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용 상
네거티브정치캠페인연구원장·정치학 박사
인사청문회는 헌법기관으로서 국회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고위공직자의 자질, 도덕성, 정책 능력을 검증하는 절차다. 정권의 고위 인사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국회 본연의 기능이자, 국민의 판단을 돕는 투명한 공론의 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인사청문회는 그 본질에서 멀어졌다. 이미‘청문회장에 앉는 순간,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는 구조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라도 후보자 자리에 앉는다면 하루 종일 도덕성 의혹과 가족 문제로 시달리며, 결국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청문회는 검증의 장이 아닌 망신의 장으로 변질되었고, 이제는 인재보다‘무색무취한 사람’, ‘흠이 없는 사람’을 찾는 자리로 전락했다.
어느 당이 정권을 잡아도 여당과 야당의 이름만 바뀔 뿐, 여당의 행태와 야당의 행태는 서로 닮아있다. 여당은 방어에 급급하고, 야당은 낙마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정작 국민은‘제대로 된 후보자’를 만나지 못한 채 허탈한 구경꾼으로 남겨진다.
후보자들의 무성의한 태도
많은 후보자가“시간만 떼우면 임명된다”라는 확신을 한 듯 앉아 있다. 현재 여당 의석수가 과반수를 초과해서 청문보고서를 채택할 수 있거나,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거나, 모르면 동문서답하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결국 보고서 채택은 이루어져, 임명은 예정된 순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정책에 대한 준비 부족은 심각하다. 국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자리인데, 정작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후보자도 있다. 다시 말해 ‘장관직’을 명예와 보상의 자리로 착각하는 후보자들이 적지 않다.
여당 청문위원의 회피성 자세
여당 청문위원들의 태도는 ‘방탄’그 자체다. 정권의 인사 실패가 눈앞에 있어도,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심지어 “이 정도면 괜찮은 후보”라며 도덕적 흠결을 정당화하거나, 야당의 질문을 방해하는 데 열을 올리기도 했다.
더욱이 여당 의원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도 청문회 대상자가 될 수 있기에, “오늘은 내가 도와주고, 내일은 네가 나를 도와줘야지”라는 정치적 공생 심리가 작동한다.
여당 의원들의 정권 내부 견제 기능은 사라졌고,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 기준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야당 청문위원의 무딘 칼날
야당 청문위원들은 도덕성 폭로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책과 철학, 행정 능력을 검증해야 할 자리를“미래에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과거 뒤지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질문도 반복되고, 공격도 도돌이표다. 그 결과는 어떤가?
정말 유능한 인재들은 스스로 후보직을 고사한다. 자신이나 가족의 사생활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을 알기에, 국가와 국민에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사양한다.
이쯤 되면, 국회에서 하는 청문회는 ‘인사청문회’가 아니라‘발가벗기회’나 ‘먼지털이회’가 더 정확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인사청문회를 살리는 길
대한민국의 인사청문회는 이대로는 안 된다. 청문회다운 청문회,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청문회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혁이 필요하다.
① 청문회 기준의 분리
도덕성 검증과 정책 능력 검증을 분리해서 전문화해야 한다. 법 위반은 확실히 따지되, 개인의 과거를 매도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② 청문 대상자의 반론권·발언권 확대
지속적 폭로와 비방에만 들춰지는 것이 아니라,후보자가 자신의 정책과 철학을 피력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③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하는 관행 근절
국회가 아무리 부적격 의견을 내도 대통령이 밀어붙이면 끝인 지금의 구조는 국회 무력화를 가져온다. ‘청문보고서 채택 없는 임명’의 제한이 필요하다.
④ 정치적 책임 구조 명확화
여당은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에 대해 일정한 책임 발언을 해야 하며, 야당도 후보자 낙마만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주의 비난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재를 구하는 자리, 그 자리가 오히려 인재를 내모는 자리가 되어선 안 된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책임 있게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다. 예수님, 부처님이 앉아도 망가질 수 있는 인사청문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국민이 믿고 일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제 정치가 먼저 스스로 정화해야 한다.”
정치의 품격은 결국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판가름난다. 망신이 아니라 검증으로, 낙마가 아니라 국민 신뢰로 이어지는 청문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