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국학원에서 박상돈(72) 천안시장을 만났다.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초유의 자동차 극장 방식 축제를 도입해 ‘흥타령 춤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그는 스스로를 ‘나이 든 청년’이라고 칭하며, 청년들을 남다른 애정과 관심으로 격려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이 청년이 가진 잠재력입니다. 당장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꿈과 상상력이 있는 한 언제라도 폭발할 날이 있게 마련입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미래를 즐겁게 상상하면서 지금 현재를 투자하세요.”

빈농의 7남매 중 5남으로 태어난 그가 고등교육의 꿈을 위해 평발을 단련해 육사에 들어갈 결심을 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역경을 딛고 꿈을 이루려는 청년 같은 그의 열정과 도전은 고품격 문화도시 천안을 위해서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스스로를 '나이든 청년'이라 소개한다. 김경아 기자

천안시의 인구가 70만, 인구 50만이 넘는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 SNS로 소통을 가장 잘하는 자치단체장으로 뽑히셨습니다. SNS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박상돈: 얼마 전에 그런 결과를 다룬 뉴스를 접했어요. 사실 시장이 돼서 SNS를 처음 시작한 건 아니에요. 국회의원 시절에는 트위터를 이용해서 소통을 했어요. 당시 현역 국회의원들 중에 트위터 활용도가 5, 6위 정도 되는 의원이었어요.

SNS로 대화를 하게 됐던 배경은 저는 어떤 조직이나 팬덤에 의해서 정치를 배우지 못했어요. 그런 조직이나 팬덤에 의한 정치는 개별적인 접촉에 의해서 세력을 불려야 되거든요. 

그러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고 만나면 식사해야 되고 술도 마셔야 돼요. 젊은 나이에 정치를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매우 힘들었어요.

2004년 국회의원을 할 당시에 트위터가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국가적인 문제와 동시에 지역적인 문제에 관하여 트위터부터 시작을 했는데 상당히 갈증을 많이 풀었어요. 

그런데 트위터는 거의 공개적이기 때문에 그 친구들도 전국적이에요. 저는 지역구 출신 의원이니까 지역에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고 싶은데 서로 생각이 다른 먼 지역에 있는 분들과 소통하는 것이 너무 에너지 소모가 큰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난 이후에는 트위터도 잠정적으로 쉬고 있다가 한 10년 전부터 페이스북에 천착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도 페이스북을 주 대화 도구로 활용합니다. 

친구도 거의 천안 지역에 국한을 해서 한 5천 명 정도 두고 있으니까, 하루에 한 천 명 정도와 온라인상으로 대화가 되는 것 같아요. 온라인으로 그렇게 열어놓으니까 민원도 페이스북으로 많이 제기가 돼요.

"하루에 천 명 정도 온라인상으로 대화를 하니, 민원도 페이스북으로 제기되는..."

예를 들어서 천안 흥타령 춤축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글을 올려놓으면, 그것만 주제가 돼서 흘러가지 않고 누군가가 불쑥 민원을 제기할 때가 있어요. 

“북면 어느 개천에 갔더니 거기 화장실이 있는데 특히 장애인 화장실이 아주 지저분하고 장애인이 이용하기가 굉장히 불편하게 돼 있는데, 시장님 그 내용 아세요?” 하고 다른 이야기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 흥타령 춤축제 얘기를 하다가 정신적으로는 북면 개천으로 달려가게 되는 거죠. 시장이니까 그걸 간과할 수가 없잖아요. 다음날 다시 회의 때 관계 직원한테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고, 개선하도록 하도록 지시하게 돼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쌍방향 대화가 되는 셈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민원 문제는 SNS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니까 오프라인도 가동을 해요. 매주 목요일 오전은 돈 워리 시문박답(걱정하지 마세요. 시민이 묻고 시장이 답한다)이라는 의미로 시문박답이란 이름을 걸고 유튜브 방송을 합니다. 

