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 31명, 대한민국 국적 취득
독립유공자 후손 31명, 대한민국 국적 취득
  • 문현진 기자
  • moon_pt@naver.com
  • 승인 2018.08.1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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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박찬익, 이정, 최해, 계봉우 선생 후손 등

법무부(장관 박상기)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대일항쟁기에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서대문형무소 사형수 1호 왕산 허위 선생과 박찬익, 이정, 최해, 계봉우, 이여송, 권재학, 신경구, 박노순, 이승준 독립운동가 10명의 후손 31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 13일(월) 대한민국 국적 증서를 수여하였다고  밝혔다.

이번 수여식은 제73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이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수여식의 독립유공자 후손 거주 지역은 ▲중국 13명 ▲러시아 7명 ▲쿠바 5명 ▲우즈베키스탄 3명 ▲카자흐스탄 1명 ▲키르키즈 1명 ▲캐나다 1명이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강제이주 등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세계 각처에서 조국과 떨어져 살아왔다.

왕산 허위 선생은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대를 조직하여 경기도 일대에서 항일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08년 1월말, 전국 13도 연합 의병부대 군사장에 임명되어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하였으며, 1908년 6월 일제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08년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서대문형무소 사형수 1호이다. 

법무부는 독립운동가 10명의 후손 31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국적 증서를 수여하였다. [사진제공=법무부]
법무부는 독립운동가 10명의 후손 31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국적 증서를 수여하였다. [사진제공=법무부]

박찬익 선생은 1910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북만주로 망명 후 대종교에 투신하여 교육사업에 주력하였다. 1912년 대한독립의용군을 조직하였고, 이후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하여 1921년 7월 외무부 외사국장 겸 외무차장대리를 지냈다. 1933년 장개석과의 면담에서 낙양군관학교 내 한국독립군 양성을 위한 특별반 설치 합의를 도출하였고 중경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번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국적법 제7조에 따라 독립유공으로 그 직계존속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포장을 받은 사실이 있어 특별귀화허가를 받은 사람들이다.

한편, 법무부는 2006년 이래 12회에 걸쳐 총 295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하였다. 금년 4월에는 최초로 독립유공자 후손의 배우자 7명에게도 국적증서를 수여한 바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발전된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대일항쟁기라는 고난의 시기에 목숨으로써 조국을 지켜낸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나라사랑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오늘 이 자리가 이역만리의 낯선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생활해 오신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 조국을 위해 큰 역할을 하신 선조들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우리사회의 소중한 가치를 보존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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