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형지 작가는 9월 23일 아르띠앙 서울 갤러리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Light Pillar: Color for Light》에서 도자 작업에서 드러나는 예민한 혼합과 시유, 소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성, 즉 ‘가마의 분위기’와 함께 현상 너머의 세계를 제시한다. 물리적 형태의 불분명함 속에서 작가가 형상화한 도자기들은 생명과 존재의 경계를 재구성한다. 탄생 직전의 유기적 생명체와 같은 형상들은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다. 우리의 ‘대상 인식’ 개념을 탈피한 채 정지된 시간의 경계에서 탄생을 기다리는 이들은 미완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고형지 작가의 이번 전시는 도자 작품이 갖는 형태적 차원의 사유와 더불어 유약을 통한 색채의 층위 역시 중요시된다.

작가의 작업 특징은 반복되는 시유과정에 있다. 1차 시유에서 유약이 기물의 표면에 고르게 바르고 2차, 3차 시유과정을 통해 유약에 첨가된 산화물과 원료에 차이를 주어 붓고 뿌리기를 반복한다. 갈라지고 떨어져 나온 시유의 흔적 역시 고스란히 남겨진다. 이러한 시유과정을 거쳐 다양한 유약의 두께와 촉감을 바탕으로 색이 만들어진다. 온도변화에 민감한 도자기의 특성상 두껍게 시유된 기물은 48시간 이상 천천히 냉각한다. 가마소성 후 자연 냉각되는 과정에서 표면의 변화가 관찰되는데 유약 두께의 차이나 시유방법 또는 환경 요건이 변화함에 따라 유약이 탈락되거나 갈라지는 현상이 발생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작가에게 새로운 장식의 효과로 탈바꿈한다. 도자기에서 유약의 예술적 가치는 다채로운 색을 투명한 깊이감으로 표현함에 있다.
투명한 유약의 깊이와 정지된 유동성은 빛과 함께 일렁이는 윤슬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표면 위에 드러난 색채의 흐름은 시각적 경험 그 이상으로, 빛이 물질에 닿고 다시 반사되어 돌아오는 과정에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암시한다.
아르띠앙 서울 김유진 큐레이터는 “우리는 물을 보고 푸른색이라 인지하지만 실상 물은 무색에 가깝다. 모든 색을 흡수하고 푸른빛을 반사한 결과로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일부 정보만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그 대상의 '진짜' 모습이라 착각한다. 보는 것은 대상의 일부일 뿐, 온전한 실체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 색과 형태, 그리고 반사된 빛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기반해 세상을 해석할 뿐이다. 우리의 인식은 제한적이며 그것이 현실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 본질을 놓칠 수 있다”라면서 “작가가 구현하는 도자 예술은 물성과 비물성, 현실과 비현실, 생성과 소멸의 경계를 탐구하며 공예의 차원보다 한국의 단색화 철학을 언어로 사용한다. 더불어, 도자기라는 매체가 가진 ‘공유 영역’에 대한 우연성을 유지하며 작업의 수행적인 태도를 포함한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단색화가 시각적 단순함 너머 화면 뒤 깊은 사유 공간을 열듯, 고형지 작가의 도자기 역시 고정된 물리적 형태의 인식을 넘어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라고 했다.

전시장에서는 전시 제목의 일부인 ‘빛 기둥(Light Pillar)’의 수직 현상과 사뭇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명명(命名)되기 전 형태와 빛에 의해 반사되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전시장 내 도자기들은 경계를 탐험하는 예술적 결과다. 다시, 새롭게 태어나려는 사유의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고형지 작가 개인전 《Light Pillar: Color for Light》는 9월 30일까지 아르띠앙 서울(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9-38 1층)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