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여성의전화기 주최하는 제18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부문 본선진출작 32편이 선정됐다. 올해 여성인권영화제에는 더욱 다양해진 주제와 질문이 담긴 528편의 국내외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 중 심사단이 경쟁부문 본선진출작 32편을 선정했다.

김현(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시인) 심사위원은 제18회 여성인권영화제 출품공모 예심 심사평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으며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쪽에 서 있다고 했다. 어디 문학만이 그렇겠는가. 모든 예술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다.
수백 편에 이르는 올해의 출품작들을 살펴보면서 각각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체온을 감지하려 애썼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폭력을 뜨겁게 고발하는 영화들, 벼랑 끝에 내몰린 여성의 현실을 차갑게 관찰하는 영화들, 여성이 여성과 소수자와 연대하며 성장하는 따뜻한 영화들, 다양한 나이의 여성이 가진 감정의 결을 안온하게 어루만지는 영화들, 장르의 묘를 살려 여성의 일상을 유쾌하게 때론 통쾌하게 그려낸 영화들은 시원했다.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훨씬 더 교묘해지는 오늘날 영화는 여전히 질문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한다. 매번 어떤 영화는, 어떤 영화 하는 자는, 어떤 예술 공동체는 야만적인 역사의 어둠 속에도 한 줄기 빛을 켜고자 애써왔다. 그 빛에 빚지며 어떻게 살 것인가 묻고 어떻게 죽지 않게 해야 하는가 대답하려 노력해 왔다. 과거형이 아니다. 어떤 영화는 체온을, 사람의 의미를 재발견하기 위해 지금도 소리 내고 있다. 목소리와 목소리로 이어지는 사람의 말, 그때 켜지는 공동(체)의 빛, 그것이 오늘날 내가 우리 영화에 되풀이하여 기대어 서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변함없이 그러나 '빛의 혁명'을 통과해 온 올해는 더욱더 특별히 여성을 발견하고 기록하려 애써주신 모든 분께 뜨거운 응원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정민아 심사위원(영화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심사평을 남겼다.
"영화산업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K컬처가 세계를 주도하는 중요한 문화상품이 되었지만 정작 영화는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와중에 영화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준비 주체의 어려움을 늘 마주한다. 그러나 올해 18번째를 맞이하면서 매년 출품 숫자가 늘어나는 여성인권영화제를 대하면, 그만큼 여성 영화인, 여성 서사, 여성 관객이 여성을 다루는 영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올해 여성인권영화제 출품작의 경향에는 작은 변화들이 눈에 띄었다.
우선, 여성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넘어 소수자들의 연대가 담긴 영화들이 많다. 남성 혹은 트랜스 아이덴티티를 가진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과의 공감을 통해 소수자 연대를 보여준다. 성평등을 향한 사회로 더 다가가기 위해 일상에서 겪는 불평등을 영화화하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두 번째로, 장르화 경향이다. 여성과 인권이라는 키워드를 무겁고 심각하고 비극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상상력과 표현력의 자유를 발휘하였으며 여기에 재미를 추구하는 정신으로 흥미진진하게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경향이 보였다. SF, 호러, 스릴러, 코미디, 뮤지컬, 다큐픽션 등 다양한 장르적 확장은 여성인권이라는 주제에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게 한다.
세 번째, 프로 제작자들의 작품들이 다수 포진했다. 적은 예산으로 작지만 강하고 단단하게 영화제를 이어온 만큼 학생 작품 중심의 단편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주를 이루었던 이전의 관행에서 서서히 벗어나서 이름이 알려진 영화인과 작품이 출품되었고, 장편의 비율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세련된 웰메이드 영화가 많아져서 아마추어, 신인 영화인의 기회가 박탈되지 않도록 만듦새보다는 메시지와 실험정신에 집중하며 심사를 진행했다.
