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관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자는 ‘부산행(TRAIN TO BUSAN)’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 보여준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한 영화라고 환영하고, 후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상주 배치라는 시의와 맞물려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만큼 좋은 안보영화가 없다고 합니다. 논란이 계속될수록 두 영화는 대중의 주목을 받겠지요.
 
물론 영화의 시나리오나 배우 연기력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총체적 위기 앞에서 가족을 구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점에서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선과 악으로 대결하는 SF 헐리우드 히어로 무비와도 다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 영화 '부산행' 스틸컷
 
강현주 기자는 ‘부산행’에 등장하는 좀비를 인성이 사라진 인간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바로가기 클릭) 그보다 인간과 좀비가 타고 있는 기차를 주목합니다. 오로지 ‘속도(경쟁)’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상징이 아닌가? 거기에 타는 순간, 사람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모색할 수밖에 없지요. 
 
연상호 감독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는 ‘물질문명의 끝자락에 놓인 캐릭터’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성장중심의 사회였고 물질적 풍요만을 위해 달려왔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다음 세대에선 다른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반면 ‘인천상륙작전’에서 성공확률 5000:1에 도전하는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이 영화의 초반과 끝을 장식합니다. 맥아더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합니다. 이 과정에서 숨 가쁘게 벌어지는 대결이 볼만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외형에 불과합니다. 속내는 ‘이념이 물보다 진하다’는 대사를 통해 사회주의를 비판합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고 이념은 혈육도 죽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과연 필요하느냐고 묻는 것이지요. 미국 또한 한국이 아니라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해 참전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도망가는 리더십
 
▲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
 
6•25 한국전쟁에서 승자가 있을까요? 이념의 대결에서 3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남았을 뿐입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땅과 정신은 모두 반토막입니다. 그 상처는 이산가족 아픔처럼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숨은 영웅을 기억하라고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리더십의 종말입니다. 국가재난의 위기에서 대통령은 어디로 갔을까요? 영화 ‘인디펜던스데이(Independence Day)’는 외계인에 맞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나간 것과 대비됩니다. 
 
혹자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6•25 때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을 사수한다고 약속하는 방송을 하고 몰래 한강을 건너서 피난한 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리고 도주한 선조 임금과 같습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인 것은 전국에서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사찰에 있던 스님도 승병으로 왜군과 싸운 것은 영화 ‘명량(ROARING CURRENTS)’에서 알 수 있지요. 그들이 아니었다면 400년 전에 벌써 일본의 속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 맥아더가 16세의 국군 소년병에게 “왜 후퇴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후퇴하라는 상관의 명령을 받지 못했다. 총과 충분한 총탄을 달라”라는 데 가슴이 북받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만주벌판에서 여름옷 같은 얇은 군복만 입고 깡마른 체격의 무명 독립군 사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단군조선 이래 반만년의 역사를 지킨 이들은 1% 지배층이 아닙니다. 의병과 독립군, 학도병과 같은 99% 민중들이지요. 서글펐습니다. 나라의 위기 앞에서 참전하는 리더를 찾을 수 없어서. 지금도 과연 있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