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냥 역사가 좋았던 것 같다. 초등 시절 역사 만화책을 너덜너덜하게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고, 대학에 가서는 역사서를 읽고 역사소설을 탐독하고, TV를 봐도 사극을 즐겨 보고 지금도 역사적 인물들을 소재로 한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과 교수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과 교수

대다수 동물들은 태어나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신체 기능을 대부분 사용한다. 성인 뇌 기능을 빠르게 쓸 수 있지만, 유전의 영향이 지대한 만큼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두뇌활동에 국한되고, 시간이 지나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은 성인만큼의 뇌 기능을 쓰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구상 최고의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타동물과 달리, 태어나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신체, 정서, 인지사고 체계의 두뇌발달이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는 특별함을 갖기 때문이다.

집에서 많이 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1년 전에 자신을 떠올리며, 그때 어떠한 존재였음을 인지하기는 어렵다. 시간이 지나서 변화된 자신의 존재를 상상하며 미래를 향해 현재를 준비하기는 더욱 어렵다. 즉, 현재만의 시간을 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미래를 꿈꾸지 않고 현재만을 살아가는 것과 미래의 변화된 나를 상상하며 현재에 집중하는 것은 다르다. 뇌는 방향성을 원하며, 시간의 흐름 자체가 변화를 만들어 낸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차원에서 시간의 흐름과 나를 둘러싼 환경에 변화를 주는 인간 뇌의 창조성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200여 년간 인류가 지구에 미친 변화를 상기해보면, 지구의 역사 동안 이토록 창조성의 발현이 큰 생명체를 떠올리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고등의식 기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1972년 항체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구조적인 기초를 밝힌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럴드 에델만 교수가 이후 뇌 연구에 뛰어들면서 발표한 의식 생성모델에 따르면, 포유동물이 갖는 1차 의식은 언어가 생성되기 전 형성된 것으로 기억된 현재를 뜻한다. 장면들이 시간과 더불어 연속해서 흐르는 것이 아닌 스냅 사진처럼 하나의 장면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에 반해, 인간이 가진 고차의식으로 가면 언어를 매개로 한 기억이 생성되면서 하나의 장면이 담긴 스냅 사진들이 연결되어 파노라마를 만들며,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셀프(Self)라는 자아의식이 생긴다고 보았다. 브로카, 베르니케 등 언어영역이 고차 피질의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과 연결되어 생성되는 것으로, 인간 뇌의 특별한 기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 의식에 대한 탐구는 끝이 없는 여행일 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 기능과 구조를 샅샅이 밝혀낸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차원의 의식 기제를 완전히 밝혀내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인간 의식에 대한 과학계의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인간 고유의 기제가 우리 사회와 교육 현장에 어떠한 형태로 발현되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최근 12명의 국회의원들이 ‘홍익인간(弘益人間)’ 4 글자를 대한민국 교육기본법 제2조 교육이념에서 삭제하고, 민주시민교육을 넣자는 법안을 발의하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법안 철회로 결론이 났지만 국민들의 커다란 공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인간은 시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고등생명체이다. 이것은 단순히 생체시계나 과거, 현재, 미래의 나를 떠올리는 차원만은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 땅,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과거에 이 땅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시간에 대한 것에도 의식을 확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를 기록한다.

역사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나와 나를 둘러싼 이 땅의 과거와 미래에 관심을 갖게 된다. 현재의 나만이 아닌,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연결된 시간의 흐름선 상에 존재하는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까. 외국인들이 한국에 처음 와서 한국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 남편, 우리 아들딸’이란 말에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개인이 주체가 되는 서구 사회의 ‘We’라는 표현과는 다른, 수천 년 이어온 언어 속에 내재된 문화적 토양이다 보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땅의 시간을 얼마나 기억하고 존중하고 있는가. 20세기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독립국으로서의 대한민국만을 기억한다면, 기적적인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해 낸 한국만을 떠올린다면, 방탄소년단들이 부르는 노래의 한글 가사를 외국인들이 따라 외우고 전 세계 아미들이 참여하는 선한 영향력에 담긴 문화적 원형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수천 년간 이어온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의 정신문화 속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의 나라를 꿈꾸었던 선조들의 지혜와 혜안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한민족의 철학, 바로 하늘•땅•사람이 하나라는 ‘천지인(天地人)’ 정신을 그저 지나간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내 안에 여전히 서툰 내가 있지만
내 숨 내 걸어온 길 전부로 답해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방탄소년단(BTS) 노래 '러브마이셀프'의 가사 일부인데 눈길이 많이 가서 자주 듣는다. 기존의 틀에 머물렀다면, 지구에 감성 충격을 주고 있는 방탄소년단이 한국에서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남을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할 나라이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가. 미래세대에게 어떠한 한국인의 가치를 물려줄 것인가. 한반도 청동기 역사를 뒤바꿀 것이라는 강원도 중도 유적지는 외국의 놀이기구로 뒤덮여 가고, 한민족의 생일 개천절 정부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을 외국의 한류 팬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백범 김구 선생이 그토록 원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문구가 유독 떠오르는 시간이다. 다가오는 6월 11일은 국조단군왕검 탄신일(음력 5월 2일)이고,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이다.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과 교수, 브레인 편집장)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