넷째, 팬데믹 이후 강화된 경향으로 외국 출품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 남미, 유럽 등 출품 국가 수가 증대되면서 여성인권영화제가 국제적 브랜드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주제적으로는 성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여성의 생존 그 자체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경제위기에서 생존하기, 직업 선택과 사회적 성공 욕망, 사랑과 연애에서 주도권 가지기, 성적 자기결정권 문제, 극단주의로 인한 혐오에서 탈출하기, 역사를 발굴하여 억압된 자 조명하기 등 잘 만들어졌으며 동시에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새로운 영화들을 만나는 설렘이 가득했다.심사하면서 서사적 설득력 이전에 영화적 상징과 시청각적 새로움을 시도하는 영화, 관습을 깨뜨리고 도전하는 영화에 많은 점수를 주었다. 작지만 강한 여성인권영화제가 국내외 독립영화인들과 함께 행하는 실천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출품작 감독과 스태프들의 고군분투에 응원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기다리고 있는 열정적인 관객을 위해 힘을 내시기를 바란다. 국제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는 여성인권영화제에도 지지의 큰 박수를 보낸다."
다음은 홍재희 심사위원(영화감독) 의 심사평이다.
"2025년 여성인권영화제에 출품된 작품들을 해외와 국내 영화로 편의상 구분 짓겠다. 올해는 출품작 대개가 여성 그리고 인권이라는 주제에 충실히 부합하는 작품이 많았다. 예를 들어 아랍권 국가들의 민주화 투쟁 시기에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자국의 반인권적 사회 문화 안에서 성차별적 문화와 열악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저항이라던가 과거 근세-중세 시대로 돌아가 인권유린을 당했던 여성들의 현실과 같은,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문제를 다룬 영화, 다시 말해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은 언제나 식민지와 같은 착취의 대상이다'라는 명제에 충실한 작품들이었다.
한편 한국 영화, 국내 작품들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 이슈를 다룬 영화, 다양한 소재의 영화가 다수였다. 성차별과 성평등과 같은 여성, 젠더,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정통적인 방식으로 다루기보다는 학교폭력이라던가 퀴어, 또는 심리적 문제 -우울증, 공황장애 등- 로 좀 더 사적으로 내밀한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로 치환하거나 사회 문화적 또는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작품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국내작의 편수가 원체 많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영화적 소재가 다양해지고 감독들의 사회적 관심사의 반경이 넓어져서일 수도 있다. 영화의 기본 문법에 충실한 정공법을 선택한 극영화, 드라마가 있다면 다른 한편은 SF와 코미디를 섞는다던가 액션과 호러가 뒤섞인 장르 혼종 영화도 있었고 다큐멘터리와 실험 영화를 결합하여 감독의 의도를 전달하려는 시도도 많이 늘어났다. 이런 경향은 해마다 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보인다. 단,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여성주의적 이슈를 놓치지 않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신진 감독들의 시도를 높게 산다. 반면 장르적 재미와 실험에 경도되어 본질을 놓치고 길을 잃은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여성의 문제, 여성주의적 이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라면 이와 같은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일수록 더 날카롭고 냉철한 이성과 따스한 감성과 성찰적 시선이 즉 감독으로서의 깊이 있는 시선이 요구된다. 여성인권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는 감독들이라면 한 번 쯤 생각해봤음 좋겠다."
제18회 여성인권영화제는 오는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맥가박스 아트라인에서 열린다.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 본선진출작 32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가(家)해자 | 김혜진
개구리는 죽는다 | 김형철
겨우살이 | 황현지
꽃놀이 간다 | 이정현
나침반 위에 꽃 | 주영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 | 이현빈
맥북 프로 2019년형 팝니다 | 박성은
모두가 사랑할 시간 | 이도희
모범상 | 박호범
바질과 데이지 | 정수진
병신과 머저리 | 박서영
복행 | 051, 흥
봄매미 | 강민아
새벽의 빌리 | 송지호
선, 의 | 이다솜
수연의 선율 | 최종룡
수학여행 | 이윤석
시지프스의 공전주기 | 김채현
식탁의 무게 | 조영인
아무도 모르게 | 김나연
안녕하십네까? | 김태희
유림 | 송지서
파리에서 평양까지 | 헬렌 리
행복주택 | 김한나
事过方显 (After All) | 刘重燕 (Chongyan Liu)
Daughters of Putien | Wei Du
Devi | Subina SHRESTHA
FACES | 안효슬
I Think I'm Going to Die | Ning Xuan Tan
Mimo | Raúl Cerezo, Carlos Moriana
Revolución Extranjera | Daniel Gandra, Diana Gandra
Ruth | Sonia Martí Galle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