어느 한 주제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그때마다 한 주 동안 시청 블로그에 제기된 민원에 대해서 시장의 입장에서 답변을 합니다. 유튜브로 그 방송을 듣고 즉석에서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하고요.

오후에는 “열린 시장실”을 운영합니다. 아주 오래된 고질 민원이 있어요. 일반 민원은 시청 기구 민원 처리과정에 의해서 처리를 합니다만, 제가 부임하기 전부터 누적되어 왔던 민원도 의외로 적지 않아요. 어떤 민원은 7년, 9년 또는 13년짜리 민원도 있어요.

그런 민원들은 담당 직원이 처리하기가 굉장히 난감한 문제들도 많아서 기본적으로 결정권자인 시장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한 40% 정도는 해결이 돼요. 그러나 이미 시기를 상실해서 또는 다른 어떤 이유로 소송이 아니면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처리가 불가능한 그런 문제도 한 60% 정도 되죠.

 

그렇게 쌍방향으로 바로 반응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셔서 소통을 잘하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정되신 것 같습니다.

저도 그걸 지향을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건 온라인만으로도 안 되고 오프라인만으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또 시장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교육하듯이 명령하듯이 해서 될 수가 없어요. 시대가 달라졌으니까요. 거기에 적응해 나갈 뿐입니다.

 

박상돈 시장은 시대가 달라져 시장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교육하듯이 명령하듯이 해서는 일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김경아 기자

코로나 상황에서도 흥타령 춤축제를 자동차 극장식 오프 축제로 개최하고 유튜브로도 생중계하였습니다. 국내외 초유가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온라인 춤축제라는 게 사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어려워요. 일반적으로 온라인 축제는 보기 힘들죠. 우선 돈이 생기지 않아요. 수지가 맞아야 그런 걸 기획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흥타령 춤축제 같은 것은 공익적인 축제니까 입장료를 받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작년에도 개최를 못했고, 올해도 만만치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춤축제 기획은 했었습니다만 과연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무대에서는 공연을 하되 ‘관람을 어떻게 할 거냐’라는 게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직원 관계자들이 자동차 극장 방식을 도입을 한 것이죠. 

하루 한 타임에 150대 입장으로 한정해서 5일간 개최를 하는데, 추가로 들어오고 싶은 차량들은 150대를 기준으로 차량이 빠져나가고 여유가 있어야 들어올 수 있도록 했어요. 집계를 해보니 총 2,300대 정도 들어왔더라고요.

한 차에 여러 명이 타서 차 안에서 무대를 주시하는데, 무대도 보면서 차량에 있는 모니터로 유튜브로도 볼 수 있도록 했어요. 리얼 타임으로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 관람하듯이 보이는 거예요.

평상시에 흥타령 춤축제는 하루 120만 명 정도가 방문을 했었는데, 5일 간이니 그 수준으로 따지면 한 600만이 왔어야 합니다. 유튜브 조회가 400만 회, 해외 송출까지 했으니까 나름대로도 상당한 의미 있다고 생각이 돼요.

 

그 축제를 개최하는데 초반부터 난항이 있으셨죠. 시의회에서 예산 배정을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요.

왜 그랬냐 하면 소위 '천안삼거리공원 명품화 사업 계획’에 대해서 저는 이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천안삼거리공원 명품화 사업 계획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천안삼거리공원은 천안삼거리공원일뿐이지 명품화니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한다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냉정한 시선으로 지난 천안삼거리공원 소위 명품화 계획을 들여다보고 사업 계획을 대폭 수정했어요.

그랬더니 거기에 대한 반발로 제가 하고자 하는 사업 계획이 시의회에 의해서 대폭 잘렸어요. 그때 흥타령 춤축제 사업비도 전부 깎였죠. 그래서 다시 의회와 긴밀하게 논의해 저도 일부 양보하고 의회도 일부 양보해서 서로 합의하에 협치의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일종의 거버넌스가 작동이 된 거예요.

