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지역의 문화유산이 잇따라 국가유산으로 지정돼 관심을 모은다. 국가유산청은 서산 보원사지와 예천 개심사지의 오층석탑이 각각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또 ‘고려 오백나한도’를 비롯해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유항선생시집’, ‘휴대용 앙부일구’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했다. 이와 함께 ‘거제 수정산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소재한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국보 지정 예고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이미지 국가유산청.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이미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석탑 자체의 건립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탄문(坦文, 900-974년)이 보원사에 있을 때 고려 광종을 위해 봄에 불탑과 불상을 조성했다는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의 비문과 함께 석탑의 조영기법, 양식을 고려했을 때 고려 광종 때인 10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석탑 조성시기를 알 수 있는 편년 기준이 되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비교적 명확한 조성시기와 함께 고려왕실과 불교와의 관계를 알 수 있고, 통일신라 말기 조영기법과 양식을 계승하면서 고려시대 새로운 기법들이 적용된 석탑으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1011년(고려, 현종 2년)에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으로, 석탑에 새겨진 190자의 명문이 있어 구체적인 건립시기와 과정, 당시 사회상 등을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고, 우리나라 석탑 조성시기의 편년 기준이 된다.

기단부는 2층의 가구식 기단으로 구성돼 있는데,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마다 3개의 안상(眼象)을 배치하고 안상 내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했고, 위층 기단 면에는 각 면마다 2구씩 팔부중상을 조각했는데, 이는 1층 탑신의 금강역사상의 배치와 함께 다른 석탑에서는 유사성을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방식이며, 복식이나 지물 또한 특이하여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예천 개심사지지 오층석탑’은 석탑에 새겨진 명문으로 건립 목적과 과정, 시기 등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아래층 기단에서 1층 탑신까지 십이지상-팔부중상-금강역사상을 부조 방식으로 조각해 불교 교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등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국난 극복 의지 담긴 ‘고려 오백나한도’ 보물 지정

국가유산청은 불교의 힘을 빌려 몽고의 침입이 끝나기를 기원하며 제작된 ‘고려 오백나한도’를 비롯해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유항선생시집’, ‘휴대용 앙부일구’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했다.

‘고려 오백나한도’. 이미지 국가유산청.
‘고려 오백나한도’. 이미지 국가유산청.

‘고려 오백나한도’는 13세기 몽고의 고려 침입 시기에 국난 극복을 위해 일괄로 제작된 오백나한도 500폭 중 한 폭으로, 제329원상주존자(圓上周尊者)를 표현한 것이다. 지난 2016년 보물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오백나한도와 함께 제작됐다.

한 폭에 한 나한만을 담은 형식으로,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화면 왼쪽 위에 있는 용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나한의 얼굴과 자세에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역동감, 필선의 능숙한 구사, 자유롭고 다양한 농담 표현 등 뛰어난 화격을 갖추고 있다. 또한 화면 위 양옆에 적힌 화제를 통해 존명을 명확히 알 수 있으며, 하단 중앙의 화기(畫記)에는 제작 배경, 제작 연대(1235년), 발원자(김희인), 시주자(이혁첨)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고려시대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작품은 고려 불화의 특징인 품격 높은 예술성과 신비로운 종교적 감성을 담고 , 남아 있는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고려 불화 중 조성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성발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 및 조각승을 알 수 없으나, 불상에서 보이는 얼굴과 이목구비의 표현, 신체 비례, 활달한 선묘 등 양식적 특징상 16세기 중엽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현존 수량이 극히 적은 16세기의 불상으로 희소성이 있으며, 과학적 조사를 통해 제작 기법이 명료하게 밝혀져 있어 불교조각사, 특히 조선 전기 소조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이번에 새롭게 보물로 지정된 ‘유항선생시집’은 고려 말 문신이자 문장가인 한수(韓修, 1333-1384년)의 시를 담은 ‘유항선생시집’의 초간 목판본이다. ‘유항선생시집’은 한수의 시 외에도 권근(權近, 1352-1409년)의 서문, 이색(李穡, 1328-1396년)이 지은 묘지명, 우왕의 교서 등이 함께 수록돼 있어 한수의 생애, 사상, 학문과 인품까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휴대용 앙부일구’는 표면을 반구형으로 오목하게 파고 그 중심에 영침(影針)을 세웠고, 그 옆에 나침반을 붙여 남북을 정확하게 맞춘 후 시간을 측정하도록 제작됐다. 반구면이 정확히 절삭돼 명확한 절기선과 시각선이 제작됐고, 백동으로 제작된 영침을 은도금하는 등 제작 기법이 우수하다. 또한 다수의 해시계를 제작한 진주강씨 가문이 제작한 것으로 밑면에 제작 연대(융희 2년, 1908년)와 제작자를 새겨 놓아 과학사적 자료로 가치도 높다.

