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옮김, 신채호 '조선상고사'  표지. 이미지 시공사
김종성 옮김, 신채호 '조선상고사' 표지. 이미지 시공사

시공사가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김종성 옮김, 2023)를 새롭게 출간했다. 역사학자 김종성(옮긴이)은 저자 의도로 사실관계가 달라진 우리의 ‘불완전한 역사’를 바로잡으려 신채호가 옥중에서 서술한 《조선상고사》 원문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게 다듬었다.

신채호는 ‘김부식 시대’이후 1천 년간 억압받은 한국 상고사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이를 역자 김종성은 “1천 년을 기다린 외침”이라고 했다.

신채호의 외침 속에는 1천 년간 사라졌던 역사의 비밀이 있다. 사대파 유학자들이 헤게모니를 지킬 목적으로 은폐한 역사의 진실, 그리고 친일파 역사학자들이 일제 부역할 목적으로 은폐한 역사의 진실이 그의 역사 연구를 통해 거의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신채호는 고려·조선 시대 사대파 역사가들과 일제강점기 친일파 역사가들이 숨기고 감춘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세상에 다시 드러낸 역사가이다.

《조선상고사》는 독립운동으로 10년 실형을 받고 뤼순감옥에서 투옥 중인 신채호가 1931년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으로, 신채호가 순국한 지 12년이 지난 1948년에 출간됐다. 신채호는 “차디찬 감방에서 한국 상고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영혼과 육체를 다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상고사》 원문은 지금의 우리말과 큰 차이가 있어 내용을 이해하며 읽는 것이 쉽지 않다. 그의 글이 우리 시대의 언어 감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시대 상황 때문에 한자나 한문의 사용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또한 신채호의 기억력에 의지한 부분이 많아 연도나 명칭 등에 오류가 다소 있다. 감옥에서 이용할 수 있는 사료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역자는 《조선상고사》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고,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원문에 없는 해설과 주석을 별도로 추가함으로써 독자들이 더 쉽고 정확하게 신채호의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역자 김종성은 “신채호가 감옥이 아닌 서재에서 《조선상고사》를 집필했다면 나올 수 있었을 진정한 의미의 《조선상고사》를 재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역자는 신채호의 문장과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면서, 독자들이 좀더 쉬운 문장과 좀더 정확한 사료로 신채호의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중간중간에 ‘해설’을 두어 신채호의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되도록 했다. 필요한 설명을 본문 곳곳에 두어 독자가 편하게 읽도록 했다.

김종성 옮김, 신채호 '조선상고사' 입체 표지. 이미지 시공사
김종성 옮김, 신채호 '조선상고사' 입체 표지. 이미지 시공사

 

《조선상고사》는 단군시대부터 백제부흥운동까지를 다루고 △제1편 총론 △제2편 수두시대 △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 △제4편 열국쟁웅시대(중국과의 격전시대) △제5편(一) 고구려의 전성시대 △제5편(二) 고구려 중쇠와 북부여의 멸망 △제6편 고구려·백제 충돌 △제7편 남방 제국의 대(對)고구려 공수동맹 △제8편 삼국 혈전의 개시 △제9편 고구려의 대(對)수나라 전쟁 △제10편 고구려의 대(對)당나라 전쟁 △제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등 모두 11편으로 이뤄져 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 에서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설립했다. 훼손된 단군의 시대를 재조명함으로써 고조선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했으며, 동부여와 북부여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두 나라를 우리 민족의 근원으로 포함하였다.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다는 주장에는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닌 요동반도에서 찾아야 한다”고 일축했다.

신채호는 “역사는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상고사는 “작자의 의도에 따라 많은 사실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라 규정한다. 특히 묘청이 유교도 김부식에 패배한 이후 이 땅에는 유교도가 득세하게 됐으며, 그 영향으로 중국을 높이고 스스로 낮춰 역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됐다고 단언한다. 이는 신채호가 ‘유교도 김부식’과 그가 서술한 《삼국사기》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또한 “내란의 빈발과 외적의 출몰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렸다”는 안정복의 의견에 대해 “내란이나 외환보다는 조선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고 밝힌 까닭이기도 하다.

 신채호는 그 당시 “현존하는 서적들을 갖고 장단점을 파악하고 대조”해 천 년 이상의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축소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를 통해 《삼국사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단군의 시대를 많은 부분 할애해 서술하고, ‘대중국 투쟁’의 선봉에 선 고구려의 역사를 중요하게 기록한 것 등은 “작자의 의도로 사실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한 그의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또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통해 “기대와 달리 승자가 아니라 패자가 되는 사람들이 항상 생겨나는” 까닭을 역사로 살펴봄으로써 ‘지금’을 경계하고 ‘훗날’을 준비하고자 했다. 신채호에게 한국사 연구는 독립투쟁의 또 하나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신채호의 역사 인식과 시대 인식이 담긴 《조선상고사》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기록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채호의 외침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을까? 역자 김종성은 “우리 시대는 이제껏 그의 말문을 막아왔다”고 한탄한다. 신채호는 이미 죽고 없는데도, 우리 시대는 죽은 신채호의 입을 계속 꽁꽁 틀어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신채호를 폄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독립운동이라는 현실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사림의 역사 연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바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하는 말이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의 역사 연구라서 믿을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수 있는 나라. 이 나라는 과연 진정으로 독립된 나라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프롤로그 1천 년을 참은 신채호의 외침).

신채호를 폄하하는 목소리에 분노하는 진정한 한국인이라면 이제 새로 나온 《조선상고사》를 통해 ‘1천 년을 기다린 외침’을 생생하게 들어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