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지음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입체 표지.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철호 지음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입체 표지.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가 최근 펴낸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자학에서 본 선악의 실체성》(김철호 저)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 가치 개념인 선과 악을 주자학 관점에서 고찰한다.

성리학의 도덕론과 선악론을 연구해온 저자 김철호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는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은 왜 선보다 강한가, 악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와 같은 실존적 질문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선악 문제에 주자학이 제시할 수 있는 해법과 유효성에 대한 논증을 펼친다. 중국 남송(송나라 후기)의 유학자 주희(朱熹, 1130~1200)를 중심으로 유학에서의 선악을 살펴보지만, 공자부터 맹자, 순자, 한당유학, 북송유학을 거쳐 주희에 이르는 선악 개념의 변화와 특징을 탐구하여 선악론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주희에 주목하였을까? 저자는 주희의 저작에 선악에 대한 언설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그의 글 곳곳에서 선과 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이기(理氣)·음양·성(性)·태극·인의예지 같은 유학의 핵심 개념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주희의 선악론은 기존의 거의 모든 선악론의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것은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이고, 성선설이면서 성악설이기도 하다. 플라톤·아우구스티누스적인 초월적 요소를 지니면서 동양사상 고유의 내재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맹자의 성선설을 계승하면서 순자의 성악설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주희에게서 동아시아의 어떤 학자보다도 풍부한 선악 담론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왜 주희는 선악에 관해 언설을 많이 남겼을까? 주희가 살았던 12세기 남송은 이전 어느 시기보다 생산력이 증대되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권세를 가진 자들의 탐욕과 착취로 인해 백성들이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하기 어려웠던 시대다.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황제와 고급 관료부터 하급 관원에 이르기까지 권세를 가진 자들은 거리낌 없이 탐욕을 드러냈으며, 일반 백성들은 기아와 착취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치거나 반란을 일으킬 기회만 엿보고 있었으니 선을 말하는 것이 사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선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럴수록 주희는 선을 열망했다.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자학에서 본 선악의 실체성》는 “주희의 이기, 심성, 거경궁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선과 악으로 보고, 이를 중심으로 주희 선악론의 골격을 이루는 두 기둥(본연지성과 기질)을 찾아내 이들이 이원론적 일원론의 통합적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그려냈다.”

나아가 이 책은 “선과 악의 내용만이 아니라, 선과 악을 정의하는 방향에 특히 주목하였다. 인간이 선악의 판단을 내리는 한, 선과 악 중 어느 하나를 먼저 생각하고 이를 기준으로 나머지 항을 정의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제목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주희에게서 발견되는 그러한 정의 방향을 표현한 것이다.

2017년 9월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당시 청소년보호범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으로 청와대 게시판이 마비되었다. 이 사건을 비롯한 청소년들의 폭행사건들에 대한 댓글들은 가해자의 본성은 악하고, 교화가 아니라 강력한 처벌과 격리만이 해결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가해자를 ‘악마’로 기술한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를 악마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김철호 지음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표지.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철호 지음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표지.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악은 선으로부터 정의한다’는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부터 정의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선이 놓여 있다는 가정 위에 서게 된다. 이것은 악을 선의 품 안에 품는 것이다. 악을 선의 영역 안에 둔다면 선의 완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때라야 비로소 악의 형이상학적 무게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비단 형이상학적 호기심에서 나온 피상적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악마화는 줄어들게 될 것이고, 누구나 언제든 교화 가능한 존재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악인도 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마화는 감정의 배설구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사회를 개선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악으로부터 선을 정의하는 손쉬운 가치판단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다.”

주희의 입장은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되며 인간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악을 인간의 책임 안에 두겠다는 ‘악의 윤리화’로 향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선한 사람이 될 것인지 악한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주체는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주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경(敬)이나 격물(格物)을 통해 우리 내면의 악을 알아차리고 선을 깨닫는 과정을 게을리하지 않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주희 철학의 현대적 의미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노력을 해야 한다. 

“악은 평범하다. 기질지성을 지닌 인간이기에 언제든지 악에 물들 수 있고, 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매번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모든 과정에서 충실성 또는 계속함(성誠)의 윤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