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여름 극장가는 역사영화가 주류입니다.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는 6.25 한국전쟁과 대일항쟁기를 소재로 680만 명과 490만 명 관객(24일 기준)을 동원했습니다. 작년에는 <연평해전>과 <암살>이 흥행을 거뒀지요. 2014년에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영화 <명량>이 1,70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관람수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역사가 스크린을 통해 대중화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반면 영화의 흥행과 함께 비판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성공확률 5,000:1에 도전하는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는 역사적으로 논란이 있는 인물임에도 마치 ‘현자’처럼 미화했습니다. 또 국군과 북한군은 선악 구도로만 묘사했습니다. 
 
특히 영화 <덕혜옹주>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으로 떠나야 했던 슬픈 역사를 대변합니다. 광복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것이죠. 
 
사실 덕혜옹주(손예진)는 일본의 조선 어린이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강제 징용된 조선 노동자들에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라고 말한 장면은 어떤가요? 감동적이죠. 그러나 덕혜옹주는 연설한 적이 없습니다.
 
이봉창ㆍ윤봉길 의사처럼 일제에 폭탄을 던져서 의열(義烈)투쟁에 나서는 독립군이 나옵니다. 이때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중국 상해임시정부로 망명을 하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이러한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은 마치 덕혜옹주가 독립군과 같은 역사인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상궁 김명길은 《낙선재 주변》에서 "덕혜옹주는 '게다'를 신고 '하오리(일본 의상)'를 걸치고 통학하셨다. 집에 돌아 오셔선 학교에서 배운 노래라며 '호타루 찬가' 등을 부르시곤 했는데 그 모습이 일본 아이들과 똑같아 섬뜩했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했습니다.
 
▲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왜 그랬을까요? 어릴 적부터 일본인 교사에게 배웠고 소학교 2학년부터 일본인 귀족의 학교인 일출소학교(日出小學校)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덕혜옹주는 일본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지만, 조국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그만큼 역사관이자 국가관은 어릴 적에 받은 교육에서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대표적으로 고조선 역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 원로 언론인은 해방 후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은 단군과 고조선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 또한 “당시에는 단기를 사용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교실마다 단군영정이 걸려 있었다”라며 “매일 단군할아버지를 접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덕혜옹주는 일본인 교사에게서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덕혜옹주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일제는 단군이 가르쳐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한국인들이 민족적 자부심이 생기고 단군을 구심으로 결속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신사를 세우고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식민사관을 강요한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국민은 해방이 되자 일본신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단군전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모르면 단군은 신화이거나 특정 종교의 신앙으로 치부하게 됩니다. 
 
물론 덕혜옹주의 삶을 통해 시대의 비극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그녀의 아버지, 고종황제입니다. 원구단을 세우고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이때 거행된 황제즉위식은 대한제국이 다른 나라와 동등한 독립국임을 천명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1913년 일제에 의해 원구단은 헐리고 그 자리에 총독의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이 들어서는 비운을 맞습니다. 
 
해방이 된지 수십 년 후에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복원됐습니다. 2009년부터 민족단체에서 10월 3일 개천절 장소로 부활시키면서 역사를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지 않으니 시민단체가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의병과 대일항쟁기 독립군이 조국을 구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러한 정신(Spirit)은 역사교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 참고문헌

코리안스피릿, 중국ㆍ일본에 빼앗긴 제천의례, 원구단에서 ‘부활’(클릭)
서울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신화와 역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년
정영훈, 〈단군학연구의 현황과 과제〉, 《고조선단군학》 1999년
조선일보, 일본인처럼 자란 덕혜옹주…이우는 히로시마 原爆에 희생돼(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