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속 의협심 넘치는 영웅, 유비 현덕은 가난해서 짚신을 삼고 돗자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홀어머니를 봉양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나라 중상정왕의 후예, 한나라 황실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각성하며 영웅으로 거듭났다고 하죠.

백범 김구 선생. 사진 백범김구기념관 누리집 갈무리.
백범 김구 선생. 사진 백범김구기념관 누리집 갈무리.

꼭 훌륭한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효종 때 난을 일으킨 김자점이 반역죄로 처벌되면서 황해도 해주로 도망쳐 자리 잡고 양반이 아닌 상민의 삶을 사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적 문제아였고 싸움꾼이었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아버지 김순영과 강인하고 올바른 성품의 어머니 곽낙원의 가르침, 그리고 친지들의 사랑 속에 자라 평생 조국독립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한결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나라 위기에 일어나는 의병들, 독립운동가와 광복군 중에는 “나라가 널 위해 무엇을 해준 게 있느냐?”고 물어도 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신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마고 창세신화 속 인류의 조상은 본래 신성의 씨앗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고, 모든 과정에서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에 책임을 지는 이들입니다. 물론 ‘오미의 화’ 이후 식탐 등 육체적 욕망과 어리석음, 게으름 등 동물과도 같은 성질, 수성(獸性)도 가지게 되었죠.

마고 창세신화. 지구어머니 마고와 두 딸 궁희, 소희. 사진 선도문화진흥회.
마고 창세신화. 지구어머니 마고와 두 딸 궁희, 소희. 사진 선도문화진흥회.

인간은 신성의 씨앗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수성을 가지고 있기도 한 존재란 것이죠. 한국 선도에서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뇌에 이미 내려와 있는 하늘, 즉 신성의 씨앗을 깨우기 위한 삶을 이야기합니다.

한민족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단순한 건국이념이나 높은 철학적 가치만이 아닙니다. 신 또는 동물의 속성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  “세상을 널리 이롭게 사는” 삶을 선택하여 완성에 이르는 ‘인간완성’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선도에서는 ‘성통공완(性通功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성과 통하여 깨닫고 나서는 세상과 인류를 위한 큰 공덕을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대종교 신자들이 엄혹한 시대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은 물론 온 삶을 바쳐 조국독립에 매진한 것은 그들에게 독립운동이 바로 공완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충남 천안 국학원 한민족역사문화공원 내 무명독립군 용사비. 사진 국학원.
충남 천안 국학원 한민족역사문화공원 내 무명독립군 용사비. 사진 국학원.

앞서 이야기했듯 한국선도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은 마고성 사람들입니다. 신으로 살던 그들의 유전자를 가진 인류가 잃어버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신성을 회복하는 것을 ‘복본’ 즉,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도덕의 차원이 아니죠. 스스로 신인(神人)이라 규정한 밝고 환한 의식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선택입니다.

인간에게는 수면욕과 식욕, 색욕 등 본능에 해당하는 욕망과 권력욕, 인정의 욕구, 안정의 욕구 등 사회적 욕구가 당연하게 있습니다. 또, 지나치게 도덕적인 것만을 강요하면 언젠가 더욱 어두운 모습으로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 욕구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본능과 이해타산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뛰어넘는 선택을 할 때 그 사람을 존경하고 거룩하게 여기죠. 또, 그런 일을 수많은 사람이 해냈을 때는 믿을 수 없이 멋진 역사가 되고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 IMF 외환위기에 금 모으기 운동, 태안 앞바다 원유유출 사고에 기꺼이 나서 기름때를 닦아 바다를 살려낸 자원봉사 행렬 등등 한국인의 정서에는 계급 질서나 이해득실이 아닌 뜻밖의 선택을 하는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는 1929년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동아일보에 보낸 바 있습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되리라"

그런데 마고 창세신화에서는 그것이 한민족만 가지고 있던 게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의 천자나 일본의 천황, 천황이 다스리는 백성으로서의 천손처럼 특정 민족, 특정 계층에 한정하거나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인류가 천손의 기질, 신성의 씨앗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나 자신을 천손으로, 신성한 가치를 선택하고 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한다면 어떨까요? 세상의 질서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되어 세상을 운용하는 패러다임으로 바뀐다면 어떨까요? 우리 미래세대를 가르치는 교육이 도덕을 가르치고,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신인으로서 자신을 가치있게 만드는 일이라면 멋질 것 같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제시한 신이 된 인류 《호모데우스》. 사진 교보문고 누리집.
유발 하라리가 제시한 신이 된 인류 《호모데우스》. 사진 교보문고 누리집.

참, 한편에서 신이 된 인간에 대한 이슈가 주목받았죠. 《사피엔스》로 전 세계에 명망을 떨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신이 된 인류)》를 통해 유전공학과 AI기술로 창조주와 같은 힘을 손에 넣은 현생인류가 불멸, 행복, 영성을 소유한 초인간, 즉 신으로 사는 미래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패러다임대로라면 특별한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이 존재가치를 잃고, 무용자 계급으로 전락하는 새로운 계급사회가 될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도록 수명을 연장하고 뛰어난 두뇌 능력으로 부와 권력을 독점한 존재가 신일까? 이러한 미래가 과연 어떠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 세계는 체감할 수밖에 없는 기후위기 앞에 자국중심적인 국가이기주의와 식량 무기화,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으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죠. 벼랑 끝에 선 듯합니다.

공멸로 갈 수밖에 없는 패러다임에서 공생으로 가는 패러다임으로 전환, 과연 우리 인류는 신으로 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