천안삼거리공원도 곧 착공이 되어, 내후년까지는 완공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천안삼거리공원 명품화 계획이 아니고 천안삼거리공원 재개발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거죠. 천안시민이 좋아하는 천안삼거리공원이 새로운 모습으로 많이 달라질 겁니다.

 

고품격 문화도시 천안을 지향하고 계십니다. 그런 시정 방향에는 시장님의 철학과 그 철학을 뒷받침하는 존경하는 인물이 있을 것 같은데요.

선거 운동을 할 때 “All NEW 천안”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었는데, 그건 천안이 바뀌어야 된다. 새로워져야 된다는 의미로 내건 것입니다만, 진짜 제가 꼭 하고 싶은 시정 방침의 캐치프레이즈는 첫 번째가 고품격 문화도시예요. 

고품격 문화도시는 한마디로 어메니티(amenity)가 있는 문화, 생활의 편리함이 수반되는 그런 문화 도시를 의미합니다. 아주 쉽게 얘기하면 삶의 질과 관련된 얘기입니다. 

경제적인 부만 누린다고 해서 삶의 질이 높은 건 아니잖아요. 고품격 문화도시는 ‘문화적 기반으로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라는 데 그 포인트가 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신 게 있어요. 『나의 소원』이라는 책에서 김구 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어요.

그 시대에 김구 선생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우리가 그 문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산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문화가 높은 걸 자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BTS 같은 친구들이 놀라운 증거가 되고 있어요. BTS가 한국 문화의 원조는 아니죠. 지금은 지구촌 시대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 국가의 전유물인 문화는 없습니다. 지금의 문화는 어떻게 보면 공유하는 또 융복합하는 문화가 대세죠.

한국문화도 서양문화 또는 동양문화를 절묘하게 융복합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측면에서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많이 알리고 전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아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60~7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한 젊은이가 있으면 광화문이나 종로에서 카퍼레이드를 해줬어요. 정경화, 정명훈 같은 세대가 그랬어요. 그런 카퍼레이드를 요즘은 못하죠. 왜 그럴까요? 너무 많아서 못하는 거예요.

 

박상돈 시장은 독립기념관에서 월드 문화엑스포를 개최해 대한민국 문화에 대한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하는 꿈을 꾼다. 김경아 기자

러시아나 미국 젊은이가 세계 콩쿠르에 입상하는 수보다도 한국 젊은이가 입상하는 수가 더 많다는 얘기를 어느 언론 보도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많은 젊은이들이 맹활약하는 장면을 어디에서 볼 수가 있나요?

우리는 모르잖아요. 그저 뉴스로만 아는 거죠. 우리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있잖아요. 국학원을 넘어서 바로 독립기념관이 이어져 있다는 것도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천안 독립기념관의 120만 평 부지 위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통해서 세계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화는 대한민국만의 문화가 아니고 지구촌 모든 인류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충분히 월드 퍼포먼스나 엑스포를 할 가치가 있다고 봐요.

그런 생각을 2004년 국회의원 때부터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실현 가능한 방법을 고민해왔는데 시장을 하고 있으니까 그 계획을 실현시키고 싶은 거예요.

세계 젊은이들을 국적기로 초청하되 비행 경비를 20~30% 할인해 주는 겁니다. 독립기념관에 서곡 야영장이 있어요. 30만 평 정도 되는데 캠핑을 시켜도 되거든요.

배낭만 짊어지고 오면 서곡 야영장에서 한국음식으로 가볍게 식사하면서 4박 5일이나 6박 7일 정도 엑스포를 관람하고, 독립기념관 전시관도 둘러보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죠.

그 젊은이들이 자국에 돌아가면 한국 문화에 대해서 얘기할 거 아닙니까. 저는 그것을 계속 상상하고 꿈꿔왔어요. 우리말로 표현해보자면 엑스포 형태의 대한민국 문화대전이 되겠죠. 그렇게 해서 세계 젊은이들에게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했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어요.

