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던 당시 사회에서는 절대적으로 사상통합이 필요했기에 원광법사(541 – 630)는 전통사상과 불교사상의 통합의 결과로 세속오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인 공존을 위한 형식적인 통합에 그쳤고 원효대사(617-686)에 이르러 현실적인 타협을 넘어선 사상적인 화해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원효대사의 사상을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고 부릅니다.

원효대사의 화쟁(和諍)은 화(和)와 쟁(諍)을 정(正)과 반(反)에 두고 그 사이에서 타협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합(合)이 아니라, 정과 반이 대립할 때 오히려 정과 반이 가지고 있는 근원을 꿰뚫어 보아 이 둘이 불이(不二)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쟁(諍)도 화(和)로 동화시켜 나갑니다.

원효대사의 화쟁(和諍)은 천차만별의 현상적인 쟁의 상태도 그 근원에서 보면 하나로 화하는 상태에 있을 뿐이라는 일심사상(一心思想)을 중심으로, 불교교리에서뿐만 아니라 대중에 대한 실천적 행보를 통하여 화해와 화합, 통합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은 당시 신라 사회에 있었던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 유교사상, 도교사상에 대해서도 통합의 가능성을 모색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화쟁의 화(和)는 불교나 유교의 용어라기보다는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 용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예컨대 신라의 정치제도에서 화백(和伯)제도는 단군조선 문화에서 내려왔고 여기에 사용된 화(和)자와 화쟁의 화(和)가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인 천부경(天符經)의 “일시무시 일종무종일(一始無始 一終無終一 : 하나는 시작하지만 시작함이 없고 하나는 마치지만 마침이 없다. 우주 만물의 본질이 바로 그 하나이다)”과 원효대사의 일심사상(一心思想)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이나 원효대사의 사상에서 사용된 ‘화(和)’라는 글자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첫째는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고 둘째는 이치에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치에 따라 하나가 되는 게 신라의 화백제도나 원효대사의 화쟁에서 사용된 ‘화(和)’입니다. ‘화(和)’는 우리말 ‘아우르다’는 말의 한문 훈차어(訓借語)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은 신라 사회가 통일 이후 나아갈 진로를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입된 외래사상과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 사이의 단단한 벽을 허물고 새로운 하나의 정신세계를 만들어가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원효대사의 사상이 원융무애(圓融無碍: 두루 어울려 거리낌이 없음)라고 설명되는 것도 사실 그런 의미입니다. 다만, 원효대사는 불교를 중심으로 그 같은 사상통합 작업의 가능성을 모색했을 뿐이었습니다.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후고구려, 후백제로 분열되고 군웅할거의 시대가 열려서 사회가 혼란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기 위해 사상의 통합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최치원 선생(857-900)은 유교, 불교, 도교사상을 섭렵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상 모색을 한 결과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이 유교, 불교, 도교사상을 아우르고 있는 더욱 포괄적인 사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이런 선언이 바로 ‘난랑비서(鸞郎碑序)’에 실린 표현입니다.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것을 일러 풍류(風流)라고 한다.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곧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뭇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다.”

최치원 선생에게는 우리 겨레 전통사상의 뿌리인 천부경(天符經)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이맥(李陌 1455~1528)이 편찬한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의하면 천부경은 구전(口傳)되어 전해지다가 녹도문으로 기록되어 전해지던 것을 최치원 선생이 한문으로 번역하여 첩(帖:문서)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최치원 선생이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을 사상통합의 구심점으로 제시했지만 그가 통합을 위해 제시한 구체적인 이론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유교, 불교, 도교사상이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실천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즉 실천적 의례를 강조한 것은 유교사상이고 마음공부를 강조한 것은 불교사상이며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 것은 도가사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은 대의에서나 방법론에서 유교, 불교, 도교를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려 말 권문세족(權門勢族)이 수탈과 겸병(兼竝:국역을 수행하는 대가로 전지를 지급받은 사람이 이를 국가에 반납하지 않은 채 다른 명목의 전지를 함께 차지하는 행위)을 통해 토지를 불법적으로 획득해나갔습니다. 종국에는 이들이 소유한 토지의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해서 그 경계가 논과 밭이 아닌 산과 강으로 구분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로인해 고려왕조의 곳간이 비게 되고 국가 재정이 부실해졌습니다. 고려 말 당시 백성들은 송곳조차 꽂을 곳 없는 작은 땅에서 거둔 곡식으로는 토지에 대한 세금을 채우기에 급급했고, 중앙정부는 재정이 바닥나 새로운 관리조차 임명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고려사회는 1%의 귀족과 99%의 소작농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멸망 직전의 사회구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국교인 불교도 타락을 하여 사찰은 더욱 성대해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변화하였습니다. 사찰은 수행의 도량이기보다는 백성들을 착취하고 나라의 세금을 포탈하는 집단으로 변형되기 시작해 백성들의 원성 또한 높아져 갔습니다. 죄와 복을 미끼로 백성들을 순종하게 하고 사찰에 많은 것을 갖다 바치게 하는 등 사찰은 하나의 권력으로서 그 영향력이 막대하고 횡포 또한 심한 실정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려가 망해가면서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새로운 사상이 요구되는 시기에 중국에서 주자학이 들어오게 됩니다. 목은 이색(1328-1396)은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과 주자학을 융합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색 선생이 단군조선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다는 ‘천부경’을 공부한 정황이 있습니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세상에 전하는 바 목은 이색, 범세동은 모두 천부경을 주해하였다.(世傳牧隱李穡 伏崖范世東 皆有天符經註解云)”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색 선생의 저술을 모은 《목은집》 가운데 ‘백악산에 호종하여 짓다’ 라는 시(詩)가 있습니다. 이 시(詩)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비밀스러운 책 처음 나왔을 땐 귀신도 놀랐겠지(秘書初出鬼神驚)/세인들 모두가 의심하는데 누가 분명히 밝힐까(擧世皆疑誰辨明)/‘독단’, ‘천부경’ 내용과도 부합하니(獨斷與天符契合)”