‘거제 수정산성’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 지정

‘거제 수정산성’. 이미지 국가유산청.
‘거제 수정산성’. 이미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거제 수정산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으며, 오는 11월 11일 오후 2시, 거제 농업개발원에서 거제시와 함께 사적 지정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거제 수정산성’은 서문 밖 큰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동치십이년계유삼월일설’이라는 명문을 통해 ‘옥산금성’이라 불린 기록이 있으며, ‘통제영계록’과 ‘거제군읍지’ 등의 문헌에 ‘수정산성(水晶山城)’으로 기록된 점을 고려해 이번에 ‘거제 수정산성’으로 지정됐다.

수정산(해발 143m)에 위치한 테뫼식 석축산성이며,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450m다. 11차례의 시·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신라의 초축 성벽에 수·개축된 고려·조선시대 성벽을 확인했으며, 이는 성곽 축조기술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장 마지막으로 성벽이 축성된 것은 성내에 건립된 ‘수정산성축성기’ 비석을 통해 고종 10년(1873년)임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축성 관련 기록이 1871년 김해 분산성을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기록을 통해 축성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산성 중에서 가장 늦은 시기의 산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당시(1873년)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여 조정의 지원 없이 거제부사 송희승과 거제도민들의 힘만으로 쌓았다는 점에서 희소성과 상징성은 물론 그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성내에서 조사된 건물지와 동서문지의 양호한 잔존 양상은 조선후기 성곽 구조와 축조 수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1호 건물지는 온돌이 확인되지 않고 장식기와가 사용돼 관사 등 특수목적의 건물로 보이며, 영남지역에 석회 산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급 재료였던 석회가 다량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중요한 건물로 추정된다.

또한, 수정산성의 초축 성벽에서 확인되는 성돌(세장방형 가공), 성벽(바른층쌓기), 성문과 기저부, 층단식 원형집수시설 등의 축성기법을 통해 최초 축성시기를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으며, 당시 신라가 남해 지역으로 진출하여 방어체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과 그 시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 이미지 국가유산청.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 이미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소재한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공간으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3년부터 거주했던 공간이다. 현재의 건물은 2002년 대통령 퇴임에 대비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사저동과 경호동을 신축한 것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적·정치사적 가치가 크다.

현재의 건물은 대통령 퇴임 이후 사저로 사용될 목적으로 건축돼 공적·사적·경호 기능이 공존하는 공간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앞서 등록된 다른 정부수반가옥과 비교했을 때 차별성이 있다는 점에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2024년 현 가옥의 소유자가 일반인으로 변경돼 변형이 우려된다는 점도 고려됐다.

지난 10월 28일 열린 문화유산위원회에서는 △‘국가등록문화유산 명칭부여 지침’에 따라 등록 명칭은 역대 국가등록문화유산 대통령 가옥 명칭을 고려해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으로 하고, △등록범위는 현 가옥이 위치한 토지1필지(573.6㎡, 동교동 178-1번지)와 그 필지 위에 위치한 건물 2동(사저동, 경호동)으로 하며 △필수보존요소로 대문(문패 포함), 2층 내부공간 전체를 권고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서울 동교동 김대중 가옥’에 대해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을 거쳐, 국민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