 

그런 일은 문화부 장관이 하는 게 아닌가요?

그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국회의원이 되고, 지금은 천안 시장을 하고 있는데,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있으니까 제가 더 열정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냐는 거죠.

 

천안은 포도도 호두과자도 유명하지만, 독립기념관이나 국학원처럼 역시 정신적인 문화 콘텐츠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특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말씀하신 BTS가 졸업한 글로벌사이버대도 있구요. 고품격 문화도시는 그런 콘텐츠 자산을 잘 활용하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품격’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말하자면 문화전문가, 예술인들만을 위한 문화가 아니라 오픈 소사이어티에 걸맞는 대중과 호흡하는 그런 문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만 즐겨하는 문화가 아니고, 지구촌 시대의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제가 말하는 고품격 문화는 오픈 걸쳐입니다.

배타적인 문화가 아니고 지구촌 시대에 누구나 공유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편리함이 뒤따르는 문화, 우리가 즐기고 살아갈 수 있는 문화를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퍼포먼스 형태로 우선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거죠.

그것을 위해서 2~3년에 한 번, 몇 십억 내지 100억 정도는 국가가 충분히 부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시장님은 한국인의 특성, 한국인이 갖는 한국인다움은 어떤 점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선 창의적이에요. 글자를 창제한 민족 아닙니까. 한민족은 그런 창의성이 있는 민족이다. 두 번째는 인내심이 굉장히 많은 민족이다. 탄압이나 고난에 굴하지 않는 그런 인내심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높은 포용력과 융합 능력이 있어요. 그건 BTS가 증명하고 있잖아요.

지금 우리 한국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그런 문화적 자질, 능력은 창조성과도 관련되지만 융복합적인 재능도 뛰어나다. 그런 융복합적인 재능과 함께 자기 표현력이 뛰어나니까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는 거라 보여져요. 앞으로 한국 출신의 제2, 제3의 세계적인 뮤지션이 무궁무진하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젊은 시기에는 군인의 삶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시면서 많은 성과를 거두셨고요. 군인에서 행정가, 정치가로서의 길을 걸어오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제가 육사를 가려고 생각했던 건 천안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어요. 5.16 쿠데타가 61년도에 있었거든요. 그때는 쿠데타가 뭔지도 몰랐죠. 모두가 너무 배고팠던 시절이니까 '박정희 장군이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고' 이런 얘기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분이 중심이 돼서 정부를 이끌어갈 때에 천안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그게 62년이에요.

제가 7남매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거든요. 바로 밑에 동생이 남동생이고 여동생이 막내였는데, 그 여동생도 벌써 지금 67세니까 옛날 얘기죠.

그때 우리 집 형편이 논 다섯 마지기 농사를 짓는 정도의 아주 빈농이었어요. 혼자서 대학을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중학교도 간신히 들어왔는데 대학은 불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대학을 가려면 사관학교를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그래서 했어요. 

그리고는 중학교 내내 어떻게 하면 육사를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고등학교도 육사를 많이 가는 학교로 가려고 대전으로 갔고, 예정대로 육사에 들어갔어요. 원래는 들어갈 수 없었던 조건이었어요.

제가 발이 평발입니다. 평발은 육사는 고사하고 사병으로 입대도 안 되고 군 면제가 되잖아요. 65년에 고등학교를 들어갔을 때만 해도 시중에 군화가 넘쳐났습니다.

반군화를 사서 가죽을 깎아 거꾸로 붙여서 딛고 3년 동안 다니니까 평발에 새로운 근육이 만들어졌어요. 3년 동안 많이 부르텄었지만 이후 군사훈련을 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어요.

육사를 졸업하면 의무 복무가 5년이에요. 5년 뒤 삼사관학교 교관을 하는 중에 동료들로부터 지방 사무관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는 희망자를 조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삼군사관학교 출신들을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하는 기회였어요.

