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을 지나 3월이어도 눈이 내리고 춥지만, 봄은 우리 곁으로 어김없이 오고 있다. 추위를 이겨낸 만물이 봄을 기다리며 소생하는 모습을 화가들의 시선으로 포착했다. 화가들의 손끝에서 봄, 피어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5는 3월 3일부터 단체전 《봄, 피어나다》를 개최한다. 참여작가는 김재은, 쿠리, 로셀 최, 마로니, 박서영, 이플, 최다솜, 하루, 한다빈, 해우.
로셀 최 작가는 〈바다 위의 동화〉를 선보였다.
“넓게 펼쳐진 바다가 보이는 곳에 나란히 놓인 벤치는 여유와 평온을 표현한다. 그 위 하늘은 현실과는 다른 특별한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핑크빛 집이 녹아내리듯 조각조각 흘려내려 꿈꾸는듯 흩어지는 기억 감정을 표현해 보았다.”(로셀 최 ‘작가 노트’)

하루 작가는 <봉선화>를 선보였다.
“뾰족한 연필의 선을 그을 때면 도망치고 싶었다.
선명해진 선을 보고 하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지 숙인 고개가 들어지지 않았고 한동안 연필과 물감이 아닌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려보았지만, 또다시 그리는 행동을 멈추었다.
연필을 잡으면 손이 땀에 젖어 축축해졌고 덜덜 떨려 잡았다가도 놓쳐버렸다. 그럼에도 무엇이라도 그리고 싶었던 건지, 연필이 아닌 검정 물감이 묻은 붓으로 줄기가 꺾인 꽃을 쥐고 있는 그림을 그렸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음이 꺾인 채 긴 터널을 지나왔다.
시간은 흘러갔고, 그룹 전시를 통해 제 안에 있던 숙여지고 꺾였던 것들을 내보이는 자리가 생겼고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릴 때 온전한 자신을 마주보고 쓰다듬어주었던 것 같다.
그림을 봐주었던 그들의 시선, 나를 두렵게 만든 선이 개성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을 받아 숙인 꽃은 천천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시 연필을 들고 선을 그려 그림을 그리고 있다.
끝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시작인 것처럼.
더 멀리 가기 위해 잠시 쉬며 머무르는 것처럼.”(하루 ‘작가 노트’)
쿠리 작가의 작업의 시작이자 중심은 눈과 패턴이다. 작가는 알록달록한 색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과 개성을 표현한다. 작가의 그림 속 색과 무늬는 모두가 고유한 존재임을 전하는 도구이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을 감추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 애쓰지만, 저는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길 응원한다. 그래서 제 작업은 살짝 엉뚱하고 짓궂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던진다. 솔직한 색과 패턴,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이렇게 말한다. ‘왜 숨겨? 그냥 너 자신이어도 충분히 멋지잖아!’
제 작품이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할 작은 용기를 전하고, 그 과정이 즐겁고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지길 바란다.(쿠리 ‘작가 노트’)

이플 작가는 주변에 존재하지만, 평소 잘 인식되지 못하는 존재인 풀 군집에 관심을 가지고 회화 작업을 한다. 반려견과의 산책이 주변에 존재하는 작은 무언가에 관심을 갖는 큰 계기가 되었다. 후각에 따라 움직이는 반려견을 따라 시선이 낮은 곳에 머무르다 보니, 너무 작아서 그곳에 있는지도 몰랐던 잔디 씨앗, 들꽃 그 속에 쉬고 있는 개미떼, 작은 새 등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작업에서 풀 군집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잘 인식하지 못하는 생명을 대변한다. 나는 풀의 투명한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흰 물감을 쓰지 않고 기름을 많이 쓰며 수채화 기법을 사용한다. 밝은 부분에서 어두운 부분으로 가며 작아지는 붓 터치는 풀 사이사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풀은 화려하지 않은 초록의 중성색을 띠고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덜 중요하고 사소하게 보인다.
우리 주변에도 늘 곁에 있어서, 흔해서, 또는 외적으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 가치와 각자의 소중함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플 ‘작가 노트’)

한다빈 작가의 작품은 외로움과 불안, 그로 인한 무기력함을 표현한다.
“마음속 깊이 외로움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특별한 순간이나 누군가와 있을 때조차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어렵다. 그저 불안과 걱정 속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내거나, 감정을 속으로 품고 살아간다. 저는 이들을 정적인 풍경 속에 담아내어, 그들의 고립된 내면을 제3자의 시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히 따뜻하게 감싸안는 위로가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한다빈 ‘작가 노트’)
한다빈 작가는 작품 <외로움이 준 낭만>을 통해 고독과 불안 속에서도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어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다솜 작가는 그만의 이상적인 세계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한다. 그에게 이상세계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가 없는 완전한 세계를 의미한다.
“나에게 이상 공간은 현실의 압박과 감정의 파도에서 벗어나 우리의 마음이 휴식을 취하고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탈출구이자 안식처다. 이곳에서는 현실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는 가장 깊은 욕망과 희망, 두려움과 좌절까지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늘 이상향을 꿈꾸며 그림을 그린다.
관람자들이 현실을 벗어나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통해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경험하길 바란다. 또한 그 이상 속에서 얻는 위로와 감동을 통해, 작품이 일상의 휴식과 치유가 되기를 소망한다. 각자의 달콤한 꿈을 꾸며, 이 전시를 통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작은 영감을 얻어가길 바란다.”(최다솜 ‘작가 노트’)

해우 작가는 사소하고 흔한 것의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을 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풍경과 마주하지만, 그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인 것들이 많다. 이들은 그저 일상의 한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그 자체로 특별하고 의미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제 작업은 이런 사소하고 흔한 것에 숨어있는 감정과 이야기를 찾아내는 과정이고 그들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제 작업의 핵심이다. 작은 것들이 주는 큰 가치를 재발견하는 순간이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해우 ‘작가 노트’)


단체전 《봄, 피어나다》는 갤러리5에서 3월 12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