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만춘 장군 (梁萬春 將軍) (원암 장영주 作)

안시성전투에서 양만춘 장군의 화살 한 대로 쫓겨 간 당 태종은 중국인들에게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황제 중 한 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 태종 이세민(서기 599~649년)은 13세부터 수많은 전투에 참전한다. 백여 명에 가까운 적장을 단 한 대의 화살로 떨어뜨렸고, 그의 모습만 보아도 적장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중국의 명장이기도 하다.

수차례의 무모한 고구려 침공에 실패한 수(隋) 나라(서기 581년~618년)가 망해가자, 그는 수나라의 대신인 아버지 이연(당 고조)에게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간언한다. 곧 아버지를 도와 당나라(唐, 서기 618년~907년)를 세운다.

그는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태자인 형 이건성을 죽이고, 아버지를 상왕으로 몰아낸 뒤 2대 황제에 오른다. 이후 적극적인 치세로 당나라를 점차 대제국으로 키워간다. 현명한 재상인 ‘장손무기’의 동생을 황후로 맞이하고, 독설과 직간으로 유명한 ‘위징’의 간언을 그가 죽을 때까지 경청하였다.

문무겸전의 큰 능력으로 내치를 두텁게 하는 한편, 주변의 다른 민족을 차례로 복속시키면서 땅을 넓혀갔다. 또한 ‘왕희지’의 필법을 사랑하였고, 그 자신이 명필의 반열에 드는 황제였다. 이세민은 ‘제왕학의 교과서‘로 유명한 '정관의 치(貞觀ㅡ治)’를 정립할 정도로 역대 중국 황제 중의 황제가 되었다.

이토록 막강한 당 태종이 신라와 함께 연합하여 이번에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동쪽 천자의 나라’ 고구려를 친히 정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늘 아래 오직 이세민만이 천자(天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침공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구려에게 패한 후 “고구려를 다시는 침공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그러나 양만춘 장군은 모함을 받아 7년간 죄인으로 감옥에 있다가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풀려난다. 그의 세 아들 중 남건, 남생이 대립하자 고구려는 혼란에 빠진다. 이를 틈타 이세민의 아들 당고종 이치(서기 628년~683년)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고구려를 공격한다.

동맹국 백제마저 망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하니 서기 668년이다. 비록 평양성은 항복하나 아직 무너지지 않은 요동의 11개의 성이 고구려 부흥을 위해 당나라에 항거한다. 그러나 당나라의 장수 ‘설인귀’에게 하나하나 항복하거나 함락되었고 마지막으로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만이 남았다.

양만춘 장군도 최후의 항전을 벌이나 사방에서 온 지원군 요청에 총 2만의 군사 중 1만을 보낸다. 양만춘 장군은 남은 1만으로 처절하게 버티나 희망이 없음을 알고, 아끼는 장수에게 남은 군사 5천 명 중 8백 명을 때어주며 탈출하게 한다. 그들은 수로를 통해 무사히 신라로 간다.

당나라의 파상공세 속에 나머지의 안시성 고구려군은 모두 전사하고 만다. 이때 양만춘 장군도 부하들과 함께 전사하니 마지막 순간까지 고구려를 가슴에 안고 돌아가신 천하명장, 절세충신이다.

양만춘 장군은 역사서에는 이름 없이 ‘안시성 성주(城主)’로만 기록되어 있으나 송준길의 『동춘당선생별집』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의해 양만춘(梁萬春, 楊萬春)으로 밝혀졌다.

고구려 멸망 30년 후인 서기 698년, 드디어 대조영에 의해 일명 ‘밝은 해의 나라’ 인 ‘발해’가 건국된다. 발해는 태학에서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며 수도가 다섯 군데나 되는 크고도 문화가 융성한 ‘해동성국’이 된다. 이정기 장군(서기 732~782년)은 중국 산둥 땅에 고구려의 후신인 제(齊)나라를 세운다. 당나라의 장군이 된 고선지(서기?~755년)는 고구려 요동성 태수 고사계의 아들로 실크로드를 제패(制霸)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고구려인에게는 문무겸전의 선도수련의 결과인 ‘충성의 역량과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입구에서 지켜주시는 분이 바로 광개토호태왕이다. 그 충성심을 이어받은 분이 약 250년 후에 활동하신 양만춘 장군이고 대조영, 이정기, 고선지, 충무공 이순신 장군으로 흘러 내려왔다.

이제는 우리가 양만춘 장군이 되어야 한다.


(사)국학원 상임고문, 전국민족단체 연합 대표회장,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원암 장영주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