77년 당시는 전 세계 OPEC 중동 산유국이 유류값으로 횡포를 부릴 때였어요. 유류 파동이 매년 반복되는 매우 힘든 시기였죠. 유류 파동이 있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고속성장을 했던 나라예요.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고도성장 국가로 세계 4마리 용으로 평가되면서 아주 유명했어요.

그중에도 싱가포르와 한국이 탑이었죠. 그런데 석유값이 올라가니까 생산가가 높아져서 매년 물가가 상승하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했어요. 더구나 국내는 땅값, 집값이 뛰면서 공직사회에 부정부패가 많이 생겼어요.

 

박 시장은 지구촌 시대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오픈 컬쳐로서의 고품격 문화를 강조한다. 김경아 기자 

제 생각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군인 출신이니, 그래도 믿을 사람은 삼군사관학교 출신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도 그 경우로 공직에 오게 된 거예요. 사관학교 출신들의 공무원 특별 채용으로 당시 국회에서도 논란이 많았어요. 박정희 자신은 구데타를 일으키고 후배들까지 공직에 앉힌다는 거였죠.

지금은 읍면동장이 5급 공무원이지만 당시에는 별정직 5급이었어요. 전국의 읍면동장을 전부 특별 채용으로 채워 놓은 거예요. 서울대 행정대학원, 환경대학원을 졸업하면 6급으로 시작했어요. 2년짜리 대학원을 나오면 6급으로 특채를 했던 시절이에요.

지금은 특채가 거의 없지만, 그때는 육사만 특별 혜택을 본 게 아니라 특별 채용이 만연할 때였어요. 제가 보기에 그 시절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분화되었던 사회라고 해석하는 것이 공정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제대를 하고 공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특별 채용으로 왔으니 행정고시 출신에 비해서 기반이 약하고 특별 혜택을 받아서 온 사람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고시 출신보다 더 실적을 내지 않으면 나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좀더 창의적으로 행정을 하려고 임무를 수행할 때부터 결심을 했었어요.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런 저런 실적이 좀 있어요. 몇 가지만 들어보면 아산에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 공장 설치 실무 작업을 했었고, 건축 인허가도 제 손을 거친 것입니다. 대천(보령)에 가서는 모든 축제의 기초가 되는 대천 머드 축제를 상품화했죠. 

또 서산에서는 현대건설이 방조제를 만들어서 2,300만 평 간척을 했지만, 어민 피해 보상 합의를 못해서 13년 동안 준공 허가를 못 받았던 건을 해결해 서산 AB지구 방조제 준공 허가를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해미 읍성도 제가 당시 주돈식 문체부 장관에게 이야기해서 지금과 같이 만들어 놓게 된 거예요. 마지막 임명직 시장으로 6개월 밖에 근무를 못했는데, 후임 민선 김기흥 시장이 제가 인수인계한 내용을 훌륭하게 잘 진행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되었습니다.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해 크게 세레머니를 했었죠. 그 이후 세계의 캐톨릭 성지가 된 거예요.

저는 즐겁게 그런 일들을 했어요. 그 다음에 아주 우연하게 국회의원이 됐어요. 그때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고 개정하자고 했는데 제 말이 안 먹혔어요. 그러고는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자칭 “나이 든 청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끝으로 청년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청년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해야 할 과제도 많죠.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경험이 좀 짧기 때문에 당장 지금의 세대가 아니라 미래의 세대라고 얘기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이 청년의 자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포텐셜 파워, 잠재력이라고 해도 좋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아요. 그 꿈과 상상력이 늘 있는 한 언제라도 그것이 폭발할 날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아까 대한민국 국민은 창의력도 있지만 인내심 또한 있는 민족이라고 얘기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청년의 특징인 것 같아요. 

우리 한국인의 특징은 우리 청년의 특징과 매우 흡사한 점이 있으니 늘 긍정적으로 미래를 즐겁게 상상하면서 그것이 실현되는 나라를 위해서 지금 현재를 투자하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안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