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컷더케이크 개관전 《오이풀과 소금꽃》은 여름의 문턱에서 그렇게 사라졌다가 다시 피어오르는 감각에 관해 이야기한다. 오이풀의 생명력과 소금꽃의 아련함을 곽지유, 조정수, 최은지 세 작가의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다. 이들의 화면에 새겨진 색의 대비, 반복되는 선의 흐름, 산란하는 빛은 기억의 비밀스러운 단서처럼 다가온다.
곽지유 작가는 완성보다 ‘그리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며 드로잉을 이어나간다. 대상에 대한 내면적 해석을 통해 추상화하는 과정에서 즉흥적인 붓질과 반복적인 신체 리듬을 고스란히 화면에 스민다. 최근작 ‘On the Road’, ‘Sunrise’에서는 넓은 색면 위에 식물의 생명력이 펼쳐지며 잔잔하지만 응축된 에너지가 응집된다. 그의 회화에는 붓의 궤적과 함께 몸의 온기, 숨결, 때로는 한계에 부딪히는 신체적 감각이 담긴다. 멈추지 않는 붓질의 리듬은, 바람결에 흩날리는 나뭇잎의 떨림, 혹은 정오의 빛이 스치고 사라지는 여름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조정수 작가는 가장 오래 머무는 일상 공간의 사물들을 관찰하며, 차곡차곡 쌓인 시간을 그려낸다. 작업의 출발점은 늘 작은 색조—마치 일기처럼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미세한 색의 단서로부터 시작된다. 여러 날 동안 모습을 달리하는 사물의 풍경을 바라보며, 작은 변화들을 감지하는 그는 겹쳐지고 어긋나는 오늘의 단면들을 화면에 담는다. ‘여름’, ‘조용하고 밝은 밤’은 매일을 조용히 기록한 작업이었다면, ‘네가 그리울 거야’는 하나의 대상을 빠르게 포착한 순간의 감각을 보여준다. 익숙한 환경 속 순간을 수집하다 보면 화면은 어느새 여행지의 감정과 날씨, 사소한 인상들이 켜켜이 쌓인 풍경으로 이어진다. 그 앞에 서는 이는 마치 어느 여름날 테이블에 앉아 되새겨보았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최은지 작가는 도시 풍경 속 시간과 감정의 결을 포착하고 재조합한다. 유리창에 반사된 이미지, 붙었다 떨어진 벽지의 흔적, 사라진 건물의 자리 등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시를 감정의 풍경으로 다시 그려낸다. ‘Wall_01’, ‘오늘은 하루 종일 맑겠습니다’는 멈춰 있는 도시 풍경에 작가의 시선을 겹쳐놓은 듯하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일종의 감정을 담아내는 장소로 번역하며, 경험의 콜라주로서 화면을 구성한다. <코어단련>과 <도착 대기중> 연작은 움직이는 듯한 형상과 지지체 간의 미묘한 긴장과 불균형을 보여주어, 여름날 갑작스러운 소나기나 더운 공기 속 찰나의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도시의 기류를 떠올리게 한다.

잎새를 스치는 바람, 소나기, 햇살 아래 반짝이는 결정들―생생하면서도 아득한 기억의 조각들이 서로 다른 결로 얽힌다. 곽지유 작가는 피어나는 생명력의 리듬을, 조정수 작가는 쌓인 시간과 기억을, 최은지 작가는 도시 속 빛과 존재의 흔적을 그려낸다. 세 작가의 작업에서 여름이라는 시간의 궤적을 따라가며, 무더운 이 계절이야말로 모든 생명이 가장 활발히 살아가는 때임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곽지유, 조정수, 최은지 작가가 함께하는 전시 공간 컷더케이크(Cut the Kake)의 개관전 《오이풀과 소금꽃》은 6월 20일부터 7월 13일까지 볼 수 있다.
컷더케이크는 기획자 김세희, 이주연, 그리고 작가 박미남이 함께 운영하는 전시 공간으로, 올해 6월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 개관하였다. 공간 명칭 ‘컷더케이크’는 창작자들의 작업 세계를 전시를 통해 함께 나누고 축하한다는 의미. 앞으로 다양한 전시 기획과 프로그램, 그리고 대관 사업을 운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