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 남서부 발해국 성터에서 서울 풍납토성과 같은 기법으로 판자를 양쪽에 대고 그 사이에 흙층을 단단하게 다져 쌓은 성곽 얼개가 확인됐다. 성 안에서는 세발달린 토기(삼족기), 철제 손칼, 동물뼈 같은 발해인의 생활유물도 쏟아져 나왔다.

스타로레첸스코예 발해 평지성 남벽 절개조사지. [사진=문화재청]
스타로레첸스코예 발해 평지성 남벽 절개조사지.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종덕)는 지난 8~9월 러시아 연해주 남서부 라즈돌나야 강 가에 있는 발해 평지성(스타로레첸스코예 유적)에서 러시아과학원과 공동으로 벌인 발굴 성과를 25일 발표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발해 평지성에서 서울 풍납토성 방식으로 흙을 다져 쌓은 성벽의 축조방식과 규모를 확인했으며, 성 안의 지하 저장고에서는 다양한 발해 유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스타로레첸스코예 유적은 발해의 지방행정구역 15부 중 솔빈부(率濱府)의 관할에 있던 평지성이다. 라즈돌나야 강(옛 지명이 솔빈강이며 중국 이름은 수분하)이 서쪽, 북쪽, 동쪽으로 흘러 해자(垓子) 구실을 하며, 남벽 150m, 서벽 30m가 남아 있다. 인근 강의 물살에 성 내부 서쪽이 유실되는 등 원형이 계속 훼손되어 2017년 7월부터 성 남벽과 서편 일대를 중심으로 긴급 현황 조사를 벌여왔다.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남벽 판축 중심부 전경. [사진=문화재청]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남벽 판축 중심부 전경. [사진=문화재청]

이번 조사에서는 스타로레첸스코예 유적 성벽의 전체 규모와 축조 방식을 확인하였다. 성벽은 강자갈과 점토로 기초를 다진 후 중심부를 사다리꼴(폭 4m, 높이 2m)모양으로 판축기법을 사용해 쌓고 다시 흙으로 덧쌓아 축조하였다.

중심부는 점토층과 모래층을 번갈아 가며 20겹 정도를 쌓았으며, 판축한 점토층의 윗면에서는 목봉(木棒) 등으로 다진 흔적을 확인하였다. 또한, 성벽을 쌓고 나서 유실을 방지하고자 강돌로 윗면을 덮었고, 성벽의 전체 폭은 14m에 이른다. 판축은 판자를 양쪽에 대고 그 사이에 흙을 단단하게 다져 쌓는 건축방식으로, 한성백제의 도성인 서울 풍납토성도 같은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지하식 저장고 전경(서쪽에서). [사진=문화재청]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지하식 저장고 전경(서쪽에서). [사진=문화재청]

성 내부 서편에서는 강돌을 이용한 지상 구조물의 흔적과 함께 구덩이를 판 후 돌을 쌓아 벽을 축조한 지하식 저장고 등이 확인되었다. 저장고 내부에서는 다양한 발해 토기, 동물 뼈, 물고기 뼈와 비늘, 철체 손칼 등 당시 발해인의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지하식 저장고 세부 전경(남쪽에서). [사진=문화재청]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지하식 저장고 세부 전경(남쪽에서). [사진=문화재청]

특히, 이번 저장고에서 출토된 삼족기(三足器)는 원통형인 다리 세 개가 흑회색 작은 항아리의 편평한 바닥에 부착된 형태이다. 삼족기는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현재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인근)에서 2점이 출토된 바 있으며, 그 중 한 점은 유약을 바른 발해 삼채(三彩)로, 발해 유물 중에선 출토가 드문 토기이다. 삼채(三彩)는 황유나 백유, 녹유, 갈유, 남유 등 3가지 이상의 연유(燃油)를 바른 도기를 말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유적이 중국 동북지역에서 연해주로 흐르는 강가에 있고 저장용 구덩이(수혈)가 성 내부에서 여러 곳 확인되었고, 삼족기, 원통형 기대 조각 등 고급기종이 확인되어 조사지역이 발해의 중심부에서 연해주 동해안으로 진출하는 데 중요한 물류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출토 삼족기. [사진=문화재청]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출토 삼족기. [사진=문화재청]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지하식 저장고 내 삼족기와 동물뼈 출토 모습. [사진=문화재청]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 지하식 저장고 내 삼족기와 동물뼈 출토 모습. [사진=문화재청]

8~10세기 동아시아의 문화강국인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는 그 옛터가 중국, 러시아, 북한에 흩어져 있어 실물자료를 통한 직접적인 조사가 힘든 상황이다. 이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06년부터 러시아 연해주 소재 발해유적에 관한 분포현황조사와 발굴조사를 추진하여, 발해의 동북방 중심지로 기능했던 콕샤로프카 유적과 발해의 영역확장을 보여주는 시넬니코보-1 산성 등 다양한 발해유적의 실체를 확인한 바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8~9월 러시아과학원과 공동으로 발굴 조사한 발해 평지성(스타로레첸스코예 유적)은 러시아 연해주 남서부 라즈돌나야 강가에 있다.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8~9월 러시아과학원과 공동으로 발굴 조사한 발해 평지성(스타로레첸스코예 유적)은 러시아 연해주 남서부 라즈돌나야 강가에 있다.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발해 중심부에서 연해주 동해안 진출의 주요 통로로 라즈돌나야 강을 어떻게 운영하고 활용했는가를 밝히고, 출토 유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발해인의 생활상을 복원하여 해외에서 사라지고 있는 우리 역사를 기록‧보존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