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대 한   박사

국학원 학술이사
 

천안 국학원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는 많은 인물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역대 우리나라 개국 시조들을 비롯하여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형국일 때 모든 것을 던져 민족을 구한 영웅과 함께 역사의 뒤편에서 보이지 않게 큰일을 해내신 분들의 전신 인물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하신 단군왕검 대형 입상이 맨 위쪽에 건립되어 있습니다.  나라별 시조로는 고구려의 고주몽, 발해의 대조영, 백제의 온조, 신라의 박혁거세, 고려의 왕건 상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을지문덕 장군의 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역사인물들입니다.  이 외에도 상이 있는 분은 최치원 선생, 대조영의 아우인 대야발, 묘청 스님, 홍암 나철 선생, 조소앙 선생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에 큰 역할을 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 청소년들은 이 분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요즘 학교에서 역사 교육이 전무할 정도로 국영수 과목만 하는 입시 공부에 빠져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이나 건국 시조 등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참으로 큰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인물상 중에는 유독 눈에 띄는 인물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무명독립군용사상입니다. 애국공원에 있는 무명독립군용사상은 독특한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대일항쟁기에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압록강 혹은 두만강을 건너갔던 30~40대 장년의 모습입니다.

이 무명독립군용사상의 모델이 된 단 한 장의 독립군 전신 사진이 존재합니다. 그는 겨울에 기념사진을 찍은 듯, 모자는 털모자를 쓰고 있으나 상의는 홑옷에 광대뼈가 유난히 두드러지게 나온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두 눈에는 광채가 나올 것 같은 형형한 눈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이분과 같이 만주벌판 혹독한 추위와 기아를 견디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에서 이름을 남기고 산화하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분들도 많지만, 이름은 물론이고 어디 살았는지, 고향은 어디인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가족은 누구인지 전혀 자취를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간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국학원의 무명독립군용사상은 그 모든 분을 대표해서 지금 국학원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 서 계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우리는 이분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비단 이분뿐만이 아니라,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많은 이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역사 영웅들의 뒤에는 이처럼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분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존재하지 않고 어떻게 영웅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순신 장군이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조선을 임진왜란에서 구할 때 장군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싸운 병사들이 없었다면 어찌 이순신 장군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해당됩니다. 나라가, 대한민국이 잘되기를 바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성심껏 실행하는 수많은 국민이 있기에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가 세상이라는 큰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 혼란, 반목, 불신, 부정부패가 난무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국민, 바로 현대의 무명독립군용사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국학원 무명독립군용사상은 결혼 적령기가 지난 얼굴입니다. 틀림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자 나라의 독립이 가족보다 우선한 가치이기에 과감히 가족과 헤어짐을 택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가족의 사랑보다 민족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이 더 컸기에 독립운동의 길은 서슴지 않고 택한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를 “효충도(孝忠道)”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살아생전 반드시 행해야 할 3가지 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집안에서는 효이며, 나아가서는 조국에 대한 충이며, 더 나아가서는 모든 인류의 공생과 평화를 위한 도라는 것입니다. 이 세 길은 모두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동등하지는 않습니다.

충보다 효가 앞설 수 없으며, 도보다 충이 앞서면 안 됩니다. 아무리 효가 중요하다고 해도 나라가 위험에 빠지면 과감히 충을 택해야 합니다. 구한말 한 의병장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부모상을 당했다고 싸움을 중단하고 무기를 내려놓고 초상을 치르러 가다가 일본군에 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부모의 상을 당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나라가 큰 위험에 빠졌는데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포기한 상태로 고향을 내려가는 것은 작은 것을 택하다가 큰 것을 놓치는 형국입니다.

국학원이 추구하는 국학의 핵심 철학은 바로 홍익인간 정신이며 천지인 정신입니다. 인류의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국학의 정신입니다. 나아가 하늘과 땅과 인간이 본래 하나라는 세계관, 우주관이 국학의 핵심 정신입니다. 이 철학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독립운동 정신이며 효충도 정신입니다.

많은 사람이 국학원을 방문하여 무명독립군용사상을 보고 갑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무명독립군용사상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묵념을 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국민이 국학원의 무명독립군용사상을 보러 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