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性理學)이 안향(安珦: 1243~1306)에 의해 도입된 이후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과 성리학을 융합하는 일을 시작한 것은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이색의 천인무간(天人無間: 하늘과 사람이 사이가 없이 하나) 사상은 우리 민족 고유의 ‘하나 사상’이 성리학을 빌어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색은 단군조선으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 바탕 위에 성리학이라는 건물을 세웠고 이 이색의 사상을 가장 잘 계승한 제자가 양촌 권근(權近: 1352~1409)입니다.

『단군세기檀君世紀』를 지은 행촌 이암(李嵒: 1297~1364)의 제자가 이색이고 이색의 제자가 권근입니다. 그리고 권근의 부인이 이암의 손녀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있어 권근은 자연스럽게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권근의 『입학도설』에 있는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를 보면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과 성리학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권근의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 이미지 국립중앙도서관
권근의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 이미지 국립중앙도서관

「천인심성합일지도」의 모양이 전체 그림은 머리, 가슴, 다리 부분으로 나누어 사람의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사람의 머리 부분에 하늘이 들어와 있습니다. 한민족 고유의 주체적·전통적 사상인 『삼일신고』 제2장 신훈(神訓)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성기원도(聲氣願禱)하면 절친견(絶親見)이니 자성구자(自性求子)하라. 강재이뇌(降在爾腦)시니라.” 이 말을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언어나 생각을 통해서 하느님을 찾는다고 해서 그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진실한 마음을 통해 하느님을 찾으라. 너의 뇌 속에 이미 내려와 계시느니라.”

「천인심성합일지도」에서 사람의 머릿속(뇌)에 하늘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삼일신고』의 사상을 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로 「천인심성합일지도」 이외에서는 이런 그림을 찾아볼 수가 없으므로 『삼일신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천인심성합일지도」에는 사람의 모습에 성인(聖人)과 금수(禽獸)가 공존합니다. 한 사람이지만, 오른쪽 흰 부분의 길은 성인(聖人)의 길이지만, 왼쪽 검은 부분의 길은 금수(禽獸)의 길이 됩니다.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에서는 사람이 양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짐승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심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면 "네가 사람이냐?"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에는 너는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짐승을 한자로 표현하면 금수(禽獸)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천인심성합일지도」에는 양심을 어기는 길을 금수(禽獸)로 표현했습니다.

태극(太極)은 우주의 기운이며 우주의 마음입니다. 우주의 기운이 모여서 몸이 만들어지고 몸속에 뇌가 있고 뇌 속에 우주의 마음인 하늘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인심성합일이란 말은 하늘과 사람의 심성이 각각 다르므로 합일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처음부터 합일되어 있다는 의미에서의 합일입니다.

「천인심성합일지도」에는 자연론(自然論), 인간심성론(人間心性論), 수행론(修行論)이 있습니다.

자연론은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양(陽)은 원(元: 봄), 형(亨: 여름)이고 음(陰)은 이(利: 가을),정(貞: 겨울)입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진행은 하늘이 만물을 살리기 위해서 순환시키는 것입니다. 봄은 목(木)기운, 여름은 화(火)기운, 가을은 금(金)기운, 겨울은 수(水)기운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이 쉼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성(誠: 정성)이라 하고 성(誠)은 토(土)기운 입니다. 여기까지가 자연론입니다.

인간심성론은 천인무간이기에 원(元), 형(亨), 이(利), 정(貞), 성(誠)의 하늘의 원리가 사람의 머릿속(뇌)에 내려와 있습니다. 원, 형, 이, 정, 성이 투영된 하늘마음이 본성(本性)이고 본성을 줄여서 성(性)으로 표시했습니다. 하늘마음(性)인 원, 형, 이, 정, 성은 사람 마음(心)에서는 인(仁), 의(義), 예(禮), 지(知), 신(信)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 부분은 하늘마음을 의미해서 원형으로 그리고 가슴 부분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해서 마음 심(心)자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하늘마음과 사람 마음이 하나이므로 위의 하늘마음과 아래의 사람 마음 사이에 칸막이가 없이 하나로 연결되게 그렸습니다.

인(사랑), 의(정의), 예(조화), 지(지혜)를 한마디로 양심(良心)이라고 하며 양심이 쉬지 않고 발현되는 것을 신(信)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늘마음인 양심이 있고 생각과 감정이 있습니다. 맹자는 양심을 사단(四端)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사단은 인의예지가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 모습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선악 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의 네 가지 마음으로서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에서 발현되는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인심성합일지도」에는 생각을 의(意)라는 글자로 표시했고 감정은 희(喜: 기쁨), 노(怒: 분노), 애(哀: 슬픔), 구(懼: 두려움), 애(愛: 사랑), 오(惡: 미움), 욕(欲: 욕망)의 칠정(七情)으로 표시했습니다. 생각과 감정을 에고(ego: 자아)라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의 개입으로 선과 악으로 갈라집니다. 하늘마음이 생각의 개입으로 변한 것이 칠정이고 칠정은 사람의 생각에 따라 선악으로 갈라집니다. 마치 하늘이 구름 한 점이 없을 때도 있고, 보기 좋은 휜 구름이 몇 조각이 있을 때도 있고, 시커먼 먹구름으로 하늘이 가릴 때도 있는 것처럼 하늘마음도 에고의 구름에 따라서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해서 밝으면 선이라 하고 어두우면 악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구름이 있다고 해서 구름을 경계로 이 하늘과 저 하늘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늘 전체가 하나이듯이 하늘마음은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 만물과 나의 구별도 없이 모두와 하나로 통해있기에 한마음입니다. 한마음에는 ‘나’가 없으므로 ‘나’의 태어남도 죽음도 없습니다. 천부경의 ‘일시무시 일종무종일(一始無始 一終無終一)’이 이것을 의미합니다. 여기까지가 인간 심성론입니다.

