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승 용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체육(體育)은 인간의 신체 활동을 매개로 근육을 단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완성된 인격을 형성하고자 하는 교육적 활동이다. 그 궁극적 목적이 신체적·지적·도덕적 발달을 통한 전인적(全人的) 인간의 육성에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운동 기술의 집합을 넘어, 한 사회가 지닌 고유의 정신과 철학,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공동체적 가치가 실천되는 구체적인 문화 행위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최근 우리나라 학교 체육은 이러한 본질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서구 스포츠 모델이 체육 교육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주요 관심사가 스포츠 기능의 습득에 과도하게 편중되고 체육 교육 전반이 스포츠에 종속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 내면의 조화로운 성장을 이끄는 '삶의 철학'으로서 기능하기보다는 경쟁에서의 승리만을 강조하는 '성과지향적 도구'가 되고 있다. 아울러 '몸'과 '정신'의 조화로운 통합보다는 기능적 분리가 심화되고, 인간의 신체가 성과와 효율을 측정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며 '수단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精)·기(氣)·신(神)을 통합 수련
우리의 상고시대 전통 체육은 경쟁이나 신체 단련을 넘어,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정(精)·기(氣)·신(神)을 통합적으로 수련하는 수련 체계였다. 이는 인간을 우주의 일부이자 하늘과 땅의 기운을 이어가는 중심적 존재로 인식하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에 철학적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대 체육이 잃어버린 심신(心身) 통합의 가치를 온전하게 담고 있었다.
고려시대 실록을 기록하는 찬수관을 지낸 이맥은 『태백일사(太白逸史)』에 "환인(桓仁)이 몸을 다스려(治身) 병이 없는 경지(無病)에 이르렀으며 이 현묘한 도(玄妙之道)를 자손들에게 전하여 광명의 세상(光明世界)을 열었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환웅이 "묵념(默念), 청심(淸心), 조식(調息), 보정(保精)의 수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쳤다"라고 했다.
단군시대에 이르면 국가 이념인 ‘홍익인간’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기반으로 정치, 교육, 문화, 체육 전반에 걸친 고유한 정신문화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 시기의 체육은 단순한 신체 훈련이나 무예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합일 사상, 기(氣) 중심의 수행관, 심신일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전인적 수련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국가 행사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의식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춤과 노래, 활쏘기, 무예 시연과 같은 집단적 신체 활동이 어우러진 요즘의 전국종합체전같은 축제였다. 이러한 체육활동은 개인의 완성된 힘을 통해 건강하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뚜렷한 사회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양 고대 체육과 다른, 독창적 특징
서양의 고대 체육과 동양 체육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동,서양의 신체관에서 비롯된다. 서양 체육의 뿌리로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근육의 균형미와 경기력을 통해 내면의 덕을 증명하고자 했다면, 단군조선을 비롯한, 인도, 중국 등의 동아시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 에너지, 즉 기(氣) 또는 프라나(Prana)를 신체 수련의 핵심 요체로 삼았다. 이는 서구의 기계론적, 외형적 신체관과 달리 우주적 생명력인 ‘기(氣)’의 조화로운 운용을 중심으로 삼았던 동양적 체육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같은 동아시아에서도 인도 요가나 중국 도가(道家) 수련이 주로 개인의 건강 장수와 정신적 해탈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한국의 상고 체육은 개인의 완성을 넘어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공동체적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국가적·사회적 성격으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이는 전세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특성이다. 환인, 환웅, 단군과 같은 국가의 임금이 직접 체육을 통해 선인의 경지에 이르고 백성을 교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기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단군 조선이래 제천문화가 차츰 사라져 갔고, 그 문화를 기록했었던 역사서가 없어지고 그 문화, 역사 속에서 전해지던 전통체육도 그 흔적을 상실하며 쇠퇴해갔다.
삼국 이래로 문신(文臣)들이 출세하고 우대받았으며 체육과 무예(武藝)를 갈고 닦은 장군, 무신(武臣)들을 천대를 받는 풍조가 자리잡았다. 나라의 예(禮)는 허례허식으로 흐르고 의(義)를 지킬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사라지면서 나라의 기풍이 유약해지고 남을 사대하는 풍조가 만연해갔다.
세계로 확산되는 한국식 명상, K명상
그렇게 한국 상고시대의 체육이 지향했던 정기신(精氣神) 통합의 철학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원형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으나, 그 정신적인 맥이 현대에 이르러 ‘단학(丹學)’이라는 체계적인 수련법을 통해 다시 창조적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단전호흡, 명상, 국학기공, 뇌교육, 브레인트레이닝(Brain Training) 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각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전세계 20여개국에 수출되어 수백만명의 수련자들이 참여해오고 있으며 국가 교육정책으로도 도입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한국식 명상, K명상이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자연에 맡겨질 때 기(氣)는 막힘없이 자연의 이치대로 인체와 동화되어 흐르게 된다. 이때 사람은 기(氣)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의 경계가 넘어 대자연과 하나되는 상태에 이르며, 정신이 밝아지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우리나라 여자 양궁팀이 올림픽 10연패를 차지하며 금메달을 독식하며 휩쓰는 이유가 바로 이런 우리 수련법과 DNA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 체육교육과 정책은 우리의 전통 체육철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인성 함양과 공동체 중심의 체육철학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학교교육, 지역사회 스포츠, 정신수련 분야 등에서 상고 체육의 정신을 접목한 프로그램 개발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군조선의 체육 철학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몸의 지혜와 공동체 정신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샘물이다. 이 오래된 지혜를 현대적으로 재발견하고 실천하는 노력이야말로, 물질문명의 한계를 넘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문화 르네상스’를 여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