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용 상
네거티브정치캠페인연구원장, 정치학박사
2004년 어느 날 밤, 모임에서 친구 박모 군이 말했다. “나, DJ 옥중 시절에 그 옆에 있었어. 그분이 묶인 팔로 꾹꾹 눌러쓴 쪽지를 잊을 수가 없더라. ‘나는 살기 위해 정치하지 않았다’…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헌병이었다. 이 젊은 병사는 차디찬 철문 너머에서 정치인의 고독을 처음 배웠다.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기억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킨 ‘실존’그 자체로 기억한다.
2025년, DJ가 떠난 지 15년이 지났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변한 듯 보이지만 본질은 여전히 제자리다. 정치는 여전히 싸움의 무대이고, 정당은 권력 투쟁의 장이다. 지도자는 사라졌고, 정치인은 넘쳐난다. 진심은 실종됐고, 전략만 남았다. 행동하는 양심은 침묵했고, 말뿐인 정의만 요란하다. 우리는 지금 가끔 묻는다. “김대중이 지금 살아 있다면, 이 혼란의 정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 윤석열의 퇴장을 보고 무슨 한숨을 쉬었을까. 젊은 정치인들의 저급한 언어와 적대적 공세를 보며 어떤 침묵을 택했을까. 그리고 2030세대의 무관심과 냉소 앞에서, 그는 다시 “정치는 희망이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김대중은 누구보다 용기 있는 전략가였다. 감성에 젖지 않았고,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누군가를 쓰러뜨려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며‘왜 자신이 필요한 사람인지’를 스토리로 증명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승리 이후에도 겸손했다.
지금 정치판을 보라. 스토리 없는 후보들이 정당 공천장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권력의 수직만 남고, 신념의 수평은 사라졌다. 그들은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는 말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없는 정치는 방향 없는 배와 같다. 표류하는 건 국민이고, 책임지지 않는 건 정치인이다.
김대중은 갈등을 피해 가지 않았다. 분열을 뚫고 연대를 만들었고, 지역을 넘어 통합을 이루려 했다. 그의 정치에는‘설득의 땀’과‘용서의 눈물’이 있었다. 그는“당신을 위해 싸우겠다”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속에는 상대를 이기겠다는 야망이 아니라, 함께 살아남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DJ는 늘 국민을 앞세웠다. 그는 거대한 연설보다 시장 골목의 인사를 더 소중히 여겼고, 원고보다 눈빛으로 진심을 전달했다. 그의 메시지는 어렵지 않았고, 가슴에 남았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십시오”라는 한마디는 수많은 이념보다 강한 실천의 동력이었다.
나는 가끔 친구 박모군에게 DJ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짧게 말한다. “그 양반, 정치가 뭐냐고 묻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 ‘정치는,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 말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금 우리는 과연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정치, 상대를 파괴하기 위한 정치를 반복하고 있는가? ‘죽이는 프레임’만 난무하는 세상에서, 정치는 더 이상 사람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DJ는 역사의 고비마다 말 대신 인내를 택했다. 일본과의 외교, 북한과의 정상회담, IMF 외환 위기의 파고 속에서도 그는 국민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 그는 종종 혼자였고, 고립됐고, 심지어 배신당했지만, “그래도 국민이 있다”라며 버텼다. 그 신념이 이 나라를 지탱한 힘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비난한 사람들에게 더 낮은 자세로 다가갔다. 적을 만들지 않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도 끌어안았다. 지금처럼 정치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전쟁터가 되기 전에, 그는 정치를 국민 모두의 집으로 만들려 했다. 우리는 지금 ‘살리는 정치’를 찾고 있는가? 아니면 ‘죽이는 프레임’만 경쟁하고 있는가? 정치가 증오를 먹고 자라는 지금, DJ의 정치는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더 그리워한다. 그의 말투, 그의 침묵, 그의 설득, 그의 기다림. 그것이 지금 정치에 가장 부족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DJ 서거 15주기. 그의 이름을 기념하기 전에, 우리는 지금의 정치가 어디쯤 와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행동하는 양심”은 이제 누가, 어디에서 다시 꺼낼 수 있을까? 김대중이 지금 살아 있다면, 그는 우리를 꾸짖기보다 또박또박 희망을 말했을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가 아닙니다. 신뢰의 위기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을 것이다.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 마음을 얻기 위해, 우리는 김대중의 리더십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 김대중은 우리에게서 떠났지만, 그의 리더십은 여전히 살아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정신을 박물관에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 다시 꺼내 쓰는 것이다. 정치는 죽지 않았다. 단지, 김대중처럼 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