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개봉한 영화 ‘밀정’이 6백만 관객(18일)을 동원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배우 송강호가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을 연기해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해서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을 만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극과 극의 상황이 아닐까요? 일제의 앞장이로 살아가는 이정출을 불러들인 정채산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중간첩에게도 조국은 하나뿐이오. 그에게도 분명 마음의 빚이 있을 거요.”

 
‘밀정’은 1923년 황옥 경부 폭탄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당시 의열단이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폭탄을 반입하려다가 발각된 사건이지요. 이 과정에서 죽음도 불사하는 의열단원이 빛을 발합니다. 
 
▲ 영화 '밀정' 스틸컷
 
영화 ‘암살’과도 비슷합니다. 독립군이 일제와의 사투에서 폭탄을 사용하고 친일파도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성독립운동가 안옥윤(전지현)은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라는 대사를 남깁니다. ‘밀정’의 정채산 또한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디 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의열단이 살리고자 했던 조국이라는 불씨는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으로 이미 꺼진 상태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이지요.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부릅니다. 그 시작은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에서 비롯됩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대한제국이 멸망한 원인으로 일제의 침략도 있었지만 당시 군주와 대신들에게도 원인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을사늑약’의 제5조에서 “일본은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는 내용입니다. 
 
한 교수는 “제5조는 대한제국 쪽에서 요구하여 들어간 내용이다. 국가의 주권을 빼앗겨도 황실만 안녕하고 존엄을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한겨레신문 8월 22일)
 
황실만 안녕하면 된다는 당시 지배층의 생각은 경술국치 이후 수많은 친일파를 만든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밀정’에서 일본에게 받은 훈장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정출의 표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친일파의 가슴에도 조국의 불씨가 남아있을까? 의열단과의 만남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밀정’의 결말은 현실과 다른 영화의 상상력이 동원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암살’의 친일파 염석진(이정재)은 자신의 변절에 대해 "몰랐으니깐… 해방될지 몰랐으니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사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살았던 미당 서정주 시인이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던 발언과 같은 것입니다. 이정출, 염석진, 서정주 등 친일파의 조국은 일본이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 친일파들이 참회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후손들 또한 선조의 땅을 돌려달라고 국가에 소송하고 있으니깐요. 많은 나라를 침략하고도 전쟁책임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요? 의열단처럼 적을 처단하는 것이 전부일까요. 100년 전에 서거한 독립운동가 나철(羅喆, 1863-1916)을 만나봅니다. 
 
그는 1907년에 을사조약을 체결한 매국노를 처단하려는 인물이었습니다. 의열단의 선구자인 것이죠. 불행하게도 실패로 끝났지만 일본으로 건너가 외교를 통한 구국운동을 벌입니다. 이후 단군신앙을 접하고 1909년 음력 1월 15일 서울에서 단군교 중광식(重光式)을 거행합니다. 
 
단군을 다시 빛내는 선언입니다. 그는 국망도존(國亡道存: 나라는 망했어도 정신은 있다)을 말합니다. 꺼져가는 조국의 불씨를 다시 살리겠다는 뜻입니다. 단기연호를 사용하고 개천절을 제정하는 등 선도문화(仙道文化) 부흥에 주력합니다. 불과 5~6년 만에 30여만 명이 이 대열에 합류합니다.  
 
이에 놀란 일제가 191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 83호로 종교통제안을 공포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단체의 신청은 접수하면서 대종교만은 거부한 것이지요. 나철은 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천제를 올리고 자결(=순국)합니다. 
 
그의 제자인 서일(徐一)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부하인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를 진두지휘했습니다. 김교헌(金敎獻)은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역사서를 펴냈습니다. 김두봉(金枓奉)과 최현배(崔鉉培)는 한글을 지켜냈습니다. 아일랜드는 지금도 식민지 제국의 문자인 영어로 글을 써야하지만 우리는 일본어를 쓰고 있지 않습니다. 단군의 정신으로 우리의 언어와 역사를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나철은 조국의 꺼진 불을 되살리기 위해 혼신을 다했습니다. 나보다 남을 위한 삶, 홍익인간(弘益人間)이자 애국자를 길러낸 것입니다. 그의 제자들 또한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로 우리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지난 20일 서울에서 ‘도탄에 빠진 대한민국 구하기’ 기자회견을 주최한 국학원(원장 권은미)이 “총체적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은 나라의 중심이 되는 정신과 철학의 부재에 있다”라고 지적한 것과 같습니다.
 
독립군이 후손을 위해 나라를 지켜낸 것처럼, 우리 또한 홍익정신(Korean Spirit)을 물려주어야 할 때입니다. 
 
 

▶ 기자 주 - 이 글은 100번째 칼럼으로 영화 ‘밀정’을 통해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