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박사
위기의 시대, 정보화는 생존의 전략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를 근본부터 흔들었습니다. 한 세대가 믿어온 ‘직장과 국가의 보호’ 신화가 무너지고, 수많은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국가 구조를 미래형으로 재설계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이었습니다.
경제의 폐허 위에 ‘정보의 도로’를 놓은 것입니다. 이는 일시적 경기 부양책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정보화 실험이었습니다. 이 정책은 외환위기로 인한 구조조정과 외자 유입의 파고 속에서 한국이 자율적 경쟁력을 회복하는 유일한 돌파구였습니다. 수많은 실직자가 벤처 창업으로 몰렸고, 이들이 2000년대 초 ‘닷컴 붐’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IMF가 한국의 산업 구조를 외국자본 중심으로 재편했다면, 초고속 인터넷은 한국이 디지털 자주권을 확보한 계기였습니다. 이 시기 한국은 ‘정보화의 실험실’로 불렸고, 세계은행과 OECD는 한국을 정보사회 전환의 대표 사례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25년 뒤, 또 다른 실험이 시작되다
2025년의 한국은 다시 한번 새로운 문명의 교차로에 서 있습니다. 이번에는 인터넷이 아니라 인공지능(AI)입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 네이버클라우드 등 주요 기업에 GPU 26만 장 공급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GPU 보유량 세계 3위 국가로 부상했습니다.
GPU는 단순한 반도체가 아닙니다. AI 학습과 데이터처리의 ‘두뇌’이자, AI 산업의 지능 인프라를 구성하는 핵심 자산입니다. 1990년대 초고속 인터넷이 정보의 흐름을 가속했다면, 이번 GPU 투자는 지능의 흐름을 가속하는 투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닙니다. AI가 가져올 변화는 단순한 산업 구조의 개편이 아니라, 인간의 일, 교육, 가치, 나아가 존재의 정의 자체를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노동력이 줄어드는 한국은 AI를 통해 생산성을 보완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 노동의 의미를 잃을 위험도 큽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사회적·철학적 대응력입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기술로 절망을 돌파했듯, 이번에는 의식의 전환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AI의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과 판단을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가진 윤리적 감각이나 존재적 자각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라 말했습니다.
AI 시대의 위험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AI를 도구로만 이해하는 순간, AI는 인간의 사고와 윤리를 잠식하는 새로운 지배적 ‘사유틀’이 됩니다. AI가 인간의 노동과 판단을 대신하면 결국 인간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다시 묻게 됩니다. 즉 “나는 무엇으로 인간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돌아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과 의식의 영역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홍익인간,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패러다임
AI 시대의 핵심은 윤리(Ethics)입니다. 유럽은 기독교적 인본주의와 칸트적 의무론에 기반한 ‘AI 윤리헌장’을 마련했고, 미국은 실용주의적 데이터 거버넌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유가사상의 ‘조화’ 개념을 국가 윤리로 내세우며 AI의 사회 통제적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철학을 내세울 수 있을까?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입니다. 홍익인간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1948년 헌법 전문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국가이념으로 명시되어 온 독특한 철학입니다. 그 핵심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실천윤리이지만, 그 근본에는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추구하는 통합적 세계관이 있습니다.
이 사상은 동양적 ‘공(空)’의 철학과도 통합니다. 즉 존재를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적 존재로 인식하며,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전체라는 인식입니다. AI가 인간의 개별적 능력을 확장한다면, 홍익의 철학은 그 확장을 조화와 공생의 방향으로 이끄는 정신적 좌표가 됩니다.
영성혁명, 기술문명의 한계를 넘어
AI가 생각을 대신할 때, 인간은 영성을 깨워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의식의 진화’입니다. 기술이 외적 진보를 이끈다면, 영성은 내적 진화를 이끕니다. 홍익인간의 철학은 이 두 축을 동시에 껴안습니다. 그것은 물질과 정신을 융합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한국의 선도(仙道) 수행 전통 또한 몸과 마음, 우주를 하나의 유기적 흐름으로 이해하며 의식을 확장하는 수행 체계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 수행 문화는 AI 시대에 필요한 ‘자기 인식의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AI가 인간의 외부 세계를 자동화한다면, 영성은 인간의 내부 세계를 자율화합니다. 이 두 영역의 균형이 깨질 때, 문명은 불균형으로 치닫습니다. 따라서 AI 혁명의 진정한 완성은 기술혁명 위에 의식혁명이 세워질 때 가능합니다.
한국, 다시 세계의 문명실험국으로
IMF 외환위기 속에서 초고속 인터넷을 깔았던 한국은 ‘절망을 기술로 극복한 나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AI 시대의 전환기에 한국은 다시 한번 문명적 실험의 무대에 서 있습니다. GPU 26만 장의 도입은 단순한 산업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이 기술의 강국을 넘어 윤리와 의식의 모델 국가로 나아갈 가능성을 예고합니다.
AI가 인간의 생각을 확장할 때, 홍익은 인간의 마음을 확장합니다. AI가 생산성을 높인다면, 홍익은 공생의 윤리를 높입니다. 한국이 IMF의 정보화 실험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면, AI 시대에는 홍익인간을 기반으로 한 영성혁명으로 다시 한번 인류 문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AI 혁명과 영성혁명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한국은 기술과 인간, 과학과 철학을 통합하는 21세기형 ‘홍익 문명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의 혁명 위에, 의식의 혁명을
AI는 인간의 손을 대신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의 시대일수록 철학이, 지능의 시대일수록 의식이 중요해집니다. 홍익인간의 철학은 한국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흘러왔습니다. AI가 열어가는 기술문명 위에 홍익의 영성이 뿌리내릴 때, 한국은 다시 한번 세계 문명의 실험무대이자 인류의 다음 진화 단계를 제시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AI 혁명은 기술의 진보이고, 홍익혁명은 의식의 진보입니다. 이 두 혁명이 만날 때, 인류는 공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