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18세기 초 대표 궁중회화로 꼽혀 온 보물 제929호 ‘기사계첩(耆社契帖)’을 국보로 승격했다.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은 1719년, 숙종이 59세의 나이로 기로소(耆老所, 조선 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행사에 참여한 관료들이 계(契)를 하고 궁중화원에게 의뢰해 만든 서화첩이다. 행사는 1719년에 시행됐으나, 참석자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완성된 것은 1720년이다.

국보 제325호로 지정된 '기사계첩'-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사진=문화재청]
국보 제325호로 지정된 '기사계첩'-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사진=문화재청]

계첩은 기로신(耆老臣) 중 한 명인 문신 임방(任埅, 1640~1724년)이 쓴 서문과 경희궁 경현당(景賢堂) 연회 때 숙종이 지은 글, 대제학 김유(金楺, 1653~1719년)의 발문, 각 의식에 참여한 기로신들의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반신(半身) 초상화, 기로신들이 쓴 축시(祝詩) 등으로 구성되었다.

계첩에 수록된 그림은 화려한 채색,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와 명암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사실성이 돋보이는 얼굴 표현 등 조선 후기 ‘궁중행사도’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수준이다. 첩의 마지막 장에 제작을 담당한 도화서 화원 김진여(金振汝), 장태흥(張泰興) 등 실무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도 다른 궁중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사계첩’만의 특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사계첩은 수준 높은 색채와 구도, 세부 표현에 있어 조선 시대 궁중회화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작품으로, 18세기 이후 궁중행사도 제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제작 당시의 원형을 거의 상실하지 않았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고, 그림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 조선 시대 궁중회화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어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