신라 최치원 사상 연구의 권위자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논문 <목은 이색의 역사의식과 민족사상>에서 “간단한 언급이지만 이 시구에서 이색이 천부경을 공부했다는 것과 당대 천부경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색 선생의 철학적 기반을 보면 천인무간(天人無間) 사상이 확고하게 깔려 있기에 이색 선생은 천부경에 바탕을 둔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 위에 주자학을 쌓았다고 보입니다. 중국 주자학의 핵심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입니다. 천인합일이란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이미 하늘과 사람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이 분리되어 나타나는 문제를 하늘과 하나가 되어서 해소하려는 사상이 천인합일 사상입니다. 하늘과 사람의 분리가 전제되어 있으면 아무리 결합하여 하나가 되려고 해도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색 선생의 사상적 핵심은 ‘천인무간(天人無間)’ 사상으로 하늘과 사람이 사이가 없이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하늘과 사람이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인 천부경(天符經)의 일시무시 일종무종일 사상으로부터 줄곧 이어져 왔습니다. 원효대사의 일심 사상과 수운 최제우 선생의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사상도 천인무간 사상과 같은 내용입니다.

한민족 고유의 첫 번째 경전 천부경에는 ‘일시무시 일종무종일(一始無始 一終無終一)’ 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하나는 시작하지만 시작함이 없고 하나는 마치지만 마침이 없다. 우주 만물의 본질이 바로 그 하나이다.’ 이처럼 천부경은 ‘하나 사상’입니다. 그리고 한민족 고유의 두 번째 경전 삼일신고(三一神誥) '신훈(神訓)'에는 ‘성기원도(聲氣願禱) 하면 절친견(絶親見)이니 자성구자(自性求子)하라. 강재이뇌(降在爾腦)시니라.’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언어나 생각을 통해서 하느님을 찾는다고 해서 그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진실한 마음을 통해 하느님을 찾으라. 너의 뇌 속에 이미 내려와 계시니느라. 이것은 천인일체사상(天人一體思想)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겨레 고유의 철학사상은 천부경과 삼일신고에서 보듯이 ‘하나사상’, ‘천인일체사상’과 하나사상, 천인일체사상에서 파생된 천자사상, 천손사상, 하늘사상 입니다. 우리 겨레 고유의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보면 이색 선생의 천인무간사상과 원효대사의 일심사상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색 선생은 우리 겨레 고유의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주자학을 해석하려는 노력을 했으며 원효대사는 우리 겨레 고유의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불교를 해석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천인일체이므로 사람의 마음은 하늘마음에서 나옵니다. 하늘마음은 하나이므로 사람의 마음도 한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래 마음은 한마음입니다. 한마음은 하늘처럼 변함이 없고, 편안하고, 고요하고, 맑고, 밝은 마음입니다. 그러다가 욕심이 생기면 하늘에 구름이 생기는 것처럼 한마음도 욕심으로 가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구름이 변하는 모습과 같이 마음도 변화무쌍하게 변하고 구름이 탁한 것처럼 마음도 탁해지고 구름이 어두운 것처럼 마음도 어두워지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본래의 한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복본(複本)이라 했습니다.

사회가 혼란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던 시기에 원효대사, 최치원 선생, 이색 선생과 같은 분들이 우리 겨레 고유의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본래의 한마음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국학, 뇌교육, 지구인 운동, 공생 운동 등으로 많은 분이 본래의 한마음을 회복하는 활동을 하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복본(複本)의 희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