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해윤 작가는 8월 28일 갤러리 나우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소리 없는 노래 Silent Song》에서 캔버스나 장지가 아닌 인조잔디에 작업한 작품을 선보인다. 왜 인조잔디인가? 정해윤 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동안 인간의 사회적 관계 혹은 삶의 보편적인 현상 속 삶을 대하는 자세의 긍정적 측면을 회화로 풀어왔다. 지난해 발표한 “평화를 살 수 있다면”이라는 전시를 통해 인간이 자아 정체성의 부존재로부터 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가치 있게 거듭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인조잔디라는 재료가 캔버스나 장지의 역할의 대신해 등장하였다. 이번 새로운 시리즈 <소리없는 노래>에도 역시 인조잔디가 캔버스를 대신한다. 이는 작가의 의도적 재료의 선택이며 자신의 가치를 몰랐던 인간의 불안과 인정받고 싶지만 하찮게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을 인조잔디로 비유한다. 인조잔디는 그림을 그리기 쉬운 깨끗하고 순수한 바탕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난관이 많다. 그런 인조잔디라는 요철 위에 그리기에는 불편함과 핸디캡을 생각을 달리하여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예술가의 행위가 덧붙여진 예술작품으로서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 일련의 선택과 과정은 인간이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위치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극복하고 얼마나 아름답게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을 반증하는 재료에 대한 작가의 회화적 해석이 녹아들어간 작품이다. 현대미술에 있어 재료의 한계는 이미 없다. 남들이 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한 것이라 믿었다.”(정해윤 ‘작가 노트’)

침묵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걸까? 작가의 작품에는 많은 새가 노래하지만 소리가 없다. 이는 관객에게 사유하게 하며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소리가 없는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소리 없는 노래>는 현대의 언어의 폭력에 대한 고통과 피해로부터 가학적 언어사용의 절제를 위한 저항의 소리를 작가의 소리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침묵은 공간을 초월한 절제 있고 고요한 외침이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부분에선 침묵은 한 인간을 살릴 수 있는 그 어떤 강력한 의료수단보다 영향력이 있을 수 있다. 비극은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정점에 있을 때 음습한 곳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가오기에 그 폭력에 무방비로 당하는 것이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고요하고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언어폭력에 대한 역설적 저항과 희망을 담은 작품이다.”(정해윤 ‘작가 노트’)

작가는 작품에서 “새는 인간의 은유적 표현으로 역시 그 맥을 이어온다”라고 말한다.
“사회를 논하면 인간이 빠질 수 없고 인간은 사회적 관계가 크든 작든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들어 주길 바라며 살아간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생각을 전달하는 데에 소리의 형식으로는 말이나 글, 그림, 노래, 눈빛, 행동까지 그 수단은 다양하다. 침묵마저도 강한 저항의 소리일 수 있다. 소리의 내용으로는 사회에 대한 긍정적 반향을 위한 유익한 소리도 있지만 반대로 집단적 이기심이나 개인의 감정적 불평을 소리라는 수단으로 정당화하기도 한다. 물론 혼자 내고 혼자 듣는 소리는 근거가 없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소리를 듣는 대상이 대중이고 의도가 어떤 대상을 왜곡하고 대상의 존엄을 헤치는 내용이 있는 노래라면 그 소리는 폭력이다. 소리는 자유의 상징이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권리이다. 하지만 대중을 향한 소리는 소리를 내는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하며 거짓 없이 사실을 바탕으로 소리를 내는 장소와 취지에 맞는 내용이어야 설득력이 있다. 이 사소한 기본적인 배려를 무시한 채 살아가는 언어의 폭력의 환경에 노출되어 누군가는 우울증에 빠지고 누군가는 공포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삶의 의욕을 상실한다. 그 안타까운 대상이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하고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인격 존중의 범위에서 절제된 소리를 내야 되지 않을까. 소리는 수단일 뿐이고 자유의 상징일 수 있지만 소리가 없다고 해서 노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언어의 폭력은 자신의 나약한 점을 더 드러내는 행위일 뿐 상대를 깎아내리고 누른다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언어폭력의 노출된 분들에게 당신들의 진정한 노래를 듣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위로와 희망을 전합니다.”(정해윤 ‘작가 노트’)

송지원 갤러리 나우 큐레이터는 정해윤 작가의 이번 전시를 이렇게 소개한다.
“정해윤은 이 전시를 통해 언어의 폭력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를 성찰한다. 말과 글, 행동, 눈빛, 그리고 심지어 침묵까지… ‘침묵’은 이 전시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말보다 깊은 언어, 소리보다 강한 울림. 침묵이 결코 무기력이 아닌, 가장 절제된 방식의 저항과 연대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말한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 속에서, 침묵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힘이 되며, 때로는 언어보다 더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소리가 없다고 해서 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소리 없는 노래》는 언어의 상처로부터 회복 중인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노래이자, 누군가의 진실된 목소리를 끝내 귀 기울여 듣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이다.
정해윤의 작업은 단순히 미적 대상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의 레이어를 포착하고, 재료를 통해 철학을 말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소리 없는 노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조용하고 절제된 외침은 오히려 더 강한 울림으로 우리 내면에 도달할 것이다.그의 회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가, 혹은 어떤 침묵으로 말하고 있는가?’ ”

정해윤 (HaiYun Jung)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2008년 영국 런던 뉴데이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이 열한 번째 개인전. 2008년 미국 뉴욕 아트오마이 국제레지던시를 비롯하여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아씨씨 등 다섯 차례 레지던시를 거쳤다.
정해윤 작가의 개인전 《소리 없는 노래 Silent Song》는 9월 27일까지 갤러리 나우(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52길 16)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