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빛 나뭇잎이 싱그러운 5월이다. 9일 (사)우리역사바로알기와 효창공원을 답사하기 위해 정문인 창열문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효창공원은 원래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무덤인 효창원이었으나, 대일항쟁기 때 일제에 의해 강제 이장당하고, 이름도 효창공원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조성환·차리석,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 바치신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묘소 등이 있다.
먼저 임시정부 요인 세 분의 묘역을 갔다. 왼쪽부터 군무부장을 역임한 조성환, 임시정부 주석과 의장을 지낸 이동녕, 국무원비서장이었던 차리석의 묘가 있다. 세 분 모두 생소한 이름이었다. 해설을 듣고 나니 교과서나 위인전에 나오지 않는 분들 중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분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조성환은 무오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9인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분이시다. ‘단결은 약자의 무기다’라는 명언을 남기셨다는 것을 듣고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리 민족의 단결을 위해 애쓰신 모습이 그려져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음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묘를 방문했다. 조금 높은 돌계단을 올라 마치 산이 둘러싼 듯 조형을 한 묘소는 우리민족의 자주독립과 통일을 외치시는 김구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묘의 정중앙에는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돌, 그 앞에는 장명등이 있다. 양 옆에는 망부석이 있고 망부석과 장명등 사이에 비석이 있다. 망부석에는 도마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꼬리를 잘라도 다시 재생하는 도마뱀의 불멸을 뜻한다.
김구 선생님은 나라가 독립을 할 수 있다면 나라에서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고 하셨다. 김구 선생님의 묘소 앞에서 대한민국은 자주 독립을 이루어냈는가, 나는 대한민국의 통일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던가 반성해 보았다.
희미해져 가는 과거라고 해도 그들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삼의사의 묘소를 방문했다. 왼쪽 끝에 가묘가 있는데 바로 안중근 의사의 빈 묘소이다. 광복 후 김구 선생님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본국으로 안치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유언에 따라 중국 뤼순감옥에 있는 유해를 다시 본국으로 되돌리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거하셨다. 광복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 뤼순감옥의 부지에 아파트가 세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며 하루 빨리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의열사는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지만 미리 예약을 해 놓아서 들어갈 수 있었다. 의열사는 효창공원에 있는 일곱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묵념 후에 방명록을 남길 수 있었다. 의열사는 일곱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묵념하는 중요한 장소지만 기둥의 칠이 벗겨지거나 박석이 들려있는 등 관리가 미흡해 안타까웠다.
묵념을 하고 의열사 밖으로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햇빛과 함께 불어왔다. 뒤를 돌아보자 의열사는 언제나처럼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는 듯하여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효창공원을 나와 걷자 처음 창열문에 발을 들였을 때와 똑같이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평온한 휴일을 보내는 것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분들의 유언과 정신을 잊지 말고 지금의 이 고마움과 감정을 잊지 말고 앞으로 몸과 마음과 혼을 깨워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