수행론은 성인(聖人)이 되는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늘마음을 오롯이 간직한 성인은 하늘처럼 진실하고 순수합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성실하게 양심 실천을 합니다. 이것을 성(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인심성합일지도」에서 오른쪽 흰 부분의 성인의 길을 성(誠)이라는 글자로 표시했습니다. 성(誠)을 실천하여 성인이 되면 성인은 하늘이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을 도와주므로 도(道)가 하늘과 같아집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늘과 같은 큰 존재가 됩니다(호호기천: 浩浩基天).

양심은 순전히 선(善)뿐이지만 생각과 감정인 에고는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돈을 주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잔돈이 없이 큰돈만 있어서 돈이 아까운 마음이 들어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측은한 마음은 첫 번째 마음이고 돈이 아까운 마음은 두 번째 마음입니다. 이렇게 두 번째 생긴 마음을 악(惡)이라고 합니다. 惡은 亞 + 心입니다. 亞(버금아)는 버금이 두 번째라는 의미이고 心(마음심)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긴 마음을 악(惡)이라고 한 것입니다. 두 번째 마음 중에는 ‘내 것만을 챙기려는 마음’과 ‘우리 것을 챙기려는 마음’이 있는데 ‘우리 것을 챙기려는 마음’은 두 번째 마음 중에서도 선(善)으로 봅니다.

두 번째 마음으로 욕심에 빠져서 짐승의 길로 가서 자포자기(自暴自棄)가 되어 중생(衆生)의 삶이 되거나 처음부터 잔인해서 인을 해치고, 탐욕으로 예를 해치며, 자기만 좋아하는 욕심으로 의를 해치며, 흐리멍덩한 것으로 지혜를 해쳐서 「천인심성합일지도」의 왼쪽 길인 짐승의 길로 빠지면 금수(짐승)와 차이가 별도 없다고 했습니다(其違禽獸不遠). 금수는 모두 옆으로 누워 있습니다(禽獸皆橫). 짐승은 머리를 하늘을 향해 들지 못하고 머리를 옆으로 두고 있습니다. 식물은 머리(뿌리)를 아래로 두고 있습니다. 사람만 머리를 하늘로 두고 있어서 하늘마음을 오롯이 받을 수 있습니다. 머리를 하늘로 두고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짐승의 길로 빠지면 머리를 옆으로 두고 태어난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것이 금수개횡(禽獸皆橫)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 마음으로 빠졌다가 성찰(省察)하고 다시 성인의 길로 가는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했습니다. 군자가 되는 수행 방법으로 경(敬)을 제시합니다. 경이란 마음에 잡념이 떠오르지 않도록 경건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정신 차린 상태, 깨어있는 의식입니다. 정신 차려서 깨어있는 의식을 유지하여 양심을 보존하고 양심이 마음속에 가득 차도록 기르는 것을 존양(存養)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양심이 나타날 때 왜곡되지 않도록 잘 살피는 것이 성찰(省察)입니다.

정신 차려서 깨어있는 마음으로 존양하고 성찰하여 양심이 마음속에 가득해지면 성인이 됩니다. 성인이 되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양심을 처음부터 잃지 않고 보존을 한 성인과 일단 잃었다가 회복한 성인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성인이 되는 법을 깨우쳐주고 인도해주는 능력은 양심을 잃었다가 회복한 성인이 더 뛰어납니다. 여기까지가 수행론입니다.

목은 이색의 천인무간 사상은 하늘과 사람은 하나이므로 사람의 일이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지만 하늘 또한 사람의 일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사회의 질서와 자연계의 질서가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사람이 하늘마음을 잃게 되면 하늘도 천도(天道)의 흐름이 불순해져서 자연재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하늘마음을 회복하면 자연의 질서도 정상으로 회복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사회의 질서와 자연계의 질서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내용이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했다는 『부도지』에 있습니다. 『부도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환인씨가 천부삼인(天府三印)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혔다는 것은 환인씨가 천부경(天符經)의 이치로 성인의 길을 깨우쳐주고 인도해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는 것은 짐승의 길에서 정신 차려서 깨어있는 마음으로 양심을 회복하여 사람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과 역사가 기록된 『부도지』의 내용과 이색의 천인무간 사상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색의 천인무간 사상은 권근의 「천인심성합일지도」로 연결이 됩니다. 지금 인류는 지구온난화 문제로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기후 위기가 더욱 심해지고 있어서 인류의 위기라고 합니다.

우리 겨레의 전통사상에 의하면 지금의 지구온난화 문제는 사람이 하늘마음 양심을 잃어버린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늘마음 양심을 회복하면 그 옛날 환인 시대에 자연의 질서가 회복된 것처럼 지금의 지구도 자연의 질서가 회복되어 기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천인심성합일지도」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짐승으로 추락하지 않고 양심을 회복하고 보존하여 성인으로 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양심 회복이 하늘이 사람에게 준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양심 회복을 날마다 순간순간 실천해야 하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