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불(대표 전기광)의 연극 <빗소리 몽환도>(작 주수자, 연출 전기광)는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몽환도(夢幻圖)’임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빠르게 흐르는 현실 속에서 예술이 던지는 구원과 사유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무대 위로 불러낸다. ‘현실’과 ‘상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현실을 확장해 내는 새로운 예술적 시선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책 = 인간 = 옥탑방 = 우주”라는 작가의 철학을 바탕으로, 현대인이 지닌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섬세하게 뒤흔든다.
연극 <빗소리 몽환도>는 어느 비 오는 밤, 옥탑방에서 소설을 읽던 남자 ‘공상호’가 책 속 주인공 여인을 현실에서 맞닥뜨리며 시작된다. 활자에서 튀어나온 여인의 등장은 곧 옥탑방이라는 작은 공간을 무한히 팽창시키고, 시공간은 혼란과 환상의 기묘한 울림으로 변한다. 관객은 공상호의 내면처럼 일그러지고 흐트러진 ‘현실의 물성’을 직접 목도하게 되며, 이 혼돈 속에서 삶의 근원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우선 비라도 피하면 안 될까요?” 여인의 이 대사는 곧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열쇠가 되며, 작품은 관객에게 ‘예술이야말로 오늘날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확장 가능한 우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연극은 주수자 작가의 단편 소설 《빗소리몽환도》을 원작으로 한다. 주수자 작가는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미국, 프랑스, 스위스 등지에서 23년간 해외 생활을 하면서 한국어로 소설을 써서 등단했다. 시와 소설, 희곡 장르를 넘나들며 서사에서 이미지로의 전환을 유연하게 구현하고 있는 작가이다.
연극 <빗소리 몽환도>는 6월 11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시어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출연 배우로는 주원성, 정연주, 공현욱, 박새슬, 송인준, 현정하, 김산, 박초원, 황정후 등 60대 중견 배우부터 20대 신인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여 호흡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