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드 앤솔러지 《끼리끼리 사이언스》(넥서스 간)에서 권혜영, 성해나, 성혜령, 이주란, 한지수 다섯 명의 여성 작가는 개성 넘치고 탁월한 소설 세계를 펼친다. 이 작품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 던져진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끼리끼리 사이언스’라는 말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사회적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이것이 마치 과학적으로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는 말이다. 물론 타인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때 우리는 깊은 공감을 경험한다. 이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성장시키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하지만 ‘유유상종’ 이면에는 닮지 않은 이들을 배척하는 배타주의가 깔려있다. 각 소설에서 끼리끼리와 배타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끼리끼리 사이언스》에서 권혜영의 <럼콕을 마시는 보통 사람들>은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를 넘어선 구성원의 탄생을 통해 가족의 다양성과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우리가 친부모와 친자녀를 중심으로 구성된 가족을 당연하게 볼 때, 이 형태에서 벗어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럼콕을 마시는 보통 사람들>에 등장하는 한나는 대학에서 학점을 채우기 위해 ‘학생 도우미’ 봉사활동을 신청했다가 우연히 같은 한국계 학생인 솔과 연결된다. 하지만 솔은 한나와 거리를 좁힐 마음도, 영어를 배울 의지도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나는 아빠만 둘인 게이 커플의 가정에서 사는 중이었고 솔 역시 엄마만 둘인 동성애 가정에서 성장했다. 둘은 모두 입양아이다. 이들은 보통사람들처럼 살게 될까?
성해나의 <윤회 (당한) 자들>은 데뷔작 이외에 후속작을 만들지 못하고 15년째 작품 구상을 하는 다큐 감독 원필이 작품 욕심에 이상한 모임에 잠입하여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전생을 기억하고 윤회되기를 기다리는 이들의 모임. 원필은 자기가 윤회 전 중국인 샹 샤오윙이라 소개하고 모임의 일원이 된다. 한 명이 죽어 윤회당하고, 이어 다큐 감독이 다음 윤회자로 뽑힌다. 두려움에 떨던 원필은 윤회를 위한 리허설을 하면서 점점 샹 샤오윙이 되어 간다. 그리고 발원한다. 샹 샤오윙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성혜령의 <임장>은 ‘자기만의 집을 홀로 마련해야 하는 직장인 여성 모임’, 부동산 재테크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모임의 리더였던 사람과의 어긋난 소통과 오해를 통해 인간의 고립과 상실의 아픔을 보여준다. 1년간 각자 가고 싶은 동네를 골라서 사전 조사하고 함께 임장을 다니는 동안 모임 회원들은 점차 서로 알게 된다. 그렇다고 1년이라는 시간에 서로 얼마나 깊이 알고 이해할까.
이주란의 <산책>은 주인공 소진이 십이 년 사귄 연인과 헤어지고, 이사한 후 그 동네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에서 사람들과 함께 산책을 하면서 이별의 후유증을 치유한다. 그러는 사이 주인공은 누군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런 사실에 놀라고 새로운 사람이 선명해지는 대신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은 차츰 흐릿해지고 그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낯설어하면서, 그 사실을 섣불리 믿을 수 없어 한다. 일상에서 겪는 이별과 치유, 새로운 만남 과정에서 겪는 감정과 생각 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것처럼 읽게 된다.
한지수의 <목소리들>은 ‘미투’를 다룬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가 아닌 방관자의 관점에서 내면의 독백을 들려준다. 소설 속 나는 입사 동기 홍이 팀장을 미투 가해자로 고소하면서 파리행을 한다. 나는 오래전 미투 가해자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재판을 받았던 엄마를 떠올린다. 무고를 밝히고 결국 재판에서 이겼지만 엄마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겪었던 성추행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끔찍한 사실을 깨닫는다. 행복과 불행에서조차 어느 편도 들지 않았음을.
《끼리끼리 사이언스》는 각 소설 말미에 ‘작가의 말’을 두어 소설을 구상하고 쓰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소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