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혀, 2025, 천 위에 수성페인트, 26x235cm. 이미지 갤러리밈
개 혀, 2025, 천 위에 수성페인트, 26x235cm. 이미지 갤러리밈

 ‘그림의 관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예술의 일상화’를 실천해 온 윤동천 작가(서울대 명예교수)의 개인전 《시시ᆞ미미(微微)》가 11월 12일부터 갤러리밈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갤러리밈 3층부터 6층까지 총 4개층 전관에서 열린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작가는 40여년 간 개념미술을 기반으로 회화, 사진, 드로잉, 판화, 영상, 조각설치 등 다양한 매체에 걸쳐 새로운 개념을 확장하며 사회와 일상, 그리고 예술의 연결점에 대한 실험을 해왔다.

시시한 오브제 연작들, 2025. 이미지 갤러리밈
시시한 오브제 연작들, 2025. 이미지 갤러리밈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이고 의미를 지닌 사물들을 발견하고 수집한 <시시한 오브제> 연작(6층)들과 현실에 대한 비판의 시선에 위트를 얹은 ‘익숙한 문구들’ (5층), 네팔과 인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으로 엮어내는 풍경의 의미(4층), 그리고 일상성과 추상의 관계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시시한 대상으로부터>(3층) 연작 등 총 70여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윤동천 작가는 작가노트 '시시·미미(微微) 전시에 부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전시는 대단하고 멋진 것이 아니라, 시시하고 미미한 것에 대한 관심으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주제, 소재, 작업 방식(형식) 모두를 아우릅니다. 현실에서는 다소 영향력을 갖지만 미술로 표현하기에 적합지 않거나, 미술사적으로는 중요하지만 일반에게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내용이거나, 전반적으로 시각적으로나 의미로나 크게 볼품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환기와 주목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그리고 당연히, 소중합니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늘 변혁의 시발점이었습니다.”

개혁의 도구 (싹- 다), 2025, 빗자루. 이미지 갤러리밈
개혁의 도구 (싹- 다), 2025, 빗자루. 이미지 갤러리밈

작가는 아이들 놀이 같기도 하고 철학적인 의제 같기도 한 단어와 이미지의 조합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는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아울러 일상의 시시하고 미미한 것들로부터 시작한 작은 지점들이 현실에 대한 사유를 거쳐 관객들이 자신만의 ‘구체적 추상’으로 확장되어 가는 경험으로 이끄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면’이 필요하다 (체면/體面, 라면/拉麵, 순면/純綿 등등), 2025, 마포걸레. 이미지 갤러리밈
아직도 ‘면’이 필요하다 (체면/體面, 라면/拉麵, 순면/純綿 등등), 2025, 마포걸레. 이미지 갤러리밈

현시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 미술 비평) 는 전시 서문 ‘윤동천의 시시·미미’에서 윤동천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소개했다.

“윤동천은 이번 전시에서 제목이 이야기하듯 ‘시시하고 미미한 것’들을 전시장으로 데려온다. 어떻게 시시하고 미미한 것들이 ‘미술’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그는 그만의 독자적인 어법을 이번 전시에서도 펼쳐놓는다. 이 펼쳐놓음의 기술(技術)은 미술하기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얼마만큼 현실 안팎에서 허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데리고 논다. 미술이 다루기엔 너무 시시한 사물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지만, 그가 촬영한 사진들의 구도와 형식, 표면의 질감을 보면 동서양 미술사의 오랜 작업들이 탐구해온 시각과 재현, 구상과 추상의 문제가 녹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시 미미’를 발음할 때 느낄 수 있는 모국어의 리듬감은 신선하다. 이번 전시는 변주와 변형의 놀이에서 출발하는 듯 보인다. 그 귀착점이 어디인지는 작가가 보여주는 색과 형태, 시각적이고 의미를 지닌 것들의 수집과 발견을 따라가보는 데서 각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윤동천이 명명한 ‘시시한 것들’은 그가 목격한 것들이다. 또 이 ‘미미한 것들’은 그가 추상 회화 작업인 <단순연작>와 <덩이>들로 나아가게 하는 구체적 모티브가 된다. 어린아이의 놀이같기도 하고 철학적인 의제같기도 한 단어의 조합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다양한 측면과 유사하다. 그는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의(미술=현실, 미술/현실) 조합을 통해 한국의 정신사적인 리얼리티를 눈앞에 마주하게 한다.

익숙한 문구들 연작 12점, 2025, 합판에 레이저, 29.7x42cm(각각). 이미지 갤러리밈
익숙한 문구들 연작 12점, 2025, 합판에 레이저, 29.7x42cm(각각). 이미지 갤러리밈

자, 전시장을 보자. 전시장의 각 층층은 윤동천의 미술관이며 동시에 한국의 현대사를 문맥화하는 시각적인 생활 박물관이다. 5층에 있는 ‘익숙한 문구들’ 연작을 보자. 합판에 레이저로 제시된 문구들에서 구체성과 보편성을 띠는 언어들의 합주를 볼 수 있다. 인생에 대한 처절한 경험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구체성을 띠는 ‘생활’ 언어들이 인생의 쓴맛 단맛 짙은 맛을 알려준다. 전시장 통로의 벽면에 위치한 <기념일>(2005)은 어떤가. 종이 위에 잉크로 새겨진 이 작은 날짜들은 윤동천이 기억하는 한국 현대사의 ‘기념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그에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을 사건들이 작은 글자들로 낱장의 얇은 종이 위에 남겨져 있다. 이것은 일종의 ‘카운터 모뉴먼트(counter monument : 반기념비)’로서, 기념비의 육중함에 반대하는 또 다른 형식의 ‘기억 작업’이다. 작가는 이렇게 한국 현대사가 거대하게 기억해온 시간성을 윤동천 개인의 감각으로 뒤집는다. 이때 개인은, 작가가 오랜 시간 이야기해왔듯 공공적 실천과 집단의 무의식을 외면하지 않는 개인이다.

갈망, 2025, c-print, 56x76cm(시시한 풍경 시리즈). 이미지 갤러리밈
갈망, 2025, c-print, 56x76cm(시시한 풍경 시리즈). 이미지 갤러리밈

 

윤동천의 미술은 그러므로 풍자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기억이다. 또 이것은 미술과 현실의 질긴 관계를 그의 식으로 말하는 행위다. 6층에 자리한 <시시한 오브제> 연작에서 작가는 현실의 사물에 깃든 관습을 현실의 지리멸렬한 통념들과 맞부딪히게 한다. 빗자루, 펜, 요강, 톱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일상에서 언제나 주변부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이것이 거기 있다’는 식의 존재하는 것조차 알아차리기 힘든 미약한 사물들을 예의 주시하게 만든다. 윤동천이 붙인 작업의 제목은 작업의 일부가 되어, 관객과 작업이 만나는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킨다. 그래서 우리 관객들은 이 작업들의 말걸기를 외면할 수 없다.”

‘시시한 대상으로부터’ : 3F 전시장. 이미지 갤러리밈
‘시시한 대상으로부터’ : 3F 전시장. 이미지 갤러리밈

 

윤동천 작가의 개인전 《시시ᆞ미미(微微)》는 12월 21일까지 갤러리밈(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5길 3)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