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이 빠르고 항해가 어렵던 안흥량(현재 충남 태안)바다에서 왜구의 침입을 막고 유사시 한양을 지원하는 후원군 역할을 했던 조선 수군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기록이 발견되었다.

충남 태안의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의 고가古家의 벽지로 쓰였던 이 군적부軍籍簿는 지역주민의 신고로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확인할 수 있었다.

무너져가는 고가의 벽지로 쓰였던 군적부. 19세기 조선 후기 충남 태안 안흥량 앞바다를 지키던 수군과 보조역할을 했던 보인 60명의 인적사항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사진=문화재청]
무너져가는 고가의 벽지로 쓰였던 군적부. 19세기 조선 후기 충남 태안 안흥량 앞바다를 지키던 수군과 보조역할을 했던 보인 60명의 인적사항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사진=문화재청]

군적부는 19세기 조선 후기 안흥진 소속의 수군과 직접 군역에 종사하지 않고 보조역할을 하던 보인保人 60여 명의 이름과 주소, 출생연도, 나이, 신장 등이 부친의 이름과 함께 적힌 고문서이다.

세부 내용에는 수군 1명당 보인 1명이 편성된 체제로 구성되었음이 확인되어 16세기이후 수군편성 체계를 실제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관리하던 문서가 수군 주둔지역 민가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군적부의 작성 형식이나 시기로 미루어 용도는 수군의 징발 목적보다는 18~19세기 일반적인 군역의 부과방식인 군포軍布를 거두어 모으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포는 군 복무를 직접 하지 않는 병역의무자가 그 대가로 납부하던 삼베나 무명을 일컫는다.

이곳 안흥량 일대의 수군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왔다. 나라를 지키던 것과 함께 험난한 안흥량 바다를 통행하는 조운선의 사고 방지와 통제도 했다.

특히, 이 충청 수군 군적부는 현재까지 서산 평신진 수군 군적부 외에는 유일하게 발견된 자료로 희귀성이 높다. 게다가 수군이 주둔했던 현지에서 인적사항이 상세한 기록 문서로서 향후 조선시대 수군연구에 중요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군적부는 6월 5일 오후 1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리는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세미나에서 공개했다.

이번 군적부가 발견된 고가의 모습(왼쪽)과 고가의 상량문과 발견된 한시. [사진=문화재청]
이번 군적부가 발견된 고가의 모습(왼쪽)과 고가의 상량문과 발견된 한시. [사진=문화재청]

한편, 이번에 군적부가 발견된 신진도 고가의 상량문에는 ‘도광 23년’이라 명문으로 적혀 있어 1843년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판독이 가능한 한시漢詩 3편도 함께 발견되었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당시 조선 수군이거나 학식을 갖춘 당대인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수군진촌의 풍경과 일상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진도 수군진촌에는 능허대凌虛臺 백운정이 있어 ‘능허추월凌虛秋月(능허대의 가을달)’이라 하여 안흥팔경 중 하나로 알려졌다. 옛날 중국 사신들이 안흥 앞바다에 체류할 때 이곳을 중국의 능허대에 비견하여 소능허대라 불렀다고 한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신진도 고가에서 출토된 군적부를 계기로 삼국시대 이후 전략적 요충지였던 안흥량 일대에 넓게 분포한 수군진 유적과 국외사신을 영접하던 객관 유적의 연구 및 복원 활용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