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용 상

네거티브정치캠페인연구원장, 정치학박사

 

최근 15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김건희 특검’이 본격화되었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들어가는 이 수사에서 다루는 핵심 중 하나가 “진짜 신발 사이즈가 맞느냐”, “진짜 목걸이냐”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부인이 명품과 사치품 논란으로 언론을 도배하는 모습은, 솔직히 필리핀 국민의 분노를 사서 쫓겨난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이후 처음인 듯하다. 이멜다는 3천 켤레가 넘는 명품 구두를 갖고 있었고, 국민은 굶주렸다. 결국 혁명은 부패한 권력과 탐욕스러운 퍼스트레이디를 심판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명품이 아니라 분노였고, 그 분노는 거리의 민심을 통해 ‘혁명’으로 터져 나왔다. 2025년의 대한민국이 이멜다의 그림자를 다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대개 우리 국민은 ‘대통령 부인상(像)’ 하면 육영수 여사를 떠올린다. 남편 박정희 대통령과 정치적 평가가 갈리더라도, 육 여사에 대한 평가에는 대체로 존경의 감정이 깃들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품격, 절제, 국민을 향한 공감, 무엇보다 정체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육 여사는 외유보다 내실을 택했고, 사치를 멀리했으며, 국민의 슬픔과 기쁨에 함께한 퍼스트레이디였다. 공식 행사에서도 검소한 한복에 손수 장식한 브로치를 달고 나왔다. 아들의 양복이 작아지면 직접 단추를 뜯어 바꿔 달았고, 대통령 부인임에도 소외계층을 위해 직접 구호 현장에 나섰다. 그가 남긴 것은 명품이 아닌 신뢰였고, 그 신뢰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여사가 서 있던 자리는 ‘힘의 중심’이 아니라, 국민의 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육영수 여사를 그리워한다.

유럽을 움직이던 여성, 세탁기 앞에 선 사람

독일의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재임 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유럽의 수장(首長)이라 불렸다. 하지만 메르켈은 자신의 옷을 직접 세탁기로 빨았고, 생선가게에서 장을 봤으며, 한 치의 사치도 하지 않았다. 공항 VIP라운지 대신 일반 대기실에서 책을 읽던 모습이 포착되었을 때, 독일 국민은 국격을 실감했다. 그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대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신뢰받았다. 메르켈이 보여준 건 ‘절제’였고, 그것이 곧 ‘권위’였다.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는 어떠했는가? 김건희 씨는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에 오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절제’라는 단어와 어울린 적이 없다. 해외 순방 때마다 드러나는 고가의 브랜드 아이템, 진품 여부를 둘러싼 논란, 외교 무대에서의 부적절한 패션, 그리고 ‘내가 누군지 아니?’를 연상케 하는 특권의식은 끊임없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반 서민이 생계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안, 퍼스트레이디는 백화점 명품관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고가의 외제 가방을 받아 챙기며, 거짓 학력과 논문으로 포장한 ‘가짜 경력’을 사회적 자산처럼 휘둘렀다. 그러니 얼굴도 ‘짝퉁’, 목걸이도 ‘짝퉁’, 논문도 ‘짝퉁’, 학력도 ‘짝퉁’, 언론보도도 ‘짝퉁 해명’이란 비판이 이어진다. 이쯤 되면 그의 삶 전체가 ‘짝퉁 인생’으로 역사의 주석에 남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것이 과연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 배우자의 모습인가?

전 세계는 K문화에, 퍼스트레이디는 외제에 열광

전 세계가 K-콘텐츠에 열광하는 시대다. BTS, 오징어게임, 한복, 비녀, 노리개까지 세계가 주목하고 배우는 시대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는 왜 외국 명품에 갇혀 있는가? 샤넬 가방, 루비 목걸이, 디올 구두. 이것들은 외교 무대에서 국격을 보여주는 상징이 아니라 욕망과 과시의 표식에 불과한데 말이다. 게다가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과 절제, 품격을 보여줄 기회마다 도리어 ‘짝퉁 논란’과 ‘가짜 의혹’이 터져 나왔다. 그에 따라 올려야 할 국격이 반대로 자꾸만 깎여 나갔다.

사극을 보다 보면 늘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백성의 고통은 외면하고, 남편인 왕까지 좌지우지하며, 오직 자신의 친정과 사리사욕을 위해 권세를 휘두르는 요망한 왕비. 이런 왕비가 등장하면 언제나 왕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며, 결국 백성을 고통 속에 빠뜨린다. 김건희 씨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많은 국민은 그 왕비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퍼스트레이디의 사치는 사생활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 품격의 비용이고,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될 이미지의 유산이다.

퍼스트레이디는 단순히 대통령의 배우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얼굴이자, 문화 외교의 최전선에 선 문화 외교관이다. 따라서 K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야 하고, 마땅히 전통의 미와 절제를 몸으로 보여주며, 한국 고유의 정신을 국제 무대에서 실천해야 한다.

이제는 이 나라 최고 지도자의 옆자리에서, 절제와 지혜, 공감과 책임감으로 시대를 비추는 진짜 퍼스트레이디를 만나고 싶다. 정말, ‘짝퉁’이 아닌 ‘진짜’를 보고 싶다. 그날이 오면, 우리 국민은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자리에 작지만 깊은 자부심이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