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구 '편집자의시간' 표지. 이미지 정유철 기자
김이구 '편집자의시간' 표지. 이미지 정유철 기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는 어떠한 존재일까? '평생 편집자'로 살았던 김이구 계간 《창비어린이》 편집위원은 "편집자는 근본적으로 그 존재 자체가 모순"이라고 소개한다.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하고 하고 있는 존재이니 편집자라는 존재 자체가 모순이라 생각된다"는 것이다.

김이구의 《편집자의 시간》(나의시간, 2023)은 존재 자체가 편집자의 세계로 우리는 안내하는 책이다. 이 책은 크게 ‘편집자라는 존재’ ‘편집의 시간’ ‘편집자의 눈’ ‘우리말 클리닉’ 네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편집자라는 존재’에서는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편집자가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편집자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대학을 나왔어도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없는데, 편집자는 자기 전공 분야도 아닌 분야의 전문가의 글을 다뤄야 한다." 저자가 "편집자는 모순된 자리에 있다"고 한 이유이다. 또한 편집자는 '보이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다. 편집자는 일선에서 최초로 원고를 접한다. 그런 편집자가 '이건 아니다' 할 경우 그 원고는 선택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편집자가 선택하면 작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저자는 편집자의 눈으로 소설가 공선옥을 ‘발견’한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의 시간》의 ‘편집의 시간’에는 전자출판에 따른 편집 작업의 변화를 비롯하여 일반 독자라면 책값이 궁금할 때나 보는 ‘판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판권’을 다룬 글은 판권을 통해 본 간략한 출판문화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판권의 변천을 살폈다. 그뿐만 아니라 ‘편집의 시간’에서는 창비 고전 시리즈 ‘재미있다! 우리 고전’(창비, 2003~2008)의 기획과 출판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그 과정을 보면 (1)고전문학 연구자 의견 청취 (2)외부 기획자와의 결합 (3)집필자 선정 (4)집필 방향과 집필 과정 (5)일러스트레이션 (6)원고수정 (7)모니터링: 언어 수준 검토 (8)텍스트 생산 과정을 밝힌 해설로 이어진다. ‘재미있다! 우리 고전’은 이렇게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여 발간한 책들이다.

6년간 출판사에서 교과서 개발 업무를 맡아본 저자에 따르면 교과서 속 수필, "좋은 수필이니까 교과서에 싣자" 이렇게 해서 실리게 된 게 전혀 아니다. ‘편집자의 눈’에서는 ‘교과서 속 수필, 어떻게 선택되는지’ 이야기한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중심으로 교과서에 어떤 수필이 어떻게 해서 실리게 되는지, 거의 접할 수 없는 경험자의 이야기이다.

김이구 "편집자의 시간" 표지. 이미지 정유철 기자
김이구 "편집자의 시간" 표지. 이미지 정유철 기자

또한 저자는 밝은 편집자의 눈으로 ‘교과서 대화 편집방식’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교과서에서는 오래전부터 대화문은 한 자씩 들여넣어 지문(地文)과 구별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는 대화문이 모두 별행으로 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교과서에서는 대화문을 모두 별행으로 처리한다. 문제는 이런 교과서의 대화 편집방식을 지키기 위해 교과서에 수록된 글에 불필요한 손질이 가해졌다는 점이다. 그 예로 저자는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들고 있다. 원문에는 인용부호로 묶인 대화와 독백이 한 군데도 별행으로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교과서에는 모두 별행이다. 이 대목을 읽고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각각 펴낸 외국 소설 한 편을 비교해 보았다. 한 권은 교과서처럼 대화문을 별행, 들여쓰기를 하였고, 다른 한 권은 원문 그대로 따르고 별행, 들여쓰기를 하였다. 이렇게 하니 같은 소설이 다른 소설처럼 느껴졌다.

"대화를 모두 별행으로 분리해낸다면 글의 호흡이 달라지고, 대화문이 어떤 등장인물의 말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난다. 저작자의 입장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텍스트의 변조다. 아니,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변조된 텍스트를 읽고 싶지 않다."

"이치에 맞지 않고 글의 원형을 손상할 위험이 있는 교과서의 대화 편집방식을 하루빨리 점검하여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2003년에 쓴 글인데, 현재 교과서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우리말 클리닉’에서는 틀리기 쉬운 우리말 표기, 표현을 다룬다. ‘없음’, ‘없슴’ 어느 것으로 써야 할까, ‘심심한 감사’에서 ‘심심한’은 싱겁다는 뜻일까? 2022년에도 ‘심심한 사과’를 오해하여 항의한 댓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심심한 사과’가 격식을 차린 말이지만 흔한 표현이 아니고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저자는 ‘유일한 자신의 말을 찾아내야 한다’고 권한다.

《편집자의 시간》을 읽고 이 책의 ‘서문’을 쓴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의 의견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 현장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각된 편집의 사명에 대한 깊은 통찰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는 이 책은 마이스터의 지경을 넘본다." "이 책은 단연코, 신문ㆍ잡지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문필을 농弄하는 우리 지식인들에게 옷깃을 바루게 할 것이다." "필자와 독자의 어간에서 관건적 균형점을 찾는 훌륭한 편집자가 훌륭한 문학을 낳고 훌륭한 학문을 추동한다는 편집자 본연의 명예를 이 책만큼 환기하는 바는 없을 터."

김이구 저자는 2017년 타계하였다. 그가 평소에 쓴 글을 모아 저자와 인연있는 부수영 도서출판 나의시간 대표가 책으로 펴냈다. 덕분에 저자는 책으로 우리 곁에 여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