 뿐, 농촌과 농민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보다 가르치겠다는 목적의식이 높은 계몽주의적 색체가 강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광수, 심훈, 이무영의 소설 속 시선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면, 김유정의 소설 속 시선은 사회적 하층민인 주인공들과 같은 입장인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있다.

소설 '봄봄'의 한 장면.
소설 '봄봄'의 한 장면.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사실 장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귀배기 하나가 작다). 김유정의 소설 속 언어는 주인공의 애환이 고스란히 1인칭 시점에서 배어나온다. [사진=강나리 기자]

김유정 생가 내 전시관을 둘러보면 그의 작품세계가 왜 남달랐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 남아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말을 더듬던 청소년기, 늘 몸이 허약해 결석 때문에 연희전문학교에서 제적당한 청년기, 어머니를 닮아 짝사랑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당대 명창이자 기생 박록주와의 사랑, 폐결핵 등 질병과 가난 속에 29세로 죽는 날까지 펜을 잡았던 그의 삶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그가 친우들과 주고받은 편지, 학창시절 성적표도 볼 수 있다.

생가 내 전시관에서 말더듬이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짝사랑에 실패하고 고향에 내려온 후 고향을 소재로 소설을 썼으나 평생 질병에 시달렸던 김유정의 스물아홉 해 삶과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생가 내 전시관에서 말더듬이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짝사랑에 실패하고 고향에 내려온 후 고향을 소재로 소설을 썼으나 평생 질병에 시달렸던 김유정의 스물아홉 해 삶과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아울러 현재 김유정역에서 300미터 떨어진 (구)김유정역을 방문하면 옛 역사와 기차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김유정문학관은 매주 월요일과 설날, 추석 당일 휴관하며, 김유정 생가와 전시관, 김유정 이야기집 관람은 생가 앞 매표소에서 유료로 표를 구입해야 할 수 있다. 민속공예 체험은 각 코스마다 유료이며, 일부 코스만 운영하고 있어 문학관 측에 사전에 문의 후 가는 것이 좋다. 문학촌 내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하며, 코로나19 방역관련 조치가 실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